▲에메랄드빛 바다에 몸을 담그다홍경선
어둠은 금방 찾아들었다. 붉게 물든 바다와 하늘의 풍경도 잠시뿐, 어느새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았고 이내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 피피의 밤은 또다른 세상이었다. 초록과 파랑이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경치를 자아내던 해변의 낮과는 달리 여기저기 산재해있는 레스토랑마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푸짐한 해산물들로 가득한 음식들을 먹는 관광객들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레스토랑의 수만큼이나 많은 마사지방 또한 피로에 지친 몸을 풀기위한 여행객들로 만원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적막한 해변의 모습과는 또다른 별천지였다. 적어도 이곳 돈이 오가는 상가지역만큼은 낮과 밤이 따로 없어 보인다.
한층 무르익은 밤의 풍경에 취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비좁은 골목길을 헤쳐나갔다. 고개를 돌릴때마다 마사지방의 투명한 창문사이로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마사지를 받고 있는 여행객들이 보였다. 그순간 오랜 여행의 피로가 이미 쌓일대로 쌓였기에 이젠 풀어야할 때가 왔다고 나름대로 판단을 했다. 그렇게 찾아간 한 마사지업소. 일렬로 늘어서있는 널따란 침상위에 몇몇 여행객들이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마사지사들의 능숙한 손놀림에 몸이 나른해지는지 저마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틈에 끼여 천천히 몸을 뉘였다.
두눈을 감으니 어느새 매력적인 아가씨의 모습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살며시 옆에 다가와 앉는다. 그리고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내 온몸을 쓰다듬으며 달콤한 목소리로 무언가 말을 건네온다. 하지만 짦은 단상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전형적인 태국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능슥하게 내 몸을 만지고 있었다.
교묘하게 관절을 꺾어가며 피로를 풀어주는 기술이 거의 예술이었다. 하지만 목과 등, 팔과 다리 등 온몸 구석구석 성심성의껏 마사지해주는 아주머니에게 왠지 미안한 맘이 들었다. 비록 돈을 지불하고 받는 서비스이긴 하지만 태국 북부의 치앙라이에서부터 며칠밤을 쉬지않고 달려온 몸이기에 여간 더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다속까지 들어갔다 나온 몸이니 소금기와 때, 그리고 모래가 한바탕 어우러진 오염인간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닌가.
아주머니 역시 내 몸상태를 인식했는지 힘주어 지압을 할때마다 밀려나오는 검은 때와 소금, 그리고 모래를 털어내는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괜히 민망한 마음에 여기에 오기까지의 오랜 여정을 설명했건만 알아듯는지 모르는지 연신 고개만 끄덕이며 열심히 관절을 꺾고 있었다.
그렇게 한시간 정도 느긋하게 마사지를 받고 나니 확실히 피로가 풀린듯했다. 하지만 피로를 한번에 풀려해서 그런지 온몸이 천근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웠다. 몸을 일으키는 것 조차 힘이 들 정도였으니 오히려 배로 무거워진 발거음을 이끌고 간신히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기에서 내뿜는 시원한 물줄기가 온몸을 적셨다. 시원한 물줄기 사이로 비누를 가득 묻힌 타올로 몸을 닦아내니 그제서야 상쾌한 기분이 전신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팔 하나 다리 하나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고통을 동반하는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간신히 샤워를 마친 후 세평 남짓한 골방에 마련된 나무 침대위에 몸을 뉘였다.
순간 극심한 피로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상쾌한 피로다. 서서히 눈이 감기며 몸의 움직임도 둔해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현실에서의 기억은 꿈속을 향해 나아간다. 가끔씩 마사지 받을 때의 느낌이 몸 구석구석에서 전해졌다. 그 느낌은 굳게 뭉친 근육이 능숙한 지압기술에 의해 풀리며 전해지던 시원함이었다. 작은 선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보다도 더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 그대로를 간직하며 깊은 잠에 빠졌다. 날이 새는지도 모른 채 깊고 깊은 꿈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이대로 밤을 보낸뒤 알람소리에 눈이 떠지면 또다른 피피섬의 모습이 펼쳐질 것이다. 그곳엔 환상적인 열대어들의 행렬을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스노쿨링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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