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과 '국가 운명'은 다릅니다

[주장] 국회 연설문에 드러난 노 대통령의 착각, 혹은 사실 왜곡

등록 2003.04.03 09:25수정 2003.04.03 11:56
0
원고료로 응원
2일 국회 연설 중인 노무현 대통령
2일 국회 연설 중인 노무현 대통령오마이뉴스
국익과 국가운명이 뒤섞여 쓰이고 있음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역시 '국익'이라는 건데, 그가 사용한 맥락 안에서 그 말의 의미를 잘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꼼꼼히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국익의 핵심은 국가의 '운명'이라는 단 한 단어로 수렴됩니다.

즉, 파병이 가져다주거나 아니면 미(未)파병으로 인해 야기될 '아웃컴'(산출물...편집자 주)은 다른 무엇보다도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사안이다라는 인식입니다. 더욱 명쾌한 해석을 하자면, '파병이면 우리 민족이 살고 미파병이면 우리 민족은 엄청난 수난에 몰릴 것이다'라는 겁니다.

이 해석은 자의적인 해석이 아닙니다. 노 대통령의 인식의 핵심입니다. 그 외의 설명과 주장은 다 군더더기입니다.

이라크 침공전쟁 반대와 파병 찬반의 문제가 이렇게 단순명쾌하게 판결되고 말 이슈인 줄 몰랐습니다. '생존'(명운)의 문제를 들이밀며 그보다 더 귀중하고 우선하는 가치가 있거든 한 번 보여달라며 톤을 높이시는데 어느 누가 목숨의 문제를 담보한 채, 정의니 연대니 하는 한가로운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목숨은 지고지순의 가치일 뿐 이론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이리하여, 파병은 신성한 의무인 것으로 그 정당성을 입증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단, 노 대통령의 논리적 오류를 무심히 지나치고 말 때 말입니다.

파병이 우리에게 '국익'을 극대화시킬 것이다라는 논지가 전부일 줄 알았는데 노 대통령은 참으로 멀리 나가시는군요. 국익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운명'이랍니다. 그는 국익과 국가운명을 동의어로 병치시키는 놀라운 수사적 기술을 사용합니다. 이제까지는 국익을 얘기하다가 그만 삶의 구원의 문제까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솔직하지 못합니다. 국익의 극대화와 국가운명의 구원은 같은 의미선상에 있는 동의어가 아닙니다. 둘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파병으로 발생할 국익의 극대화를 말하려거든 미(未)파병으로 얻을 국익을 덮고 남을 만한 확실하고 충분한 논거를 제시하면 되겠지만, 국가운명을 말할 때는 현재 처한 '극한의 위기상황'을 과장 없이 진솔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위기 상황의 개연성만을 가지고 국가운명의 문제를 논제의 한가운데로 세워 부각시킨 뒤, 자연스레 발생하는 국민의 첨예한 위기의식을 원군 삼아 여타 모든 반대 논의를 잠재우려고 하는 방식은 대단히 허튼 배짱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용기 없는 사람의 자기 주장 방식입니다.

노 대통령은 이 파병문제가 왜 국가 운명을 좌우할 일인지 그 '극한의 위기상황'에 대해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니, 설명하지 못합니다. 설득력 있는 논증의 자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설득력 있는 근거가 애매하고 희박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아예 논증의 시도조차 안 하는 겁니다. 그는 국가 운명이란 논제를 터치하지 말고 '국익'의 논의에 한정시켜 설명했어야 합니다.


국익과 국가운명이란 두 단어의 의미 차를 굳이 논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사이에 관련성이 전혀 없다는 주장으로 억지를 부리려는 게 아닙니다. 국익이란 문제는 논의의 개방성을 당연히 포유하여 국민 누구나가 제 고유의 주장을 낼 수 있고, 지금과 같은 이라크전 파병이란 이슈에 대해선 백가쟁명식의 활발한 의견개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 운명이란 문제는 우선 그 단어의 속성상 일반인들에 대해 논의를 차단케 합니다. 오직 고도의 고급정보를 독점하는 몇몇 지식인이나 군부 혹은 위정자에게만 그것에 대한 판단의 자격이 부여되게끔 차별화하여 일반인들의 논의 접근 자체를 차단합니다. 이 이슈에 한해서는 일반인들은 접근금지를 당하는 겁니다. 몇몇 사람들만 판단의 능력을 보유하는 양 권위를 부여받고 또 그 결정으로 인한 책임도 홀로 도맡을 듯이 비장함을 과시합니다.

다시 말해서 '국익'은 참여적 이슈요, '국가운명'은 차단적 이슈입니다. 그럼 노 대통령은 파병문제에 있어서 왜 '국가운명'을 이슈의 핵심으로 끌어왔을까요? 이유는 자명해집니다. 논의를 차단하겠다는 의지 때문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합니다. 파병의 정당성마저 설득력이 없음을 자신도 모르게 실토하고 있는 겁니다. 파병의 명분이 국가 실리만으로도 충분했다면 굳이 국가운명이란 거창한 화두를 따로 들고나올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그럼 과연 국가운명의 문제라는 상황인식은 명료하게 정리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설명의 시도조차 없습니다. "국가운명의 문제다"하면 국민들이 자동적으로, 그 심각성을 알아서 규정하고 수긍하겠거니 하고 대충 넘어가겠다는 겁니다. 정녕 파병이란 문제가 국가운명의 중대사가 된다면 국민이 충분히 납득하도록 상황을 설명하여 동의를 얻어내야 할 게 아닙니까. 노 대통령은 정직하지 못한 방법을 대담하게 선택했습니다. 그의 평소의 도덕성에 미치지 못하는 방법을 차용한 겁니다.

물론, 국가 원수로서 긴박한 상황을 맞았을 경우 오직 자신만의 철학과 상황판단으로 외롭게 고독하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을 것임을, 또 국정 책임자로서의 결연하고 비장한 결단의 책임이 그 단독자의 어깨 위에 얹혀 있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것을 부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정적 시기일 때이어야만 합니다. 그야말로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과 시점에서만 그 단독자의 결단이 빛나게 수행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국가 운명이 백척간두에라도 서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미국의 북파공격설이 있지 않느냐, 그것이 국가운명의 문제 아니고 무엇이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군요. 그러나 이것은 아직 그 가능성이 매우 멀리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가능성 자체는 절대 무시할 수 없으되 그것을 둘러싼 수많은 대항 요인이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을 위기의 정점에 가까이 있다고 규정한다면 앞으로 전개될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더 많은 '위기상황'을 계속 마주치게 만들 거라고 말하겠습니다. 지금은 국가운명을 결정할 위기상황이 천만에 아닙니다.

지금은 오직 '국익'에 한정하여 논의해도 충분할, 그리고 너무나 정당할 (준)평화시기입니다. 이 문제를 국익이란 카테고리 안에서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논했을 때 더욱 설득력 있고 정당하며 실익을 챙기는 대안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파병문제를 국가운명이 걸린 문제인 것처럼 터무니없이 부풀려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서둘러 논의를 차단하고 그 이슈를 독점하겠다는 정치가들의 독선이고 위선입니다. 아니, 그것은 국민을 가지고 노는 속임수입니다.

이러한 파행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결정은 당연히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없습니다. 그저 우연으로 맞아떨어지는 요행수라면 모를까, 이런 결정과정에 의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하는 건 난망합니다.

대선 이후 이렇게 만끽하여 누리는 우리의 인터넷 참여라는 자유와 그 역할은 이번 노 대통령의 의사소통 차단식 파병결단 과정에 의해 일정 부분 상처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좀더 깨어 있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 대통령의 '고뇌'의 한 부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국가 운명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해서 말입니다. 그가 국익이란 논의만으로는 설득력이 불충분함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꼭 파병을 하겠다는 게 그의 '소신'이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설득력이 떨어지니 좀 무리한 이슈를 끌어다 쓸 수밖에 없다며 가졌을 멋쩍음을 짐작할 때 쓴웃음을 짓게 되는 겁니다.

한 민족의 명운이 곧 이 파병결정 여부에 그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고 말씀하시니 참으로 서글퍼집니다. 힘 없는 국가에서 태어난 자괴감에서가 아니라 저토록 무기력한 대통령을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며 뽑았는지 오늘 믿기지가 않아서 입니다.

아무리 종속적 지위에 매몰된 수치스런 지위를 우리가 가졌다고는 한 들, 형님나라의 침공전쟁에 파병을 좀 안하기로서니 이렇게까지 나라가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몰리도록 큰 '처벌'을 받아야만 하는지 몰랐습니다. 노 대통령이 그렇게 말씀하시네요. 파병하면 우리는 살고 파병안하면 우리는 절단난다고요. 부시 형님이 꼭 그렇게 엄포를 놓았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노 대통령은 그런 식으로 알아들었다는 게 분명하군요.

우리의 새 대통령이 이렇게 용기 없는 분인지 몰랐습니다. 강인하고 용기 있는 영혼과 낙관적인 미래관, 그리고 똑똑한 국민의 열열한 지지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갖고 자신의 철학대로 똑바로 굳건히 저벅저벅 걸어가는 내 나라의 대통령을 기대했었는데 겨우 한낱 꿈이었나요?

그게 민족의 운명이 걸려있는 문제라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고요? 나 노무현, 용기가 없는 사람이 결코 아니지만 이번 문제는 어쩔 수가 없다고요? 아닙니다. '위기감'을 느낄수록 명철함을 잃지 말고 더욱 의연함을 국민에게 보였어야 합니다. 당신을 보고 국민이 새 용기를 얻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게다가 문제는, 노 대통령이 지금이 절대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정당한 자료를 제시치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 문제는 국가 운명의 문제와는 충분한 거리가 있는 사안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가 어떤 위기를 '예감'한 것과는 별개로, 노 대통령은 '국익'의 차원에 한정해서 논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리 겁을 집어먹고 그 위기를 앞당기고 증폭시켜 체감하면서 바들바들 떨고있는 형국입니다.

나는 그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노 대통령에게 가엾음을 넘어서 화가 납니다. (만약입니다만) 정말 진짜 위기가 우리에게 닥치는 일이 생길 경우 그때 과연 노 대통령은 얼마나 초췌해진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까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 이 말입니다.

오늘(2일) 노 대통령의 연설을 미국인들이 듣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를 상상하는 것도 심기를 몹시 불편케 합니다. 알아서 미리 기어버리는 한국의 대통령을 그들이 어떻게 보고, 우리 한국인들을 어떻게 볼까요? 이런 국민들을 그들이 비슷하게나마 동등하게 대하고 인격을 존중해줄까요? 자존심을 내팽개친 '시다바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할까요? 시시껍질한 '시다바리' 인생들의 불이익에, 그들의 아픔에, 항의에, 눈 하나 까딱할까요? 알아서 발발 기는 하류 국민들과의 약속을 끝내 지켜낼 의지를 과연 발동할까요?

오늘은 우리가 미국에 대해 엄청난 국익의 손실을 입은 날입니다. 그들로부터 듣지 않아도 됐을 장차의 요구를 미리 양보하기로 약속을 해버린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노 대통령은 오늘 정직하지 못한 부분을 노출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주장 관철을 위해 논리를 무시한 채 국익과 국가운명을 구분 없이 써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파병의 이유로 국익을 생각했다는 논리도 그 근거가 희박함이 자동적으로 드러나 버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3. 3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4. 4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5. 5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