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빛나는 대머리 독두환(禿頭煥)
"만일 천뢰탄 제조에 성공했다는 전갈이 오면 천뢰탄으로 선무곡을 없애겠다는 서찰을 보낸 것이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이렇게 이야기해도 모르겠는가? 선무곡의 수석장로는 아무리 설득해도 철심냉혈의 마음을 돌릴 수 없자 선무곡을 지키기 위하여 곡주를 시해한 것이지."
"으으음…!"
몰랐던 사실을 알게된 당주들은 나지막이 침음성을 토했다. 그러는 사이에 비문당주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선무곡의 곡주가 된 자는 알지?"
"누구? 아하! 빛나는 대머리 독두환(禿頭煥)?"
"그래. 그자는 곡주 자리에 앉자마자 본 성을 찾아 왔네."
"그자가 왜?"
"왜는 무슨…? 그렇게도 모르겠는가?"
"이 사람아! 제대로 말을 해야 알지."
"핫핫! 좋네 좋아. 또 한번 자세히 말해주지. 빛나는 대머리는 사실 곡주가 될 자격이 없는 자였지. 수석장로가 곡주를 죽였으니 당연히 총관이 곡주 대리를 해야하는데, 총관을 유폐시키고 일개 장로가 곡주를 하겠다고 나선 거야."
"핫핫! 완전히 콩가루 문파였구만."
"맞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웃기니 들어 보게."
"웃겨? 흐흐! 기대가 되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진서(晉書) 고개지전(顧愷之傳)에 있는 말이다.
고개지는 감자(甘蔗 :사탕수수)를 즐겨 먹었다. 그런데 늘 가느다란 줄기 부분부터 먼저 씹어 먹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친구들이 왜 사탕수수를 먹을 때 왜 거꾸로 먹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고개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갈수록 점점 단맛이 나기 때문[漸入佳境]이네."
이때부터 점입가경이라는 말은 상황이 갈수록 재미있게 전개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된 것이다. 줄여서 자경(蔗境) 또는 가경(佳境)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비문당주의 이야기는 점입가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회옥 역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차려놓은 음식은 차갑게 식고 있었다.
"핫핫! 독두환이 본 성에 찾아와서 성주를 알현(謁見)하겠다고 청하였을 때 본성의 장로들과 호법들께서는 알현을 허락할 가치조차 없다면서 내치자고 하셨지."
"왜?"
"철심냉혈과 무궁공자가 죽은 이상 그깟 조그만 문파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때는 신경 쓸 다른 일도 많을 때였거든."
"흐음! 그랬는가?"
"그런데 성주께서는 독두환의 알현을 허락하셨네."
"왜?"
"본당에서 중요한 문서 하나를 전했거든."
"그게 뭔데?"
"무궁공자가 본 성을 떠난 이후 본당에서는 선무곡의 동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있었네. 하지만 워낙 비밀리에 일을 추진하여 천뢰탄 개발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알 수 없었네. 어디에서 그걸 만드는지 조차 몰랐으니까."
"으음! 감히 본성의 이목을 속이다니. 나쁜 놈들!"
"그런데 곡주 시해사건이 벌어진 이후 어수선한 틈을 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놀랍게도 천뢰탄 개발이 구 할 이상이나 진척되어 있었네."
"구 할? 그렇다면 거의 다 만들었다는 것 아닌가?"
"그래! 그래서 알현을 허락하신 것이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핫핫! 독두환은 성주께 자신이 선무곡의 곡주라는 것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였네."
"맨입으로?"
"핫핫! 절대 안 되지."
"그럼 뭐가 있었나?"
"크흐흐! 놈은 철심냉혈과 무공궁자가 추진했던 것을 모두 없애겠다고 약속했네."
"없애? 다 만든 천뢰탄을?"
"크흐흐! 그렇네. 한 달만 더 두었다면 완성을 볼 뻔한 그것을 없애겠다고 한 거지."
"그놈 바보 아닌가? 그게 있으면 무림에서도 큰소리를 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함부로 대하지도 못하는데…"
"크크! 그렇지. 그런데 독두환은 자신이 곡주가 되는 대신 그것들을 완전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어떻게 하긴? 본성에서야 손해 볼 일이 없지. 있으면 골치 아픈 물건은 스스로 없애겠다고 하고, 게다가 충성까지 맹세하는데 거절하면 바보지. 그래서 그냥 못이기는 척하면서 곡주로 인정한다고 한 거지."
"크크크! 정말 콩가루 같은 문파군."
"후후! 그렇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네."
"무슨 문제?"
"당시 본성 제자들이 입회 한 상태에서 천뢰탄을 제조하던 곳을 없앴는데 그 중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네."
"사라져?"
"그렇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네. 그래서 분타를 계속해서 주둔시키고 있는 것이네."
"으음! 그래서 그랬구먼…"
"자네들 이거 모르지?"
"뭘?"
"선무곡에서 사라진 천뢰탄을 찾는 자는 무조건 일 계급 특진을 시켜준다는 것을…"
"뭐어? 그런 게 있었어? 그게 정말인가?"
"후후! 그렇네. 뿐만 아니라 무천서원에서 원하는 비급 하나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네."
"일 계급 특진에다가 절정무공이 기록된 비급까지?"
"그렇네. 찾기만 하면 그야말로 횡재하는 거나 다름없지."
"그런데 왜 우리가 그걸 몰랐지?"
"후후! 모두 다 알면 비밀이 아니지. 안 그런가?"
"흐음! 그건 그렇군."
"그나저나 놈들이 오면 어쩌지?"
"누구?"
"선무곡에서 이리로 온다는 놈들 말일세."
"크크! 오거나 말거나. 제깟 것들이 와 봤자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냥 무시하면 어쩔 수 없을 거네."
"후후후! 그렇지?"
"핫핫핫! 그나저나 음식이 다 식었네."
"하하! 그렇군. 아이들을 시켜 다시 덥히도록 함세."
"자자, 이제 그런 이야긴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고."
"핫핫! 그러세. 자아! 우리 철마당주의 승차를 위하여!"
"위하여!"
"건배(乾杯)!"
팔대당주들이 술잔을 높이 치켜들 무렵 이회옥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혼자서 홀짝인 술이 제법 과했는지 약간의 취기가 느껴져 찬바람을 쏘이려고 나온 것이다. 워낙 음식들이 입에 맞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철검당은 철마당과는 달리 마구간 대신 대장간이 죽 늘어서 있었다. 뜨거운 쇳물을 다루는 곳이라 그런지 한쪽 벽이 툭 터져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늦은 밤이지만 안에는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일의 특성상 불을 꺼트려서는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검을 만드는 곳도 있었고, 도를 만드는 곳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병장기들을 만드는 곳도 있었다. 그 가운데 눈에 확 뜨이는 곳이 있었다. 곡괭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것은 분명 무림지옥갱에서 사용하던 곡괭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회옥의 뇌리로 지옥갱에서의 지옥과 같은 생활이 섬전처럼 스치고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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