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정박한 섬에서홍경선
몇모금 입에 대지 않은 채 물로 배를 채웠다. 섬은 일렬로 펼쳐진 작은 모래사장안으로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었다. 한적하다는 것 빼고는 그리 멋진 풍경은 아니었다. 듬성듬성 서있는 야자수 아래의 그늘에 누워 망중한을 즐기기로 했다. 가끔씩 주변으로 다가오는 검은 고양이 녀석이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먹다남은 과일조각을 던져주니 낼름 받아먹고서는 도망갔다. 작렬하는 태양이 뜨겁다고 느껴질 때쯤 배는 다시 출발했다.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사방을 아름다운 섬들이 둘러싸고 있는 바닷가였다. 조금만 헤엄쳐가면 금세 산호초들이 발에 밟힐 정도로 얕은 바닷가였다. 오히려 수없이 펼쳐져있는 산호들이 장애물이 될 정도였기에 수영보다는 걷는 게 나을 듯 싶었다. 까칠가칠할 것만 같던 산호들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하지만 곳곳에 포진해있는 성게들의 뾰족한 가시에 찔릴까봐 발걸음 하나하나에 조심해야 했다. 그 전에 이미 싱가폴 녀석 한명이 성게가시에 찔려 시퍼렇게 발이 부어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물속에 박은 채 사방을 둘러보던중 우연히 커다란 대합을 발견하게 되었다. 왠지 엄청나게 큰 진주를 품은 조개가 아닌가 싶어 캐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산호속에 꽉 박혀있는 녀석은 쉽사리 떼어지지가 않았다. 이리 저리 빈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캐내려 했지만 오히려 날카로운 표면에 엄지손가락만 베고 말았다. 주변은 금세 빨간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그러하지 않게 만들려는 옹졸한 행동에 대한 벌이 아닌가 싶다.
주변은 온통 깎아지를 듯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각각의 섬들이 삼면으로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었다. 그 사이에 고인 물속은 뼈속까지 들여다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여기저기 일일투어를 진행중인 배들이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모두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방콕에 머물고 있었을 때 반강제로 끌려들어간 보석방에는 커다란 루비나 에메랄드와 같은 보석이 가득했다. 특히 투명한 옥색을 띠고 있던 에메랄드는 뜨거운 조명에 달궈져 그 찬란한 빛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그때 보았던 그 빛을 이곳에서 다시 볼수 있었다. 조금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색이었다. 마치 커다란 에메랄드 하나가 오랜시간에 바닷물에 녹아있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인위적인 색깔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한 비취색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몸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세상 시름 모두 잊은 채 자연을 벗삼아 놀 수만 있다면 그곳이 곧 천국이 아니던가.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채 물고기들과 더불어 놀고있는 나는 천국에 서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마지막 스노클링은 상어가 자주 출몰한다는 바다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두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도 상어는 물론 그와 비슷한 등지느러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단지 발 아래로 허벅지만한 고기들만 지나갈 뿐이었다. 이날의 투어는 이렇게 모두 네 번의 스노클링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돌아가는 배안의 사람들은 이젠 모두 지쳤는지 말이 없다. 그저 사방에 펼쳐진 그림같은 풍경만 쳐다볼 뿐이다. 남국의 뜨거운 태양에 온 몸을 맡긴 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불태운 지도 어느덧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미 몸은 익을대로 익었지만 난생 처음 겪은 자연과의 진정한 만남에 그런 고통쯤은 잠시 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