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외치는 반전·평화 목소리

"휴전 50주년,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한다"

등록 2003.04.12 06:15수정 2003.04.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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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의 한인동포들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라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라크 전쟁이라는 야만의 현장을 목격한 한인들에게 휴전 5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2003년에 대한 느낌은 각별하다. 이미 전쟁의 참상과 이어지는 고통의 세월을 직접 경험한 한국민족에게 과거의 비극을 다시 겪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고개를 드는 것은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유엔이라는 안전장치마저 무시할 수 있는 무소불위한 힘의 단맛에 취한 미국이 어서 이성을 되찾지 않는다면 입에 담기도 부담스러운 악몽이 현실화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는 적극적으로 이번 전쟁을 반대하고 나선 적이 없는 소극적인 대다수의 한인들에게도 조금씩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는 것이 이번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견해이다.

이라크 전쟁 이후의 부시행정부, 비둘기파 설 곳 잃는가

"반전, 평화 그리고 한반도"
LA One Korea Forum에서 주최한 열린토론마당

올해 들어 처음 개최된 나성포럼의 <열토마>는 김영희씨의 ‘21세기 국제 반전운동의 흐름’이라는 발제로 시작됐다. 김영희씨는 이번 반전운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전쟁개시 이전부터 시작. 둘째,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주도의 반전운동에서 벗어나 제3세계의 민중들까지 자발적으로 참여. 셋째, 인터넷을 통한 광범위한 연대와 신속한 정보교류로 새로운 가능성 확인.

참석자들은 아랍지역에 대한 미국을 비롯한 서구 패권주의 경쟁의 역사와 미국 평화운동의 개략적인 설명이 끝난 후 시작된 토론의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재미동포들의 역할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또 이미 막바지에 다다른 미-영 연합군에 의한 이라크 공격을 평가하며 열기를 띠기도 했다.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캠페인에 대한 소개가 있자 참석자들이 곧바로 실무와 관련된 제안을 하는 바람에 진행자에 의해서 “이 자리는 실무자들의 회의자리가 아니라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토론자리”라며 더 이상의 의견개진을 제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이 문제가 다급한 느낌으로 다가온 탓이었다.

/ 박우성
공식적인 자료들의 통계만으로 최고 1500명에 가까운 민간인 희생자를 발생시킨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당분간 전후의 복구사업과 부시행정부가 구상중인 이라크 차기정권 구성 등에 대한 국제사회간, 그리고 이라크 내부의 반 후세인 정권 조직들간의 힘겨루기가 관심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에선 중동지역에서의 패권확보에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어낸 이번 작전에 고무된 부시가 앞으로의 외교정책에서 강경일변도의 전략을 계속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미간의 불편한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한국인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불량국가 출신 외국인 등록제 실시 등 인권침해 사례 노골적

개전 이전부터 벌어진 반전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부시행정부의 군사패권주의 외교정책에 대한 반대를 외쳐온 많은 미주지역 동포들의 관심사 역시 이라크 이후의 한반도 정세이다. 북미관계가 악화될 경우 비록 전쟁의 단계에까지 이르기 전이라도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 처하게 될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구체화되기 전인 작년 12월, 지금은 국토안보국에 통합된 당시 이민국에서 미국 내에 거주하고 있는 이른바 불량국가 출신 외국인들에 대한 특별등록을 실시했다. 이라크, 아프간, 시리아 등 아랍국 출신자들이 대상이었는데 이 때 등록을 위해 이민국을 찾았던 아랍계 사람들이 무더기로 체포되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아랍권 커뮤니티는 물론 인권단체들이 소송까지 제기하며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일부가 이미 추방되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상황하에 면회까지 불허당하며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 외에 진전된 사항이 없는 실정이다.

미국의 진보진영조차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족한 편

물론 재미동포들의 근심이 개인적인 불편이나 불이익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이라크 폭격이 시작된 후로 수요일마다 거리시위에 나서고 있는 단체 회원들은 앞으로의 과제가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LA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KAP 회원들
LA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KAP 회원들나성포럼
“지난 9일 시위에는 참여도 적었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미 다 끝난 전쟁인데 무엇하고 있느냐는 식의 반응도 접했고, 이라크는 드디어 해방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하림씨(27)는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캠페인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다는 미국인들에게조차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후세인보다 더한 독재자인 김정일은 놔두고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은 넌센스’ 라는 식의 발언이 나오기도 하는 걸 보면 아찔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개정해야

이라크 전쟁이 마무리단계를 밟는 상황까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4월 12일과 13일 있을 전국적인 시위는 예정대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 IAC의 관계자는 이날 시위의 슬로건이 ‘미군에 의한 식민점령 중단’과 ‘파병미군의 조속한 귀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시위에서는 아울러 미디어에 의한 민간인 피해상황 호도와 왜곡보도가 성토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인 평화운동단체들도 일제히 이날 시위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의 반전시위에 계속적으로 결합해 온 일부 보수적인 평화운동단체들을 위한 한반도문제 홍보와 연대촉구는 아직 준비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4월 5일에 있었던 '열린토론마당'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참석자들
4월 5일에 있었던 '열린토론마당'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참석자들나성포럼
“'Worker’s World Party', 'Win Without War' 같은 단체들이 반전을 위해 함께 연대하면서 미국의 반전시위 자체에 힘을 실어준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의 반전의식은 ‘미국의 이득을 위한 반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족통신의 김영희씨는 한인들이 그 동안의 반전시위에서 느끼곤 했던 일반 미국시민들과의 거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바로 적극적인 의견개진과 한반도 현실에 대한 사실 알리기라는 것을 지적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보이는 미국 사람들에게도 가족간에 50년이 넘게 만나지도 못하고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금새 ‘그런 일이 있나’ 라고 하면서 관심을 갖곤 한다”라고 말하는 김영희씨는 논리로만 따지고 들기보다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해보는 것도 상당히 유용한 방법이라는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재미동포들이 준비하고 있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캠페인은 지난 ‘미선, 효순 범대위’의 항의방문을 전후로 해서 모아지고 최근의 반전시위로까지 이어진 재미동포들의 후원을 바탕으로 미주 전역의 한인들을 통한 법개정 청원이나 서명운동, 나아가 미국의 평화운동단체들과의 연대까지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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