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05

분타주 개망신 당하다. (5)

등록 2003.04.14 13:36수정 2003.04.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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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북선무곡은 여러 어려움을 겪는 중이었다.

수년간 계속한 한파(寒波)와 기근(饑饉)으로 말미암아 먹고사는 일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근근히 버틸 수 있던 것은 화존궁과 일월마교로부터 전수 받은 기술을 개량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무림천자성이 천뢰탄을 개발해 내자 위기의식을 느낀 다른 문파들 역시 같은 위력을 지닌 병기를 개발하는데 주력하였다.

그 결과 일월마교와 화존궁 등등 몇몇 힘있는 문파에서는 천뢰탄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림천자성과 직접적인 자웅을 겨루지 못하는 것은 서로 천뢰탄을 사용하여 공격하면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양패구상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무림천자성이 더 많은 천뢰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일월마교와 화존궁과 가까이 지내면서 적지 않은 기술을 습득한 주석교에서는 천뢰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것의 반쯤 되는 위력을 지닌 병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들을 다른 곳에 팔고 그 대가로 식량을 구입할 수 있어 지금껏 버틴 것이다. 만일 이것이 없었다면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아직 완전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주석교에서 천뢰탄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첩보가 있었다.


그렇다면 더 크기 전에 없애야 마음이 편하겠는데 적당한 구실이 없으니 남북간을 대결 구도로 몰고 가려는 것이다.

아무튼 곡주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일흔서생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판단한 분타주는 특급 전서구를 띄웠다.

거기엔 선무곡에서 벌어진 의외의 결과가 담겨 있었고, 대책을 강구해 달라는 의견도 첨부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임곡주에게 압력을 넣어 달라는 요청도 기록되어 있었다.


"호오, 그래요? 무림천자성의 순찰이시라고요?"
"그, 그렇소이다."

"얼마 전에 본곡에 새로 부임하신 분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요. 오신지 꽤 되었으니 이제 웬만한 것은 다 아시지요?"
"알다니요? 무엇을…?"

"작금의 본곡 상황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 그거요? 최근의 상황은 대강…"

"좋아요. 그렇다면 소녀가 순찰께 묻겠어요. 순찰께서는 마차에 치어 죽은 두 소녀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무림천자성에서 본곡 조사전이 있던 자리에 전각과 마굿간을 짓겠다는 것을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여인은 눈빛을 빛내며 이회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이회옥은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선무곡에서 가장 번화한 저잣거리에 자리잡은 다향루(茶香樓)라는 곳을 찾았다. 인근 백 리 안에는 다향루만한 다루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일부러 나선 터였다.

분타주는 요즘 선무곡도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홀로 나가지 말라 하였다. 하지만 이회옥은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있으며,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 못 마땅하여 이를 거절하고 단신으로 나섰던 참이었다.

다향루는 삼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층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삼 층만은 매우 한산하였다.

웬만한 사람들은 마셔보지 못할 천품(天稟)들만 다루는 곳이기에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으면 드나들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회옥은 삼 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약관도 안 되었고 걸치고 있는 의복도 부호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점소이들이 그를 제지하지 않은 것은 그의 가슴에 새겨진 구름과 그것을 꿰뚫고 있는 검 때문이었다.

그것은 무림천자성 소속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고, 이곳 선무분타의 분타주와 동등한 직위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은자가 없어 보였지만 제지하지 않은 것이다.

이회옥는 절강성(折江省) 항주(杭州)에서 나는 서호용정차(西湖龍井茶)를 주문하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창밖의 풍광(風光)을 즐기고 있었다.

지난 겨울 유난히도 눈이 많아 그랬는지 파릇파릇 피어오르는 새싹들은 물기가 많아 보였다. 한 여름에 수해만 입지 않는다면 분명 풍년을 이룰 것이다.

점소이가 막 찻잔을 내려놓을 즈음 이회옥은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가 자리 잡은 탁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이남일녀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십은 넘긴 듯한 중년인 둘과 열여덟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이곳 선무곡에 온 이후, 아니 여옥혜와 헤어진 이후 본 여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철마당 제일향 동료들과 함께 갔던 기원의 기녀들조차 그녀의 미모에는 못 미친다 느껴질 정도였다. 선무곡에 당도하기 전 정의수호대원들에 의하여 능요당한 비운의 여인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여인 계속해서 힐끔거리며 바라보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여인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혹시라도 이마에 새겨진 자자형의 흔적이 보여서 그러는가 싶었던 것이다. 하여 슬그머니 영웅건을 더듬던 이회옥은 짐짓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런데 어느새 그 여인이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다짜고짜 맞은 편에 주저앉으며 입을 열었다.

"소녀는 다향루주의 여식인 홍여진(洪黎眞)이라고 해요. 보아하니 무림천자성 소속인 듯 싶은데 신분이 어찌 되시는지요?"
"예? 아, 예…! 소생은 새로 부임한 순찰이오."

여기까지가 방금 전의 상황이었다.

홍여진이라는 여인의 느닷없는 물음에 이회옥은 적이 당황스러웠다. 대답을 해야 할지 아니면 침묵으로 일관하여야 할지 섣부른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홍여진의 입이 다시 열렸다.

"공자께서는 소녀의 말을 잘못 알아 들으셨나요?"
"아니오."

다그치듯 따져 묻는 듯하자 이회옥은 약간 기분이 상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대답하시기 곤란해서 그러시나요?"
"……!"

이회옥이 대답을 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순찰이라 함은 분타주와 버금가는 자리이다. 따라서 이곳 선무곡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위이다.

그러므로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무림천자성의 의사에 반하는 언사를 하거나, 자칫 그렇게 비칠 수 있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고 주의를 들었다. 잘못하면 누워서 침 뱉기가 되기 때문이고, 책임을 져야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었다.

홍여진의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아 머뭇거리는 사이에 누군가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핫핫! 여기 순찰께서 와 계셨구려. 핫핫! 그런 줄도 모르고…"
"예? 소생에게 무슨 용무라도?"

"핫핫! 아닙니다. 이곳 다향루의 차 맛이 좋으니 차나 한잔하자고 청하려 수하들더러 순찰을 찾아 보라 하였습니다. 핫핫! 그랬더니 찾을 수 없다고…. 어! 홍 낭자도 나와 있었구려. 서너달 쯤 안 보이기에 어디로 갔나 했소이다."
"흥!"

분타주 허보도가 나타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홍여진의 얼굴에는 서릿발 같이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잠시 분타주를 노려보던 그녀는 나지막한 코웃음을 치고는 매몰차게 돌아섰다.

"허어! 이거 왜 이러시나?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삼천 겁의 인연이 있다 하지 않았는가? 핫핫! 전에는 본좌가 실례를 했네. 그러니 그만 화를 풀고…"

"흥! 어디에 감히 더러운 손을 대요? 당장 손을 떼세요."
"어허! 이러면 안 되지. 본좌가 먼저 사과를 하는데…"

허보도가 능글맞은 웃음을 짓자 이를 본 홍여진이 냉랭한 음색으로 쏘아 붙였다.

"왜? 분타주께서 사과를 하면 무조건 받아 들여야 하나요?"
"핫핫! 당연한 말씀. 본좌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함이 마땅하지."

"이것 보세요. 영광은 뭐 말라비틀어진 영광이란 말이에요? 흥! 불쌍한 아이들을 둘이나 죽여놓고도 뻔뻔스럽게… 흥! 안되겠어요. 지금 당장 본루에서 나가주세요. 지금부터 본루는 무림천자성 사람들의 출입을 금합니다."

"뭐라고? 이런 발칙한… 누구에게 감히?"
"흥! 발칙하다니요? 그런 말씀 삼가세요. 여긴 엄연히 선무곡이에요. 그리고 다향루는 부친께서 소녀에게 넘겨주신 가업(家業)이고요. 따라서 지금은 본녀가 루주지요. 루주가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데 뭐가 잘못 되었나요?"

"뭐, 뭐라고? 이, 이런 발칙한…!"
"흥! 지금부터는 지나가는 개나 거지는 받아도 무림천자성 사람들은 한 사람도 받지 않을 것이니 어서 나가주세요."

"뭐라고? 이런 발칙한 계집이?"
"왜요? 힘 좀 쓰시려고요? 그래요. 한번 힘 좀 써 보시죠. 마침 보는 사람도 많으니 힘 자랑하기엔 부족함이 없군요. 왜요? 본녀를 일 장에 쳐죽이고 싶은 건가요? 아님, 마차에 깔아서 죽이려고요? 어머! 무서워라. 무서워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요?"

홍여진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분타주를 노려보았다.

똥개도 제집에서는 반쯤 먹고 들어간다고 한다. 게다가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따라서 분타주로서는 손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계집이 감히…? 오냐! 두고보자. 네년을 갈기갈기 찢어 주마. 냄새나는 계집 같으니…'

"흥! 어서 썩 꺼지지 못해요? 다시는 본루에 더러운 발길 들여놓지 말아요. 알았어요? 가거든 빌어먹을 무림천자성의 졸개들에게 전하세요. 다향루에서는 너희 같은 개들은 받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가지 말라고 하였다고…"
"뭐, 뭐라고? 이런 건방진 계집이…?"

당장에라도 장력을 내칠 듯 손을 번쩍 치켜들었지만 차마 내칠 수 없어 부르르 떨고만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것을 본 홍여진이 한 마디를 더했다.

"건방지긴 뭐가 건방져요? 왜요? 그동안 고분고분하다가 갑자기 이러니까 겁이라도 나나요?"

홍여진은 마치 원수 대하듯 분타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 알아요? 당신이 그처럼 충성을 바치는 무림천자성의 성주가 주석교와 월빙보를 악의 축이라고 했다면서요? 흥!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한테 뭐라고 한다더니… 흥! 소녀가 보기엔 무림천자성은 악(惡)의 핵(核)이에요. 가서 실컷 충성하세요. 언젠가 천벌을 받을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니. 가요! 어서 썩 꺼져요."
"네년에게 분명히 말해 둔다. 반드시 처벌을 받게 해주마."

"어머! 그래요? 무서워서 어쩌죠? 호호! 그럼 소녀도 한 마디 할게요. 가거든 조심하세요. 선무분타를 잿더미로 만들어드릴 터이니 잘 때 조심하라고… 호호! 뭐 잘 익은 고깃덩어리가, 아니 새까맣게 타버린 잿덩이리가 되고 싶으면 말고요."
"이, 이런…!"

분타주는 머리끝까지 치솟은 노화로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억지로 이를 참아냈다.

강호 속담에 어린아이와 계집, 그리고 노파와는 다투지 말라는 말이 있다. 반드시 귀찮은 뒤탈이 발생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싸워봤자 얻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겨봤자 그만이고, 지기라도 하면 망신 망신 그런 망신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 지금은 본좌가 참는다. 하지만…'

한참을 멈춰있던 허보도는 슬그머니 손을 내리고는 이회옥을 바라보았다.

"이 순찰, 이만 갑시다."
"예? 아, 예…"

어찌 되었건 무림천자성 사람인 이회옥은 자신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난감하던 터였다. 하여 얼떨결에 분타주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분타에 당도하기 전까지 허보도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이회옥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다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집무실에 당도해서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순찰, 본좌는 오늘의 일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소."
"……!"

"조만간 본좌는 그 계집으로 하여금 감히 무림천자성의 분타주를 능멸한 죄를 물어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오."

이회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분타주 입장이라 할지라도 분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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