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사르' 서쪽 계곡의 절경홍경선
한참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우치사르'의 절경에 취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 다음에야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의 한적한 평원이 아름다웠다. 녹색과 황색의 절묘한 조화속에 한참동안 고즈넉한 시골마을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여러 차례 지나갈때쯤 역사적인 지하도시 '데린구유'에 도착했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데린구유(Derinkuyu)는 최대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지하도시다. 카파도키아에는 오랜 세월동안 침략과 박해를 피해 터키 곳곳에서 도망쳐온 기독교 신자들과 수도승들이 모여 대피소로 이용해온 지하동굴들이 수십개나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마치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이 지하 도시들을 처음 건설한 사람들은 히타이트인이라고 전해지는데 후에 기독교인들이 동굴 위에 집을 짓고 피신처로 이용했다고 한다.
이 곳 '데린구유' 역시 적의 공격을 피해 마치 개미굴처럼 땅속을 파고 만든 지하도시였다. 총 깊이가 55m에 달하는 8층 구조인 이곳의 입구는 매우 작았다. 이는 갑작스런 위험에 직면할때 대피하기 위한 것이란다. 미로처럼 얽힌 지하통로는 녹색과 빨강의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게 되어있다. 노란 조명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하의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으며 이곳의 처절했던 생존투쟁이 떠오르자 왠지모를 음습함이 덮쳐왔다.
1층과 2층에는 양이나 기타 가축이 기거하던 마굿간과 포도주 압착기, 돌로 만든 두개의 긴 탁자가 놓여져 있는 식당 혹은 교실이 위치하고 있고, 3·4층에는 거주지와 교회, 병기고, 터널이 있다. 십자가 모양의 교회, 지하감옥 및 묘지는 지하층에 위치해 있다. 모든 통로와 비밀의 방들은 미로처럼 되어 있으며 적의 침입에 대비한 비상통로는 물론 비상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특히 미로처럼 얽힌 이들 통로들은 외부에서 침입한 자가 길을 잃게 하기 위해 여러 갈래로 나눈 것이라 한다.
또한 어떤 곳에는 밖에서는 열 수 없는 미닫이 바위문이 놓여 있었다. 이 문은 둥근 바퀴모양이었는데 성인 남자 대여섯명이 힘을 합쳐야 간신히 움직일 정도였다. 또한 각 문의 중앙에는 조그만 구멍이 나 있는데 이는 창을 집어넣어 밖에 있는 적을 찌르기 위함이란다. 이처럼 지하 도시전체가 하나의 요새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는 오늘날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의 지하벙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또한 각 층마다 환풍을 위한 수직갱들이 만들어져있어 아무리 지하 깊숙이 내려가도 숨쉬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땅속의 서늘한 공기에 점차 추위를 느낄뿐이다. 이처럼 지하도시 '데린구유'는 과학적인 환기 시설과 비밀통로, 갖가지 함정들로 완벽한 지하요새로써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모를 애처로움이 지하 도시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너무나 처절했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 태어나서 단지 종교적인 이유로 개미처럼 땅굴을 파서 살아야 했던 당시의 기독교인들. 과연 신앙이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이 이들을 처절한 삶의 구덩이로 몰아넣었는가. 물론 이들 초기 기독교인들의 오랜 투쟁과 성령에 대한 변치않는 믿음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기독교가 그 맥을 잇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온갖 박해와 탄압을 피해 깊은 땅 속으로 숨어들어와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일동안 이들이 그렇게나 믿었던 신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들이 온전히 땅을 파서 탄압을 피할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선사한 것인가? 그들이 믿는 신을 위해 이곳까지 숨어들어 처절하게 살다 죽음으로써 과연 그들은 구원을 받았을까. 영생을 얻었을까.
또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지하 깊숙한 곳에 만들어놓은 그들의 신앙 앞에 경의를 표한체 밖으로 나왔다. 오랜시간 어두운 땅 속에만 있다보니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다. 찌는듯한 중부 아나톨리아의 더위는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게 만들었다. 입구 앞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시원한 물을 사서 마셨다. 시원한 물줄기가 목구멍을 적시자 문득 데린구유의 과거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지하도시의 기독교인들. 그들은 신앙에 앞서 자신의 삶을 한번쯤 돌아볼 여유는 없었는지 다시한번 묻고 싶다.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도망자가 되어 이곳에서 죽어간 부모들이야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자식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의 믿음에 의해 이곳에서 고생하다 죽어간 어린 자식들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의지가 결여된 믿음이 과연 신앙이란 이름 앞에 용서받을 수 있는건지. 시원한 물줄기는 여전히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풀지못할 갈증에 목마르고 있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