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인 양부모에게 입양됐어요"

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내 이름은 '전동휠체어'

등록 2003.04.20 11:25수정 2003.04.2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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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전동휠체어'다. 솔직히 예쁜 이름은 아니다. 그래서 불만이 많다. 첫 인상만큼이나 이름이 중요한데 너무 촌스럽다. 하도 투덜댔더니 엄마는 얼마 전부터 '우리 예쁜이'라고 불러주신다. 그리고 한창 외모에 신경 쓸 시기라 그렇다며 놀리신다. 하지만 내 이름만 듣고 못 생겼을 거라고 추측할 많은 소년휠체어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비록 특출나게 빼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빠지는 인물도 아니다.


뚱뚱하면 외출도 못해

하나하나 따져볼까? 커다란 두 바퀴는 튼튼하고, 두 개의 보조바퀴는 앙증맞도록 귀엽다. 더구나 보조바퀴는 펑크 걱정 없는 노펑크 타이어에다 높낮이까지 조절된다. 엄마의 욕창을 방지하려고 촌스런 방석을 깔긴 했지만 검정색 시트와 등받이는 편안한 느낌을 준다. 밧데리와 발 받침은 분리가 가능해서 외출하지 않을 때 집안에서 놀기 편하다.

어디 그뿐인가? 좌우손잡이 어디에나 달 수 있는 조정 레바는 전후좌우 날렵한 움직임을 만들어준다. 그 누구도 쫓아오지 못할 시속 8㎞의 달리기 실력 또한 큰 자랑거리다. 최대 주행거리 30㎞라는 기록은 장거리 선수 기질을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는다.

아쉽게도 이렇게 완벽한 내게 흠이 있다면 그것은 몸무게다. 배터리를 포함해서 72㎏의 몸무게는 감당하기에 버겁다. 키 1m15㎝에 폭 58㎝라서 보기에도 펑퍼짐해 보인다. 그래서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다이어트다. '뚱뚱'은 아니고 '통통'(자존심은 있으니까)에 가깝지만 '날씬'해지고 싶다.

아! 어떻게 해야 날씬한 몸매를 가질 수 있을까?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엄마는 형이상학적인 표현으로 미(美)를 추구하는 나의 욕망을 무시하기 일쑤다. 다이어트를 위해 굶겠다(밧데리 충전 거부)고 선언하자 밧데리를 하나 더 사서 몰래 충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지 않겠는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협박과 방해만 하는 우리 엄마. 미워!


잠깐 이야기가 샛길로 빠진 김에 엄마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우리 엄마는 '척수 장애'를 지녀 허리 아래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나를 '입양'했다. 우리 엄마는 무척 씩씩하고 재미난 분이다. 노래도 잘 해서 툭하면 노래방에 가자고 조른다 (이럴 때면 꼭 철부지 어린애 같다!). 노래방에서 우리 식구들은 엄마 노래 10곡을 먼저 들어야만 마이크를 잡을 수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누가 우리 엄마 좀 말려줘요!'라고 속으로 외친다. 킥킥. 이래서 밉다가도 금세 엄마가 좋아진다.

몸매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통통해서 불편한 것은 외출할 때다. 엄마는 운전을 할 줄 몰라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데 그때마다 간이 콩알만해지도록 조마조마하다. 지난해 지하철에 설치된 리프트로 계단을 내려가던 할아버지 전동휠체어가 굴러 떨어져 돌아가신 사건이 있었다. 그 후 리프트가 더 무서워졌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지만 없는 곳이 더 많아서 어쩔 수 없다. 저상버스라도 많으면 좋으련만.


리프트뿐 아니라 지하철 타기도 만만치 않다.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의 간격이 넓어 바퀴가 빠지면 오도가도 못하게 돼 위험하다. 이럴 때 지하철이 출발하기라도 하면 어쩌란 말인가.

'장애인, 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을 보면 지하철역 승강장과 차량 사이의 간격을 3㎝이내로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20㎝이상 벌어진 곳이 13곳, 10-15㎝가 213곳이나 된단다. 심지어 간격이 29㎝와 28㎝까지 벌어진 곳이 있다니 내 바퀴는 안중에도 없는 부당한 처사다. 법대로 하면 모두 안전하고 편할 텐데 왜 제멋대로 하는 걸까? 아마 우리처럼 비싼 값을 치르고 지하철 타는 휠체어도 없을 거다. 늘 세상에서 가장 비싼 '목숨 값'을 내니 말이다.

돈 없으면 입양 안 되는 보장구들

외출하면 화나는 일이 꼭 한두 가지씩 생긴다. 지난 달에는 더 기막힌 일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내친 김에 다 해야겠다. 우리 가족은 안면도 꽃축제를 가기 위해 서울역에 갔었다. 기차를 한번도 타보지 못한 엄마를 위해 아빠가 특별히 계획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떠나지 못했다. 내가 뚱뚱해서... 아니, 기차 탓이다. 날씬한 휠체어만 타라고 객차 문을 너무 좁게 만들었다. 나처럼 예쁜 휠체어를 거부한 기차, 널 꼭 타고 말겠어!

엄마와 외식을 할 때면 우리는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들어갈 수 있는 곳'을 골라야 한다. 세상이 내게 맞춰주지 않으니 내가 세상에 맞춰주겠다고. 그래서 살 뺄 생각을 하는 거다! 골똘히 '다이어트를 어떻게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느닷없이 꿀밤이 날아왔다.

"감히 누가 날 때려?"
"너 또 살 뺄 생각하고 있지?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겠니? 그냥 생긴 대로 살아."


언제나 날 놀리는 최대 강적, 오빠였다. 오빠 이름은 '수동휠체어'다. 우리 남매는 몇 년 전 입양됐는데, 오빠는 나보다 먼저 엄마 품에 안겼다. 가끔 오빠는 농담처럼 나 없을 때가 행복했었다고 투덜댄다. 내가 귀여움을 독차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오빠의 바퀴를 굴려야했던 엄마는 날 입양한 후 나하고만 외출한다. 그러니 오빠가 심통을 낼밖에. 나를 입양하던 날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감탄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힘들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장애를 지닌 엄마나, 우리들 휠체어에게 최대의 행복이다.

그러나 행복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컸다. 오빠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바로 '돈'이다. 얼마 전까지 엄마는 우리가 상처를 입을까봐 비밀로 했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입양 된 지 꼭 2년 되던 날이었다.

"엄마, 내가 입양될 때 어떤 서류들이 필요했어요?"
"뭐? 그... 그건 왜 묻니?"


화들짝 놀라는 엄마의 예상하지 못한 모습에 더욱 궁금해져 꼬치꼬치 캐물었다. 듣고 보니 엄마가 숨길 만했다. 오빠를 입양할 때 엄마는 의료보험조합에서 30만원을 돌려 받았다고 한다. 오빠의 입양비가 45만원(제일 싼 비용)이었으므로 약간의 돈만 부담하면 됐다. 의료보험에 가입한 등록장애인에게 5년에 딱 한 번 구입가격의 80%를 보조하는 혜택(30만원이상의 휠체어를 구입할 경우 30만원까지 보조)덕분이었다.

모든 보장구도 아니고 달랑 12개 보장구 친구들만 해당됐다. 그런데 나는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보장구였다 (뭐야, 날 차별하는 거야?). 엄마는 나를 입양하기 위해서 몇 년씩 부었던 적금을 해약하고 250만원을 지불했다. 그래도 가장 저렴했단다(장애가 심한 부모의 휠체어 입양비는 최고 700만원이다).

보장구 친구들이 모두 입양되는 그 날을 꿈꾸며

입양에 대한 모든 비밀을 알고 난 후 꽤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돈으로 우리의 입양이 좌지우지된다니 소름이 끼쳤다. 돈이 뭐길래 보장구의 삶을 이토록 허망하게 만든단 말인가!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휠체어의 역사가 알고 싶어졌다. 역사를 알아야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이 풀릴 테니까. 열심히 공부를 한 덕분에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찾게 됐다.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기특하다.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고민을 해결하는 자랑스런 '스스로 휠체어'다.

자랑은 그만하고 계속 이야기해야겠다. 휠체어는 장애를 지닌 양부모를 위해 태어났다. 장애를 지닌 부모에게 입양되는 보장구는 양부모의 몸 같은 존재다. 신체장애를 덜어 줘 재활을 돕기 때문이다.

역사 공부를 하면서 보장구 친구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나라 보장구 인구는 평균 39.6%다. 시·청각장애인 가정에 입양되는 친구가 가장 많고, 뇌병변장애인 가정, 지체장애인 가정 순이다. 난 역시 학구파다. 근거 있는 자료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솜씨. 감히 누가 따라 할까나?

하지만 5년 주기로 조사하는 보건사회연구원의 '2002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아직도 장애인 중 절반이 경제적 부담 탓에 보장구 입양을 못하고 있단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난 정말 슬프다. 나처럼 낙천적인 휠체어가 슬프다고 할 정도면 정말 끝내주게 슬픈 거다. 미국 등 선진국은 장애인이 보장구를 입양할 때 전액을 지원하거나 본인부담금을 최소화해준다는데 우리나라는 뭘 하고 있는 거지? 도대체 돈이 뭐냐고요. 누가 대답 좀 해봐요. 네?

적금을 열심히 부은 엄마 덕분에 나는 입양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입양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밤마다 엄마, 아빠 찾아서 울고 있지는 않을까?

아마 세상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마음'일 거다. 똑똑한 난 그렇게 생각한다. 입양되지 못한 보장구 친구들이 장애인 양부모의 품에 안기는 그 날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 고민하다가 우리 보장구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됐다. 이 글로 외로운 보장구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친구들아! 힘내. 알았지? 파이팅!

자랑스러운 휠체어 역사

엄마가 쓰는 역사로 치면 16세기 후반, 귀족 제한 러마이트가 스페인 왕 필립 2세를 위해 제작했던 중환자용 의자가 전설로 내려오는 우리의 선조다. 1554년 안토니오 모르가 그린 초상화에 자세히 묘사돼 세상에 알려졌다. 천으로 누빈 등받이와 경첩이 달린 팔걸이, 등과 다리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톱니바퀴가 장치되어 있었다. 선조의 자세한 기록은 아무런 자취도 남아있지 않고, 브뤼셀의 왕립도서관에 측면도만 전해지고 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 휠체어의 직접적인 조상이 나타났다. 영국의 존 조셉 메를린이라는 발명가 덕분에 우리 조상은 세 개의 바퀴가 달린 중환자용 의자로 진화됐다. 앞쪽에 두 개의 바퀴를, 그리고 뒷부분에는 그보다 작은 바퀴를 달았다. 나무레버를 작동해 앞으로 나갈 수 있어서 성직자가 손을 더럽히지 않고 우리조상을 조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상들의 대규모 출현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1860년대 미국의 남북전쟁을 계기로 많은 신체장애인이 발생하면서 우리 조상들의 활약이 본격화되었다. 하루 수천대의 휠체어가 태어날 수 있도록 대형 공장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대 휠체어 조상에 대한 기록은 100년 전 독일 유물에서 발견됐다. 그후 100년 동안 조상들의 모습이 크게 진화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이 시대 조상들이 얼마나 진화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1932년 해리 제닝스는 사지마비 장애를 가진 친구 헤르베르트 에베레스트를 위해 우리 조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시켰다. 관 모양의 강철로 만들었는데 접고 펼 수 있는 형태로 현재 우리 휠체어의 모습과 비슷했다고 한다.

현재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우리들. 발명가 딘 케이먼이 '아이봇(iBOT) 3000'이라는 획기적인 휠체어를 탄생시켰다고 얼마전 신문에 난 기사를 본 적 있다. 이 휠체어는 사람의 평형감각 유지기능을 본뜬 회전의자(자이로스코프)와 센서를 갖췄다고 한다. 그래서 앞뒤쪽 바퀴 두개씩이 움직여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험한 길을 지나갈 수 있단다. 정말 멋진 일이다. 하지만 2만9천달러(3500만원)로 어마어마하게 입양비가 비싼 데다 한 팔로 운전막대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양부모여야 한다. 돈에다 능력 있는 양부모까지? 아이봇 3000아, 너 입양되려면 한참 기다려야겠다. / 박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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