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 이동중인 인도네시아 팀.임미정
흠…. 할 수 없이 차 뒤쪽에 앉아있던 단장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연습을 방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 워낙 북소리가 커서 내 소리가 안 들릴 줄 알았다는 것, 우리나라(?)이긴 하지만 나도 여행으로 왔기 때문에 연습실이 없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의 풀어질 것 같지 않았던 굳은 얼굴이 금방 부드러워졌다. 괜찮다고 하면서 자기도 미안하단다. 단장으로서 나와 같은 공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랬다고….
단원하나가 신기하게 생긴 빵과 과자를 나누어준다. 고맙다고 하며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고 물었더니 자기 어머니가 재 평양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대사관은 국가 대표로 온 그들을 각별히 환영하고 보살피느라 매일 인도네시안 간식을 보내주고 있단다.
재외동포 예술인을 제외한 다른나라의 예술단은 자기나라의 문화를 전하러 온 사절이기에 이렇게 자국의 대사관으로부터 보호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인도네시아팀은 그 후로 공연시에는 대사의 가족 전체가 와서 그들을 축하해 주곤 했다.
조총련 교포 아가씨에 '추파' 보내는 평양 남학생들
오후 3시. 모든 예술단은(이번 해는 약 650명) 개선문 앞에 자기나라의 민속 의상을 입고 집합했다. 거기서부터 2Km를 행진해 개막식이 열리는 4.25문화회관까지 가게 된다. 연도변엔 우리가 가끔 TV에서 보듯이 정말 수도 헤아릴 수 없는 평양시민들이 나와 있었다.
그분들은 정말 열심히,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셨다. 나는 물론 그분들이 100% 자발적으로 나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당연히 동원지시를 받았을 것이지만, 어쩌면 동원 명령 없이도, 전세계에서 모인 화려한 옷을 입은 예술단을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숫자의 사람이 모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진하는 우리 못지 않게 연도변의 사람들은 단조로운 일상사에서 볼 수 없는 축제에 흥분하는 듯이 보였고, 어린 아이들에게 각 예술단의 의상들을 설명하는 부모들, 예쁜 조총련 교포아가씨에게 추파(?)를 보내고 있는 젊은 남학생들의 표정은, 비록 동원되었다 했을지라도 능동적으로 이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개막식장엔 자주, 평화, 친선이라는 축전구호가 걸려 있고 여섯명의 각국 의상을 입은 대표들이 커다란 축전 휘장을 들고 나와 무대 위에 게양한다. 축사 등으로 이루어진 개막식이 끝나고 개막 공연이 있었는데 이것은 국내 예술단이 손님을 환영하는 의미로 벌이는 공연이었다.
그동안의 남북 합동 공연 때나 북의 서울 방문 공연 때 보여주었던 것처럼, 화려한 북의 공연 문화는 앞으로 우리가 통일이 되어서도 서로 독립적으로 지켜주고 발전 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쪽과는 사뭇 다르게 발달된 독특한 양식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 무용이나 민속 음악에 있어서 현대적인 과감한 기법 전환 등이 이루어졌고, 몸의 움직임이나 음악적 선율이 정적인 남쪽에 비해 역동적이다. 북에서는 1970년대에 민속악기의 대대적인 개량화가 이루어져 해금만 해도 소해금, 중해금, 대해금 등으로 오케스트라에서 낼 수 있는 현악기 소리를 모두 대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격적인 비교와 성격에 대해서는 후에 기회가 닿으면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