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싸래한 '더덕' 향에 취해봅니다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18>더덕구이, 더덕무침

등록 2003.04.29 00:25수정 2003.04.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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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에 막걸리 한잔 어떻습니까?
더덕에 막걸리 한잔 어떻습니까?김규환

누나 나물이나 캐러 산에 갑시다


일요일에 집에 머물러 있는 서울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다들 금요일 밤에 떠나고 토요일에 떠나고 여의치 않으면 일요일 오전에라도 대도시를 떠나 자연을 호흡하고 돌아와야 다음 주를 시작할 수 있는 시절이니 좋은 세상인가 보다. 다들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여가를 즐기니 내 몸이라고 서울서 머무를 수 없다.

일요일 아침 누님에게 전화를 했다.

"누나 왜 그리 헉헉거려?"
"응, 러닝머신을 탔거든…."
"내가 뭐라 했어. 평소 운동하라 했잖아."
"이렇게 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
"가까운데 좋은 산 두고서 왜 그래? 그렇게 갑자기 운동하면 약한 연골 때문에 더 고생할 수 있다니깐…. 그런 기구는 차차 하시고 우리 나물이나 캐러 갑시다."
"어디로 갈려고?"
"용문산이나 중미산, 아니면 유명산 근처로 가지 뭐…."
"그래 네가 잘 아는 곳으로 가자."
"알았어요. 얼른 밥 먹고 다시 전화 드릴게."

얼룩제비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틀리면 정정해 주세요.
얼룩제비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틀리면 정정해 주세요.김규환

부랴부랴 아내를 채근하여 서둘러 밥 먹고 아이들 먹을 것 챙기니 전화한 뒤로 1시간 반이 지났다. 다시 전화를 걸어 밥은 우리가 싸 가기로 했다. 마땅히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있던 반찬만 싸면 되었다. 김장 김치 1/4쪽, 양념고추 6개, 취나물 무침을 주섬주섬 옆옆이 넣었다. 누나는 삼겹살 조금을 준비하기로 했다.

얼마 전 조카딸 아영이가 서울 모 외국어고에 입학해 마석 근처에 살다가 좀 더 가까운 곳인 구리시로 이사한 곳까지 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30분 만에 도착했다. 형제들끼리 자영업을 하시는 매형은 일요일도 일 나가고 없었다.


묘지 근처에 할미꽃이 많은 이유는 건조하고 척박하며 석회를 뿌리기 때문이랍니다.
묘지 근처에 할미꽃이 많은 이유는 건조하고 척박하며 석회를 뿌리기 때문이랍니다.김규환

나물 캐다 뱀을 보다

구리시를 빠져나가 양평으로 가는 6번 국도를 이용했다. 미리 빠져나간 때문인지 한산했다. 한화리조트가 있는 중미산을 넘어 유명산 근처 '어비계곡' 근처에 이르렀다. 감기 걸린 아이들을 데리고 갔으므로 응달진 곳이나 계곡 바짝 다가선 곳을 피해 자리를 잡다보니 꽤 시간을 허비했다. 1시가 곧 되어 점심을 먹었다. 해강이와 솔강이는 오랜만에 들로 나오니 제 세상인 것처럼 어른들 밥 먹는 것을 방해하며 마구 돌아다녔다. 삼겹살에 집에서 갖고 간 와인 한 병을 셋이서 나눠 먹으니 넉넉한 기분이 들었다.


밥 먹는 곳에 도착하기 전 잠깐 뜯은 나물은 한 줌 밖에 안되어서 밥을 먹고 나서 아이들과 아내를 두고 잠시 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산에 들었지만 온 산이 잣나무 천지라 나물은 거의 없었다. 활엽수 있는 곳이라야 나물이 있는 법. 잣나무를 피해 골짜기로 접어들자 묘지 근처에 뾰족뾰족 고사리며, 다래 잎이 얼굴을 내밀고 반가이 맞는다. 이장한 묘 터에는 할미꽃이 여럿 피었다.

더덕은 싹 두께에 비례해서 뿌리가 드는 게 일반적입니다.
더덕은 싹 두께에 비례해서 뿌리가 드는 게 일반적입니다.김규환

"누나, 여기 고사리 있네." 하고 불렀더니, "응 알았어." 하고 내 옆으로 금새 가까이 왔다. 산나물 중에 두릅과 취나물, 고사리가 자웅을 겨루지 않는가? 간혹 더덕 몇 뿌리 캐면 그날은 '운수좋은 날'이다.

"야, 저기 뱀 있다."
"어디요?"
"쩌기…."
"까치 독사네요."
"그 쪽으로 가지 마라."
"알았어 누나."

근처에서 얼마를 버티지 못하고 빠져 나왔다. 한끼는 족할 나물을 뜯었다 싶었는지 누나는 곧 차 근처로 가서 전화를 한다. 곧 가겠다고 하고는 산언저리 물가로 향해서 모퉁이를 끼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더덕캐다 한 손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법 길지요?
더덕캐다 한 손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법 길지요?김규환

더덕 50뿌리가 뭉쳐 있었다.

낭떠러지 근처에 있는 두릅도 이미 윗동은 거의 따 가고 없다. 취나물을 조금 뜯어 마저 내려왔다. 아래쪽에 두릅나무 큰 것이 20여 그루 모여 있어 그냥 구경이나 하고 옆에난 작은 싹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하고 도랑 근처로 내려왔다.

한두 발짝 옮겼을까? 내 기억 속에 진하게 남아 가슴을 떨리게 했던 아련하고 진한 향기가 상체를 감쌌다. 분명 위쪽에서 내려 올 때는 내음이 나지 않았었다. '오호. 이것이 뭣이다냐? 그래 많이 맡아 본 냄샌데?' 하며 바로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한 발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바닥을 내려다본 나는 횡재했다는 직감을 받고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앉아서 찬찬히 둘러 보니 50뿌리 이상이 젓가락 보다 두꺼운 줄기를 내밀고 세상 구경을 나와 있었다. 차 근처에 있을 것 같은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약 괭이를 갖고 오라고 했다. 누나가 오는 사이 나무를 꺾어 더덕을 중심으로 양옆을 푹 푹 질러 캐나가기 시작했다.

내 한 뼘보다 길게 자란 더덕. 모래 땅이어서 길게 자란 것 같습니다. 도라지 같지만 실제 더덕입니다. 집으로 가져와 길이를 잰 까닭은 이 만큼 긴 더덕뿌리는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내 한 뼘보다 길게 자란 더덕. 모래 땅이어서 길게 자란 것 같습니다. 도라지 같지만 실제 더덕입니다. 집으로 가져와 길이를 잰 까닭은 이 만큼 긴 더덕뿌리는 처음이기 때문입니다.김규환

한 개 캐면 주위에 있던 자잘한 대여섯 개가 한꺼번에 따라 올라왔다. 100여 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누나가 괭이를 찾느라 그런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나는 그 동안 거의 다 캐가고 있었다.

누나가 도착해서는 대뜸 하는 말이 걱정 많은 아낙 행세를 한다.
"이렇게 한 군데 많은 걸 보니 누가 심어 놓았나 보다."
"한 평도 안 되는 이런 비탈에 누가 심었겠습니까? 더군다나 작년에 농사지은 흔적도 전혀 없는데요 뭘…."
"그래도 얼른 가자야~"
"알았어요. 평생 도둑질은 못할 집안이라니까…. 그럼 먼저 나가있어요. 큰 거 두 개만 더 캐고 나갈게."

마저 캘 만큼 캐서 나오려는데 해강이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솔강이가 아장아장 제 엄마와 같이 걸어온다. 손에 찐득찐득한 하얀 진이 가득 묻어 아이를 바로 안아 줄 수도 없었다.

한 평도 안되는 곳에서 10여 분 만에 캔 더덕. 꽤 많지요? 누나랑 나눴습니다.
한 평도 안되는 곳에서 10여 분 만에 캔 더덕. 꽤 많지요? 누나랑 나눴습니다.김규환

찐득찐득한 더덕 향기 안고 서울로 돌아와

제 딴에는 길을 안답시고 양평으로 난 6번 경강국도를 두고 46번 경춘국도 쪽으로 차를 몰았다. 청평댐 근처에 이르러서 잠시 고민하며 건너편을 보니 차가 밀린다. 서종면을 거쳐 양수리 쪽으로 향했다. 10 여분 달렸을 때까지는 잘 달렸다. 그 뒤로 1시간 반 가량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도로에 갖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금·토·일 3일간 서울을 빠져나간 차량이 일요일 오후 한꺼번에 서울로 향한 때문이다.

아이들도 보채기 시작했다. 운전자인 나도 발이 마비될 지경이었고 잠복기를 지내고 4일 전에 발병한 눈병에 피로가 몰려왔다. 양수리 다리가 보일 무렵 차를 돌려 다시 신청평대교를 건너 경춘국도를 거쳐 마석을 지나 덕소 방향으로 해서 금곡을 거쳐 구리 누나네에 도착하니 5시에 출발한 차가 9시에 도착했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에는 눈병이 심하게 도졌다. 한 눈은 반쯤 감기고 눈꼽이 쉴새 없이 끼어 가만 두질 않았다. 안약을 넣고 여러 번 씻어봐야 별 소용이 없다.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넘어 잠을 자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좋지 않는 몸이 되었다. 오죽했을까. 토요일 친구네 밭에서 종일 일하고 그리 오래 운전을 했으니 지칠 만도 했다.

인천 계양산에서 토요일에 뜯어온 산부추를 며칠 동안 먹고 있습니다. 꽃도 이쁘지만 막 돋아난 산부추가 산더덕과 어울릴까요? 아이 손가락 만큼 넓습니다. 향도 좋구요. 독하지도 않답니다.
인천 계양산에서 토요일에 뜯어온 산부추를 며칠 동안 먹고 있습니다. 꽃도 이쁘지만 막 돋아난 산부추가 산더덕과 어울릴까요? 아이 손가락 만큼 넓습니다. 향도 좋구요. 독하지도 않답니다.김규환

더덕무침·더덕구이에 막걸리 한잔

고구마 기사 한 개 쓰고 한숨 자고 또 한 개 쓰고 또 한숨 자니 조금 나아져 아내가 도착할 즈음 더덕무침에 더덕구이를 하기로 작정했다. 오늘은 조금 색다르게 더덕 싹도 같이 무치기로 하고 계양산에서 뜯어온 산 부추도 같이 넣기로 했다. 집에 들어오는 아내에게 막걸리를 사오라고 부탁했다.

고추장 세 숟갈 떠와 마늘 찧어 넣고 참깨 뿌려 들기름 한 방울 떨어뜨린 양념은 아내가 했다. 누나네에 반을 떨궈 놓고 가져 온 더덕만 해도 작은 것까지 껍질을 벗기니 스무 개가 넘었다. 손은 온통 진이 묻어 찐득찐득하다. 먹기도 전에 더덕 향에 취할 지경이다.

벗긴 더덕을 잠깐 물에 씻고 칼자루로 툭툭 찧어 부드럽게 한 뒤 양념에 뒤적여 무쳐서 한 잎 "쏘옥~" 맛보고 저녁밥에 무침, 구이 한 접시씩 담아 오랜만에 부부가 저녁을 즐기며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니 쓴맛은 어디 가고 달콤함만 가득하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신 것은 주로 구이였는데 무침도 맛있네요."
"구이는 타지만 않으면 맛있겠는데 고추장을 바르니 아무지 약한 불에 구워도 타 버리니 조금 그래요."
"울 오빠도 이런 것은 무척 좋아하는데…."
"누가 이런 맛 싫어할 사람 있겠습니까?"

지금 아내와 아이들은 아무 소리 없이 오랜만에 곤한 잠을 자고 있다.

아내는 더덕구이가 더 맛있다고 합니다. 평소 먹어본 습관이 작용한 걸까요? 그래서 한 개 더 먹게 했더니 좋아합니다.
아내는 더덕구이가 더 맛있다고 합니다. 평소 먹어본 습관이 작용한 걸까요? 그래서 한 개 더 먹게 했더니 좋아합니다.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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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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