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유해매체물에 '동성애' 삭제키로

청보위, '동성애,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토론회서 밝혀

등록 2003.04.29 22:27수정 2003.04.3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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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동성애,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에 관한 토론회 모습
29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동성애,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에 관한 토론회 모습류종수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이승희, 이하 청보위)는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 포함돼 있는 '동성애'를 삭제키로 했다.

청보위는 지난 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청소년을위한내일여성센터(회장 최영희)와 공동으로 <동성애,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밝혔다.

현행 청소년보호법(이하 청보법) 시행령 제 7조는 '수간을 묘사하거나 혼음, 근친상간, 동성애, 가학·피학성음란증 등 변태성행위, 매춘행위 기타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하는 성관계를 조장하는 것' 등을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청보위는 앞으로 이 심의기준에서 동성애자의 인권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동성애'를 제외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날 토론회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가 동성애자의 인권보호차원에서 청소년보호법상(이하 청보법)의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 중 '동성애' 관련조항을 삭제 권고한 이후 동성애자의 인권차별을 해소하면서도 동성애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심의기준 등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청보위 이승희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 '동성애'를 삭제하기로 했다"면서 "이날 토론회가 청소년 보호와 동성애 표현의 자유의 합리적인 접점을 찾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청보법 '동성애' 삭제하기로...
"동성애 표현물은 이성애자 표현물 수준까지 허용해야"


이날 내일청소년상담소 김영란 소장은 서울, 경기도지역 청소년 1483명(남자 435명, 여자 1048명)을 대상으로 동성애에 대한 의식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중 약 45.4%가 동성애 표현물을 접촉한 경험이 있고, 6%는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닌가 고민하고 있으며 동성애에 대한 인식에서는(복수응답) 40%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36%는 '징그럽다'는 반응을 보여 조사대상 청소년이 대체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조사결과에 대해 김 소장은 "청소년들이 동성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통로가 부족하다"면서 "올바른 동성애 인식을 위해서는 동성애와 동성애를 상품화한 음란성 표현물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비슷한 견지에서 천근아 관동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도 "동성애 표현물 자체가 청소년기의 성적지향을 바꾸게 만드는 것은 아니나, 동성애 표현물도 등급을 정하여 일반포르노나 음란물과 마찬가지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천 교수는 또 동성애의 원인에 대해 "요즘은 유전적, 선천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동성애 성향이 나타난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소개하면서 "사회문화적 편견들로 인해 동성애적 성향을 갖는 아이들이 건강한 레즈비언이나 게이로 성장하지 못하게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이런 청소년들에게 이성애자로 억지로 성적 지향을 바꿔놓으려 하는 태도가 오히려 더욱 큰 정신병리를 유발시킬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구승회 동국대 윤리문화과 교수는 "차이를 인정해야 차별이 없어진다"면서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사회적 소수인 동성애자들에게 이성애자들이 사회적 관용을 베푼다면 이들이 겪을 사회적 불이익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우리나라 법의 태도변화와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법적 차별에 대한 발제문도 발표됐다. 김태명 가톨릭대 법학과 교수는 "동성애자의 법적 대응은 1)동성애 자체를 비범죄화시키는 단계 2)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시키는 단계 3)법률로써 동성애를 인정하는 단계로 나뉠 수 있는 데 우리나라 상황은 대체적으로 첫 번째 단계에서는 벗어났으나 아직 두 번째 단계까지 이르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은우 변호사는 "동성애가 더 이상 정신병도 질병도 아니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밝혀졌음에도 혼인제도나 작게는 국민연금제도 등에서 동성애자들은 차별을 받고 있다"면서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들이 성적 지향성의 차이로 차별과 폭력을 당하지 않게 보호할 수 있는 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 없는 청소원보호위원회 토론

하지만 이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동성애 옹호' 발언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한 발제자로 참석했던 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부대표(동성애자)는 동성애자 인권문제를 '자비'와 '관용'을 베풀 듯 시혜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며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동성애자임을 자각하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다. 기댈 곳이 없기 때문에 결국에 같은 동성애자를 찾게되는데 이들이 정말 바라는 것은 심리적 유대감과 정신적 교감이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이 이들이 올바른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자본가가 관용과 자비를 베푼다고 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이성애자들이 특권을 버리지 않고서는 동성애자의 동등한 삶은 불가능하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10여명도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진지하게 방청했다. 이 단체 정욜 대표는 토론이 끝나고 방청객 질문시간에 "청소년이면서 동성애자인 사람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이번 토론회가 어이없다"면서 "전체적으로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아직 민감한 동성애 문제가 청보법상의 조문으로 인해 국무총리 산하 청보위 차원에서 논의됐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진일보한 면이 있다"는 것이 동성애인권단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법 조항 하나 고쳐서는 차별없는 세상 기대 못해"
한 동료를 떠나보낸 동인연 회원들도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지난 26일 20살의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끊은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연) 소속 윤모군의 동료회원들 10여명도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고인의 못다 이룬 꿈을 역설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나선 정율 대표는 "청소년의 입장은 전혀 들을 수도 없는 이번 토론회가 너무 실망스럽다"면서 "동성애자들이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사회 전반적인 여건을 만드는데 진심 어린 모습들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토론회가 끝나고 자리를 같이 한 동인연 회원들 대부분은 비록 "토론회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윤군의 마지막 당부 때문인지 토론회에 참석한 각오가 남달라 보였다.

유일하게 청소년으로 참석한 한 회원은 "당사자인 우리들의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어른들끼리 간접적이고 이론적인 이야기만 하면서 이번 토론회의 주체가 되어야할 우리 청소년들을 대상화시키고 그래서 현실 대안적인 이야기는 나오지도 못했다"면서 "아직 성적 정체성이 이뤄지지 않은 청소년이기 때문에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또 동성애자는 이유로 다시 억압당해야하는 현실은 우리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이중적인 차별을 겪고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들은 착한 동생이자 성실한 회원이었던 윤군을 떠나보내며 보다 발전적인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번 토론회가 모두 기대에 못 미친다는 입장이었다.

동인연 소속 한 회원도 "오늘처럼 법 조항 하나 바꾼다고 해서 우리 동성애자들의 삶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더욱 실질적으로 싸워나가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자리였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편 평소 시 쓰기를 즐겨했다는 윤군은 자신이 죽기 하루 전날인 25일에도 평화로운 낙원을 그리는 한 편의 시를 남겨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에덴 동산을 그리워하며>

허황된 욕망땜에 백합들이 죽어간다.
자유의 여신상은 지금 무얼 들고있나.
한손엔 살생계획부 또 한손엔 무기를

가여운 무슬림들 어디로 가야하나
아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떨고있다.
노인은 후들거리며 한숨만 푹 내쉰다.

하늘엔 천사대신 시커먼 대포가 '쾅!'
들판엔 나무대신 굵직한 총이 '탕!'탕!'
여기는 루시퍼 제국 사탄들의 세계다.

황제는 루시퍼 황태자는 조지 부시
원국(元國)도 로마국도 비교할 수 없는 대제국
우리는 에덴의 시민, 망한 에덴의 시민.

한맺힌 영혼들의 울음소리 들리는가.
여자들 어린이들 노인들의 한스러움.
저 자는 폭군 네로보다도 더 잔악한 황태자.

황제는 물러가라! 황태자도 물러가라!
우리의 에덴 동산 지금 당장 돌려줘라!
이 곳은 천인(天人)의 세계, 사탄들은 물러가라!

꽃따라 별따라 에덴으로 가고파도
사라진 곳이기에 아쉬움만 커져간다.
그리운 에덴 동산이여, 평화로운 낙원이여.

             -2003. 4. 25. 육우당 (윤군의 아호)


/ 류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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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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