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흐흐! 이제 네놈의 무릎 깊숙이 깨진 사금파리가 박히면 평생 병신이 될 것이다. 크흐흐! 무엇들 하느냐? 어서 올려라!"
"예! 올리려고 합니다. 하오나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아서…"
"으으으! 이런 잔인무도한 놈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으으으! 으으으으윽!"
"흥!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직도 모른다고? 좋아, 그렇다면 알아듣게 말해 주지. 네놈은 어제 다향루 삼층에서 화담이라는 늙은이에게 본성의 성주님을 무어라 하였느냐? 무어? 미치광이? 그 말을 한 것만으로도 네놈은 죽을죄를 지었느니라."
"으으으! 그게 죽을죄라고?"
"그렇다. 본좌는 네놈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그랬다면 너그럽게 용서해주려 하였다. 하지만 차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는 법이 없는 물건이지. 네놈은 맨 정신인데도 감히 하늘같으신 본성의 성주님을 모욕하였으니 죽어 마땅하다."
"뭐라고? 하늘같은 성주님? 그 더러운 전쟁광 구부시가 하늘 같다고? 으하하하! 이제 보니 네놈은 눈깔이 삐어도 한참을 삔 놈이었구나. 으하하하! 으하하하!"
지독한 통증이 느껴질 터인데도 형을 당하는 사내는 오히려 호탕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이런 괘씸한…! 무엇 하느냐? 어서 올려라!"
"지, 지금 올리는 중입니다."
분타주의 명에 다듬잇돌을 올려놓으려던 정의수호대원은 어쩔 줄 몰라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현재 바닥에는 깨진 사금파리들이 많이 놓여 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그것을 가죽으로 만든 당혜(唐鞋)는 견뎌내지 못한다. 따라서 디디기만 해도 발바닥에 깊은 상처가 생길 것이다.
맨몸으로도 그럴진대 육중한 다듬잇돌을 두 장이나 들고 있으니 상처는 더 심하게 날 것이다. 하여 약간 떨어진 곳에서 돌을 올려놓으려는데 형을 당하는 죄수가 자꾸 움직이기에 떨어지거나 쓰러지지 않게 올려놓는 것이 쉽지 않다.
누군가가 있어 양쪽에서 잡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건만 분타주가 모두 물러가게 하였기에 그럴 수 없어 우물쭈물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무엇하는 게냐? 어서 올려놓지 못하겠느냐?"
"예예! 지금 올리고 있습니다."
"나쁜 놈! 네놈이 이런다고 구부시가 미치광이가 아닌 줄 아느냐? 그런 놈이 성주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무림천자성은 반드시 멸망하고야 말 것이다."
"이런 미친놈이 어디서 감히…? 에잇! 뒈져랏!"
퍼어억―!
"으으윽!"
우당탕탕―!
"허억!"
쿵―! 와장창―! 지지지직!
"으아악!"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허보도의 거친 발길질이 형을 당하는 사내의 얼굴에 격중되면서 옆으로 쓰러짐과 동시에 아슬아슬하게 올려져 있던 여섯 장의 다듬잇돌이 한쪽으로 쓰러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듬잇돌을 올리려던 정의수호대원의 발로 떨어지자 놀란 그는 들고 있던 돌을 놓고는 뒤로 물러섰다.
한 장은 맨 바닥에 떨어졌으나 위에 있던 것은 곁에 있던 화로로 떨어졌다. 워낙 육중한 돌이었기에 한참 시뻘겋게 달아 있던 화로는 맥없이 부서졌고, 동시에 그 안에 들려 있던 인두 하나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런데 이것이 하필이면 쓰러지는 사내의 몸으로 떨어졌다. 고문을 하려고 준비해둔 인두는 시뻘겋게 달아 있었기에 금방 고기 타는 노릿한 냄새와 더불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설명은 길었으나 상황은 순식간이었다. 이것을 본 이회옥이 황급히 내려서는 순간 분타주가 인두를 걷어찼다.
"에이, 제기랄! 엇! 순찰이 어인 일로…? 핫핫! 유람은 즐거우셨소이까?"
"예! 덕분에… 헌데…?"
"핫핫! 그 동안 일이 좀 있었소이다. 참, 총단에서 전갈이 왔소이다. 이놈을 다시 하옥하고 갈 터이니 잠시 집무실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오. 뭐 하느냐? 이놈을 끌고 즉각 본좌를 따라라!"
"존명!"
말을 마친 허보도는 즉시 등을 돌렸다. 그러자 정의수호대원이 혼절해있는 죄수를 질질 끌고 그의 뒤를 따랐다.
이회옥은 흩어져 있는 고문 도구들을 보는 순간 몸서리를 쳤다. 시뻘건 선혈이 묻어 있는 굵은 침들이 있는 것을 보니 손톱이나 발톱 밑에 그것을 박았던 모양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아픈지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엎어놓고 장형(杖刑)에도 처했었는지 형구(形具)와 곤장(棍杖)도 보였다. 곤장에도 흥건한 선혈이 묻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엉덩이 살이 터지도록 내리친 모양이었다.
압슬에 처하려고 구해놓은 다듬잇돌들도 십여 장이나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살난 화로와 인두, 그리고 여전히 타고 있는 숯들이 널려 있었다.
이회옥이 몸서리를 친 것은 인두 때문이었다. 무림지옥갱에서의 신분증을 만들어준다면서 시뻘겋게 달은 인두를 들고 오던 정의수호대원이 떠올랐던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었는지라 얼른 발걸음을 돌린 그는 분타주 집무실로 향하였다.
그곳의 입구에는 늘 둘 이상의 정의수호대원들이 지키고 있는 곳이건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없었다. 사실 정의수호대원이 있다한들 이회옥의 발걸음을 제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늘같은 상전이기 때문이다.
"흐음! 이건 뭐지? 순찰보고서? 흐음! 총단으로 보내려는 것인 모양이군. 헌데 대체 뭐에 대한 보고서지? 혹시 순찰인 나에 대한…? 후후후! 설마 놀러만 다닌다고 쓴 것은 아니겠지?"
무심코 집무실을 배회하던 이회옥의 눈길을 끈 것은 주사(朱砂)로 쓴 듯한 붉은 글씨 때문이었다.
무림천자성의 문서 가운데 붉은 글씨로 된 표지는 대외비(對外秘)나 극비(極秘)로 분류되는 문서에만 국한된다.
이회옥이 이것에 관심을 보인 것은 분타에서 총단으로 보고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총단에서 내려보낸 것이라면 굳이 들춰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도 같은 것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달랐다.
분타주가 작성하여 총단으로 보고하는 문서는 순찰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순찰 역시 총단으로 보내는 보고서를 분타주에게 보여줄 의무가 없다. 따라서 자신은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회옥이 순찰보고서라는 표지를 달고 있는 문서를 집어든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지금쯤이면 자신에 대한 평가를 총단으로 올릴 때가 되었기에 그것인 줄 알고 집어든 것이다.
"어! 이건…?"
보고서를 펼쳐든 이회옥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마차에 치어죽은 두 소녀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였다.
표지를 넘기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사실을 왜곡시키지 않고 기록하였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그 다음엔 마차를 몰았던 무림천자성의 호위무사 마구위(馬九爲)와 배루난(裵累難)의 사고 직후 진술도 기록되어 있었다.
둘은 술을 마셨으며 두 소녀를 보는 순간 살심이 발동하여 죽이려고 작정하였고, 한번에 죽지 않자 마차를 앞뒤로 몰아 끝장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였다. 한낱 선무곡의 어린 계집 둘을 죽인 게 무슨 문제라도 되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지나가는 개를 발로 차서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왜 이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 분타에서 심문까지 하느냐고 항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을 읽던 이회옥은 부르르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천자성이 어떤 곳인지 열변을 토하던 홍여진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이회옥은 분타주 집무실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분노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분타주가 다가오고 있었다.
"핫핫! 이거 높으신 순찰을 너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헌데 총단에서 무슨 전갈이…?"
"하하! 그건 농담이었소이다. 본관이 순찰에게 생색 좀 내고 싶어 그런 말은 한 것이오. 하하! 그나저나 오늘쯤 올 줄 알고 좋은 선물을 하나 준비해 두었소이다."
"예에? 선물이요?"
"하하! 그렇소이다. 그 동안은 골치 아픈 일이 많아 새로 부임한 순찰에 대한 대접이 시원치 않아 미안했소이다. 그래서 변변치 않지만 순찰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였소이다. 마음에 안 들더라도 너그러운 아량으로 받아주셨으면 하오."
"…….?"
"핫핫! 선물은 순찰의 처소에 있소이다. 가서 보면 알게 될 것이오. 핫핫! 핫핫핫핫!"
"……?"
선물이란 주면서 생색을 내는 것이다. 헌데 처소에 가져다 놓았다니 이회옥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핫핫! 가보면 알게 될 것이오. 자, 그럼, 본관은 바쁜 일이 있어 또 나가봐야 할 듯하오. 그럼, 즐거운 시간이 되길…"
말을 마친 분타주는 집무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정의수호대원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나갔다. 홀로 남겨진 이회옥은 여전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자신의 처소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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