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땀흘리기> 한장면극단 쎄실
이강백씨는 71년 극작가로 데뷔한 후 30년이 넘도록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매년 신작이 나오고 그 작품이 모두 무대에서 공연된 우리 나라의 대표 극작가이다. 또 생존 극작가 중 유일하게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되어있다.
지난 4월 25일부터 30일까지 대학로 문예회관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이강백씨가 쓴 <진땀흘리기>가 중견 연출가 채윤일씨의 연출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작년 11월에 채윤일씨 연출로 초연되었고 그 해 연극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연극에 선정되었다. 올해는 '채윤일 연극시리즈'의 한편으로 재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당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도록 강요받았던 경종을 통해 이 사회가 선명성을 이유로 자신의 주장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공연이 한창이었던 4월 26일 문예회관 예술극장 로비에서 이강백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어 희곡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 희곡을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그 전부터 시, 소설, 희곡 장르를 가리지 않고 습작을 쭉 해왔다.
그 당시 펜클럽에서 문학강좌를 했었다. 시, 소설, 희곡을 들었던 수강생들이 모여서 4월 4일날 44명이 모여 '4ㆍ4회'라는 문학서클을 만들었다. 그때 '4ㆍ4회' 맴버 중에 연극을 좋아하는 또 작은 그룹이 생겼다. 나중엔 열너댓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때 참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녔다.
그 당시 우리 연극이 사실주의에 고착되어 있었다. 현실을 무대에 그대로 올리는 것이 물론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그대로를 무대에서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또 내 개인적으로는 '연극이란 전혀 현실과는 다른 장르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에는 시를 쓰려고 공부를 했는데 어떻게 신춘문예에 낸 희곡이 당선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녔다. 어렸을 적에 구경을 참 좋아했다. 내가 초등학교 어느 달인가 계산을 해보니까 한 달 중에 25일을 연극이나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때는 의무교육이라고 할지라도 월사금이라고 매달 학교에 돈을 냈다. 영화나 연극을 보러 다니느라고 그것을 집에서 타 쓰고 학교에 내지 않는 바람에 야단을 맞았다. 그때 대체 얼마를 다녔는지에 대해 자술서까지 썼다. 그 당시 연극은 '임춘앵과 그의 악단'이라든지 하는 여성극이 주였다.
시에 대한 공부가 희곡 쓰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요즘 희곡 쓰려는 후배들이나 학생들에게 시집을 많이 읽으라고 권한다. 소설이 나오기 이전에 시극, 그러니까 <오딧세이>라든지 <일리어드>라든지 그러한 것이 시의 형태로 되어 있다. 사실 희랍극이라는 극의 전통으로 보았을 때 시와 연극은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관계이다.
'나는 지금부터 희곡을 쓰겠다' 이렇게 결심한 것은 없고,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이 모아져서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희곡으로 데뷔한 것은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고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
- 희곡작가가 되기까지 혹은 되고 나서 작품을 쓰는데 영향받은 부분이 있다면.
"물론 인생의 영향이란 것이 전폭적으로 한 사람, 한 권의 책, 하나의 사상 이런 데서 순도 백프로의 영향력을 받을 수는 없다. 모자이크처럼 수백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퍼즐게임처럼 어떤 부분은 자신의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있다.
일단 책을 꼽는다고 한다면 <아라비안나이트>, <복카치오>, <캔터베리 이야기>, 또 우리 설화 그런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했다. <이솝우화>도 좋아하는 책이다.
우화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솝우화>에 있는 양치기 소년은 유명한 우화이다. 들판에서 양을 치는 소년이 너무 심심해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니까 농사꾼들이 일하다 말고 들판으로 늑대를 물리치기 위해서 온다. 재미를 느낀 소년이 다음에 심심할 때 늑대다 하니까 농부들이 또 왔다. 세 번째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년이 그러자 그때는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는데 아무도 안 왔다.
이러한 이야기에 삶의 근본적인 공식이 있다. 그 공식은 늑대, 소년, 농사꾼 이것이 다른 무엇으로 역할만 바뀔 뿐 근본적인 공식은 똑같다. 그런 것이 나에게 굉장한 영향을 주었다. 내 희곡은 우화적이다. 우화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서, 또 동양과 서양을 떠나 어디든지 통용된다.
이제 한가해 지면 우화극이라고 하는 작은 단막극들을 한 50편 정도 쓰고 싶다. 그것이 극작가로서 처음 데뷔할때의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