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 1층 중앙기자실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뒤편으로 보이는 책상에서는 각 언론사의 1진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며, 가운데 소파에서는 2진 기자들이 단신을 정리한다. 이중 중앙언론사의 1진 기자들만 풀 기자단으로 들어갈 수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기자실 개방이 전면 시행되면 조만간 '풀(pool) 기자단'을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는 모든 공식 행사에는 보통 11명의 기자(취재기자 2명, 사진기자 3명, ENG카메라 기자 6명)만이 근접해서 취재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거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들이 다른 기자들을 대신해 대통령의 말을 적고, 사진을 찍고, 움직임과 표정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청와대 기자들과 공유한다. 이것이 일명 '풀(pool) 기자단' 제도이다.
현재 풀 기자단은 기존 49개 언론사 중에서도 오직 28개 중앙 언론사 기자들만으로 구성돼 운영하고 있다. 21개 지방 언론사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기자실이 개방되면 약 130여개 언론사 200여명의 기자들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들은 어떻게 될까? 어느정도 마찰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춘추관 안팎의 시각이다.
<시사저널>의 한 정치부 기자는 "기존 풀 기자단에서 해온 것을 가지고 기사를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앙지와 지방지, 일간지와 주·월간지의 시각과 감수성이 다르다"고 말한다. 사진기자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취재기자는 풀 기자단이 전해준 내용을 재료로 기사를 만들 수 있지만, 사진은 특성상 현장에 없으면 결과물도 나오지 않는다. 청와대를 드나들면서 매일 윤태영 대변인의 얼굴이나 춘추관 건물만 찍을 수는 없는 터. 기자실 개방에 호의적인 사진기자들조차도 "풀 기자단 운영 방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기자실 개방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존 풀 기자단에 소속된 언론사 기자들은 말한다. 풀 기자단이 큰 기득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한 중앙 일간지 기자는 "기자 개인으로서는 잘해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욕만 먹는, 그야말로 피곤한 일거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풀 기자단 개방에 대해서는 선뜻 'OK'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청와대측은 잠시 한발 물러서 있다. 보도지원실의 한 관계자는 "풀 기자단 숫자를 늘이는 방안, 새로운 풀 기자단을 구성하는 방안, 구성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는 방안, 행사의 성격에 따라 구성을 조정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청와대측으로서는 관리 차원에서나 검증 면에서나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대로 하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그러자니 '정보의 독점권을 막고 접근 기회를 공평하게 한다'는 기자실 개방의 취지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풀 기자단 문제는 일단 기자실 개방 자체에 묻혀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지만, 조만간 터져나올 논쟁의 불씨다.
새로운 질서 : 긴장과 경쟁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로 취해진 대 언론 조치는 가판 구독 금지였다. 이후 기자실 개방 작업, 브리핑제 실시, 정정보도 및 반론보도의 철저한 적용 등이 잇따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월 1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에 대한 내 원칙, 취재보도에 대한 내 원칙을 보면 엄청 불편하지만 나는 이게 원칙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쉬운 일이 아닌걸 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말하는 '언론에 대한 원칙'은 "정부는 정부의 길을, 언론은 언론의 길을 간다"로 요약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출범 초기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등과 함께 춘추관 2층 대통령 회견장(상시 브리핑룸으로 개조중)을 둘러보고 있다.청와대 제공
지금 이 시각에도 진행되는 있는 언론환경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언론환경은 지금까지 편하게 그리고 몇몇 매체가 독점적으로 정보를 얻던 시대가 갔음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뛰고 연구하고 빠져나가지 힘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좀처럼 신통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어진다.
반대로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언론환경은 언론과의 타협이나 통제가 좀처럼 힘들어짐을 의미한다. 타협과 통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영향력이 큰 몇몇 언론만 상대해서 비공개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던 과거가 훨씬 수월하다. 언론과 정부 모두에게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질서에서, '긴장과 경쟁'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몇몇 보수 신문들의 강한 반발에는 기득권 상실로 인한 박탈감과 과거 질서에 대한 향수가 녹아있다. 하지만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앤드루 워드 특파원은 지난 3월 31일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를 막론하고 기자라면 누구라도 정보 입수를 제한하는 조치에 반대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는 시스템이 서방국가들이 성공적으로 도입한 언론통제 시스템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무작정 반대할 수도 없다. … 노무현 정부의 언론개혁은 한국의 언론시스템을 국제표준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정부와 언론간 적당한 거리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언론이 밀접할수록 부정과 부패가 그만큼 심화되기 때문이다."
'긴장과 경쟁'이라는 새로운 언론 질서가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릴지 여부는 언론과 권력 모두에게 달려있다.
| | 어제의 타성과 오늘의 변화가 싸우는 청와대 춘추관 | | | ['청와대 방문기자'의 두달 취재기] | | | |
| | ▲ 춘추관 1층 소브리핑룸에서 송경희 전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곳은 앞으로 휴게실로 바뀐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 지금 청와대 춘추관에는 '과거'와 '변화'가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새로운 변화다. 나는 지난 3월 11일부터 지금까지 약 두달간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청와대 기자실은 아직 공식적으로 개방되지 않았고, 따라서 나는 정식으로 출입 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춘추관 현관에서 '방문증'을 발급해 들어간다. 다른 출입기자들과 똑같이 브리핑에 참석하고 각종 정보를 얻는다.
이런 '방문기자'는 나 말고도 많이 있다. 원칙대로라면 정식으로 신원조회까지 거친 청와대 출입기자는 언론사당 한명이다. 하지만 기존 출입 언론사들에서는 이들 뿐 아니라 두세 명의 기자가 매일 방문증을 신청하고 있다. 소위 '2진'들이다.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난 3월 21일 대변인 브리핑 시간에 당시 논쟁이 되고 있던 이라크전에 대해 질문을 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청와대 춘추관 관계자로부터 "눈치껏 질문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유인 즉은 <오마이뉴스> 기자가 왜 질문 하느냐고, 아직 정식 출입기자도 아닌데 왜 질문을 받느냐고, 원칙대로라면 아직 개방이 되지 않은 것 아니냐고, 이렇게 몇몇 출입기자들이 춘추관측에 항의해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나는 두터운 '과거의 벽'을 느껴야 했다.
지난 4월 14일 김희상 국방보좌관이 춘추관 2층 인터뷰 룸에서 기자들과 조금은 은밀하고 조금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나는 일찍부터 녹음기에 노트북을 들고 인터뷰 룸에 자리를 잡았으나, 곧 춘추관 관계자로부터 자리를 피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유는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약속)가 지켜지기 위해 대상을 정식 출입 언론사의 1진 기자(최고 고참 기자)들로 제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녹음기는 그대로 둔 채 밖으로 나와야 했다. 춘추관 관계자는 녹음기까지는 묵인했다. 녹음기를 두고 나올 수 있게 한 것이 '변화'라면, 이런 은밀한 자리는 '과거'로 볼 수 있다.
춘추관 지하의 작은 사우나 시설이나 몇몇 기자들에게만 독점적으로 제공되는 책상 등 시설물은 '과거'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실시하고 있는 개방된 브리핑은 분명 새로운 '변화'다. 재미있는 것은 공식 브리핑과 일문일답이 끝나면 곧 과거 방식으로 돌아간다. 밖으로 나가는 취재원을 향해 기자들은 승용차 입구까지 우르르 몰려가 이것저것 물어본다. 때로는 공식 브리핑 시간보다 이 때 더 의미 있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 3월 24일 이해성 홍보수석과 기자들이 청와대 브리핑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 방송사 기자는 "브리핑을 하면 뭐하는가, 그 때보다 밖에 몰려가 물어볼 때 더 중요한 말이 나오는데"라고 말했다.
이렇게 청와대 춘추관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과거'와 '변화'를 오간다. 이 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청와대 춘추관은 지금 한마디로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공사중'이다. / 이병한 기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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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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