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받드는 동네, 봉천동'은 사라지고

'함께 사는 세상'의 완공을 간절히 바라며

등록 2003.05.15 16:50수정 2003.05.1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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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곳은 봉천동, '하늘을 받드는 동네'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90년대부터 이 곳에 살아왔다는 남편은 "그땐 밤에 멀리서 동네를 보면 아주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같았다"고 말한다. 높다란 산꼭대기까지 다닥다닥 들어앉아 있던, 가난한 사람들. 그러나 2003년 오늘, 이제 더 이상 봉천동에선 하늘이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함께사는세상 / 류미례 기자

수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여전히 끊이지 않는 공사 때문에 창문을 열면 집 안은 순식간에 먼지투성이로 변한다. 이 먼지투성이도 잠시, 이제 봉천동은 고층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결혼과 함께 봉천동에서 살게 되었다. 정신지체장애인들의 일터 '함께사는세상'을 배경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그 작업 중에 만난 한 사람과 결혼을 했다. 우리들의 신혼집은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의 지하였다.

그러나 결혼 2년째, 지금 나는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살던 곳에서 큰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속모르는 사람들은 2층짜리 건물이 5층으로 높고 커져서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지. 커지고 높아가는 건 이곳 자본주의 사회에선 성공, 혹은 발전의 표상이니까. 하지만 우린 성공해서, 발전해서, 돈 많이 벌어서 건물을 올리는 게 결코 아니다.

대한성공회 나눔의 집은 이곳이 산동네였던 시절부터 봉천동 사람들과 함께 했었다. 그때 크리스마스 트리를 이루었던 그 가난한 사람들은 나눔의 집과 함께 별처럼 빛났고 스스로 충분히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봉천동은 많이 변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떠났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더 이상 산비탈이 아니라 연립주택의 지하방으로, 아파트 단지 한 켠의 임대주택으로 조용히 깃들어갔다.

가끔은 떠날 수 있어서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도 있다. 나눔의 집이 함께 했던 사람들, 특수학교를 졸업하면 갈 곳이 없는 장애인, 부모와 가정으로부터 방치된 청소년, 그리고 실직으로 가정폭력으로 살 곳을 잃고 거리를 헤매야 했던 위기가정들. 그들은 떠날 곳을 마련할 때까지, 세상 어딘가에 깃들 곳이 생길 때까지 나눔의 집에 머문다.

그들에게 나눔의 집은 어쩌면 세상이 허락한 마지막 안식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시원을 빌려서 생활하던 위기가정공동체 살림터 식구들이 거리에 나앉게 생긴 것이다. 집주인은 더는 집을 빌려줄 수 없다고 통고했다. 17가정, 50여명이 넘는 살림터 식구들이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공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장애인친구들이 살고 있는 2층집을 5층으로 올리기로 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 방법이 대안이었던 것은 아니다. 전세를 뺀 돈으로 서울 변두리 모처에 살 곳을 마련하려고 했던 살림터 식구들을 동네 사람들은 온몸으로 거부했다. 전세돈으로 땅을 사고 관의 허락을 받아 터를 잡고 땅을 파기 시작한 그곳. 0.7평 작은 방에서 한 가정이 살아야했던 살림터 식구들에겐 유일한 희망이었을 그곳.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자신들의 차로, 몸으로 길을 막으며 온몸으로 거부했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땅이, 마을이 언제부터 그들의 소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순간 세상은 그들의 것이었다. 세상을 가진 그들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살림터 식구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재에 나선 구청이 땅을 사주는 것으로 상황은 일단락 되었다. 나눔의 집은 1억여 원의 공사진행비를 날린 채 다시 살림터 식구들의 살 곳을 알아봐야 했다.

길을 막던 누군가가 말했다고 한다. 꽃동네처럼 조용한 곳에서 살지 왜 서울에서만 살려고 하냐고.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왜 꽃동네에서 살지 않느냐고. 그 사람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 같은 사람이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만큼 힘없고 보호받아야하는 꽃동네 분들과는 달리 나눔의 집에 깃든 사람들은 일할 능력이 있는 생활인들이고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이다. 그렇게 묻는 그가 이 곳에서 사는 것처럼, 나눔의 집 사람들 또한 이 곳에 살아야할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찾은 두 번째 대안으로 공사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난 4월 11일, 후원의 밤 행사가 열렸다.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청소년가정공동체 행복한 우리집, 위기가정공동체 살림터.

이 세 곳의 사람들이 함께 머물 사회복지센터 '함께사는세상'의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행사였다. 아침부터 내린 비 때문에 우울했던 그날. 그러나 행사장이었던 대방동 여성프라자에는 100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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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센터 친구들의 합창 ⓒ 류미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누군가는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밀어내지만 또 누군가는 자신의 쌀을 덜어 나눈다. 세상은 그렇게 다르고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지금은 그저 장애인센터 한 켠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을 뿐인데.

아주 작은 보탬이나마 될까 해서 이 글을 쓴다.
나눔의 집을 위해.
'함께사는세상'의 건립을 위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작은 관심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등불같은 기쁨이 될 수도 있다.
비를 맞는 이와 우산을 함께 쓰는 것.
우산이 없더라도 비를 같이 맞아주는 것.
바로 그런 당신의 마음이 우리의 기쁨이다.
첨부파일 함께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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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제작공동체 푸른영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 여성, 가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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