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박철
그대 마음에 찬바람이 불어오고
모질고 험한 시련의 언덕을 넘을 때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 갈 때
누군가 그대를 위하여 등불이 되어 준다면
그대의 꽁꽁 언 손을 붙잡아 준다면
얼마나 큰 기쁨과 위로가 될 것인가.
.........(중략)
(박철 시. 등불)
한밤중 전깃불이 나가면 사방이 어둠의 포로가 된다. 마침 교회에서 저녁예배가 있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촛불을 켜고 예배를 드린다. 촛불을 켜도 어둠이 다 가시는 것은 아니다. 간신히 성경이나 찬송가를 읽을 정도이다. 예배가 막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전깃불이 들어온다. 조금 전까지 어둠에 익숙해 있다가 전깃불이 들어오면 세상이 더 환해 보인다.
아, 빛이란 어둠이 있어야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밝은 대낮에 전깃불을 켜놓는 사람은 없다. 일찌기 우리의 스승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고 선언하셨다. “빛이 되어라” 고 말씀하시지 않고 “빛이라”고 선언하셨다.
유년시절 아버지는 나를 화천읍내 화천초등학교에 보내셨다. 동네에 작은 학교가 있는데, 나의 아버지는 누나와 나를 읍내 학교에 입학시켰다. 내가 좋아서 결정한 일도 아니고, 내가 공부를 잘하고 똑똑해서 동네 학교를 안 다니고 읍내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다.
장장 30리길을 걸어 다니면서 ‘왜 나는 가까운 학교를 놔두고 30리 길을 걸어 읍내에 있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가?’하는 고민이나 물음도 없이 내 발걸음이 인도하는 대로 아침이면 눈 비비고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학교엘 갔다.
나는 주목받는 학생이 아니었다. 숫기도 없고 발표력도 없었다. 어디서 꿔다 논 보리자루 모양 나는 늘 한쪽 구석에 있었을 뿐이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학용품이 없었다. 공책도 누런 마분지를 잘라 꿰매어 썼고 연필은 몽당연필이었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굴러다니는 연필이 있으면 “연필 잃어버린 사람 누구고?” 하고 아이들에게 묻는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손을 들었다. 선생님도 내 연필이 아닌 줄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나는 늘 누나를 기다렸다. 내가 누나보다 아래 학년이어서, 수업이 먼저 끝나기 때문에 누나 수업이 끝나야 같이 집엘 온다. 누나는 나와 같이 다니는 게 창피했던지 읍내를 벗어날 때까지 늘 간격을 두고 따라오란다. 그러는 누나에게 불만이 없었다.
추운 겨울, 학교수업을 마치고 청소까지 하고 집에 오다보면 금방 날이 어두워진다. 바람은 세차게 불고 눈까지 내린다. 강원도 산골 눈바람이 인정사정없이 어린 두 남매에게 불어온다. 손도 얼고, 발도 얼고, 온몸이 꽁꽁 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