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 해직된 교사의 '밖에서 하는 종례'

아이들아 소중한 아들 딸이 되렴

등록 2003.05.20 14:32수정 2003.05.2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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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이들아!


올해 어버이날은 석가탄신일과 겹쳐 휴일이었다. 두 딸 중 하나는 잠시 외국에 나가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서울에 있는 녀석도 하는 일이 바빠 못 내려오고 보니 섭섭하더구나. '꽃 달아줄 녀석이 없네' 씁쓸하게 혼잣소리하며 아침 신문을 펼쳐보니 미선이 효순이 아버지 사진이 실려있더구나. 순간 그 분들께 죄송하고, 비록 자주 보지 못하지만 건강하게 식구들이 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단다.

2003년 2월  12일 부여 세도중학교, 졸업생들과 함께 한 최교진 교사
2003년 2월 12일 부여 세도중학교, 졸업생들과 함께 한 최교진 교사오마이뉴스정세연
미군의 장갑차에 처참하게 깔려 죽은 1년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미국 대통령 부시는 공식적 사과가 없고, 한미행정협정(소파)도 전혀 개정되지 않고 있는 현실 속에서 죽은 딸아이 친구들이 정성껏 만든 카네이션을 달고 다니는 이웃 학부모를 보면서 두 부모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죽은 두 딸이 사무치게 보고 싶고, 이 현실이 가슴 찢어지게 아프고 절망스럽지 않았을까?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미선이 효순이 부모님처럼 어버이날을 맞아 더욱 가슴 아플 부모님들을 생각해 봤다. 지난 70년대 이후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은 대부분 대학생으로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딘가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수십 년 지난 지금까지 대부분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이 의문으로 남아 있어 사람들은 '의문사'라고 부른다.

지난 국민의 정부 시절에 정부 산하기구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뒤늦게 진실을 알아보려 노력했지만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진상을 밝혀낼 수 없었다. 팔팔하던 젊은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시체로 돌아온 후 그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채 수십 년의 세월을 살고 계신 그 부모님들께서는, 병이나 사고로 먼저 죽어도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데, 아무 것도 밝히지 못한 가운데 갑자기 자식의 주검을 맞은 그 부모님의 가슴은 온통 시커멓게 피멍이 들지 않았을까?

한총련이라는 단체를 아니? 우리나라 모든 대학의 총학생회가 연합하여 만든 단체야. 그런데 이 단체가 지난 96년부터 국가보안법에 의해 이적단체로 법 적용을 받게 되었어. 각 대학교에는 단과대학이 있어. 문과대, 경상대, 의대, 사회대, 자연대, 공대, 예술대, 사범대 등 단과대학의 학생회장이 되면 자동적으로 한총련의 대의원이 되고 그러면 이적단체의 대의원이니까 법을 어기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일단 경찰에 연행되어 재판을 받아야 돼.


그런데 그것을 거부하고 몇 년씩 피해 다니는 학생들이 있어. 이 학생들을 한총련 수배자라고 부른단다. 수배 중에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는 일도 있어 가끔 신문에 소개되곤 하지. 그 수배 학생들의 부모님들께 어버이날은 더 쓸쓸한 날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내와 함께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고 무릎 꿇고 앉아 부모님 생각을 했다. 나는 의미 있게 살았다고, 다시 그런 상황이 되어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하지만 내가 그렇게 살기 위해 마음이 온통 새까맣게 타 없어져 버렸을 부모님의 희생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사죄 드린 일이 없더구나.


'이제 한 학기만 지나면 우리 아들이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될 거'라고 자랑하던 가난한 농삿군 부모님께 갑자기 전해진 75년 5월말의 대학교 제적, 구속, 강제 군입대의 소식은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80년 5월부터 8월까지 어디로 끌려 갔는 지도 모른 채 지내야 했던 그 때 매맞고 고생한 나보다 몇 배 더 크게 마음의 고통을 부모님께서 받으셨을 거란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는구나. 81년 아버님께서 54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동네 사람들이 아들 때문에 일찍 돌아가셨다고 수군댔다는 얘기에 속상했는데 그게 사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84년 첫 해직 후 홀어머님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89년 두 번째 해직된 상태에서 어머니마저 92년 65세의 아쉬운 연세에 돌아가셨을 때도 내가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했다는 생각을 깊게 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나를 지금 이곳에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한없이 감사해야 할 우리 부모님.
우리의 작은 일에도 자식보다 훨씬 크게 마음으로 먼저 앓으시는 우리 부모님.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땀으로 우리를 기르시는 우리 부모님께 혹시 너무 가볍게 화내고, 원망하고 심지어 무시하는 일까지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함께 돌아봤으면 좋겠구나.

부모님이 꾸중을 하시기 전에 나 때문에 얼마나 크게 걱정하고 이내 마음의 상처를 받으셨을지 살필 수 있는 너희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5월 한 달만이라도 꾸준히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부탁하고 싶다. 부모님께 더 소중하고 귀한 아들딸이 되기를 부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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