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예술의 산실 '소년궁전'

[국제친선음악제] 피아니스트 임미정 교수의 평양 방문기-7

등록 2003.05.21 14:48수정 2003.05.24 12:4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만경대 소년학생궁전
만경대 소년학생궁전임미정

지난 4월 10일부터 일주일 동안 평양에서는 국제친선음악제가 개최됐다. 피아니스트이며 울산대 음대 교수인 임미정씨(홈페이지 www.mijungim.com)는 재미예술단의 일원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가 지난 19일 귀국했다.


임 교수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연주활동을 하며 세 번의 방북연주 등을 통해 남북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고, 작년 그의 순회독주회시 북한의 피아노곡을 우리나라에서 초연했다. 이번 행사에서 방북했던 임 교수가 <오마이뉴스>에 '평양 방문기'를 보내왔다. 이번이 일곱 번째 기사이다...편집자주)


4월 17일

아침 식사 후 이동우 선생과 두영균 선생을 모시고 대동강가에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그 동안 너무 바빠서 자유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는데, 평양을 떠나기 전 우리끼리 평양거리를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걸어서 평양역이며 윤이상 기념관등을 지나 대동강가로 가려 하는데 먼지바람이 심해 우리는 몇 번이나 멈추어야 했다. 황사가 정말 심한 날이다. 가는 길에 오래된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짓는 공사현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유리조각마저 바람에 날려온다. 내 눈에 먼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 콘택트 렌즈가 빠질 정도여서 할 수 없이 윤이상 기념관 앞까지밖에 갈 수 없었다.

윤이상 기념관은 윤이상음악연구소라고도 하고 국제 문화 회관이라고도 한다.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윤이상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곳이다. 몇 년전 남쪽의 노동은, 이건용 선생님께서 연주자들을 이끌고 가서 남북 교류 연주를 한 곳이기도 하다.

2001년도엔 서울의 독일문화원장인 아베 슈멜터 박사가 독일 음악인들과 함께 와서 연주하고, 독일 정부가 보내는 악기들을 기념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지난달엔 경상남도 통영에서 윤이상 음악제가 열려 우리 울산대 피아노과 학생들이 수련회를 이 음악제 참가로 대신하기도 했었다. 윤이상 선생님은 몇 년 전 돌아가셨지만 이렇게 우리 음악인들에게는 남북 및 세계와의 어떤 공통 분모가 되어 주시는 존재이다.

이 연구소에는 그분의 악보 및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음악관계 서적이 이곳에서 출판되기도 한다. 여기 상주하는 윤이상 오케스트라는 평양음악무용학교를 졸업한 젊고 재능있는 음악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는 그날 오전 중에 평양음악무용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무용수업중인 어린이들
무용수업중인 어린이들임미정

북한 예술조기교육의 효과적인 시스템


북에서의 예술조기교육은 재능의 발굴과 교육면에서 보면 굉장히 효과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전국의 유치원에서 음악과 무용 등에 자질이 있는 학생은 특별반에 편성되어 따로 교육을 받는다. 이 어린이들을 선발할 때는 음악 무용 실기 테스트가 아니라, 기본적인 리듬감이나 청각의 예민함, 근육의 유연성, 신체조건 등을 따지는 자체적으로 만든 선발기준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 후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전국 각도에 있는 음악무용학교들은 영재들을 모아서 인민학교 과정과 실기교육을 병행하면서 본격적인 연주자로 훈련을 시킨다. 이중 우리가 방문한 평양음악무용학교는 1949년에 세워졌으며, 전문연주자들을 초기부터 훈련하는 곳이므로 전국에서 온 최고의 영재급 학생들이 기숙하면서 교육받는다. 의무교육 10년과 대학과정을 포함해 학생이 2300명이고, 교직원은 800명이다.

북의 대표급 연주자들은 모두 이 학교 출신이며, 성악의 김진국, 허광수, 조혜경 등 북의 여섯 명의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쿨 입상자들 또한 이 학교 졸업생 및 교원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무용가 최승희 선생이 세운 무용학교가 이 학교 무용과의 전신이기도 하다.


우리가 학교교정에 들어섰을 때, 학생들이 교정에서 거닐거나 연습하는 것이 남쪽의 여늬 음악대학 풍경 같았다. 발성연습하는 소리, 트럼펫소리, 피아노 치는 소리들이 들렸다.

개인 레슨 받는 것을 참관했었는데 민족 성악이라 해서 우리 민요 등만을 전공으로 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그날은 바이올린과 가야금, 성악, 피아노 레슨 등을 볼 수 있었다.

메피스토 왈츠를 레슨받고 있는 박광철 학생

내가 본 박광철이라는 학생은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를 레슨 받고 있었는데 일주일 후 베이징에서 있을 베이징 국제 피아노 콩쿨에 나가려고 준비중이었다. 서방에서는 테크닉의 과시 때문에 콩쿨에서는 메피스토 왈츠를 더 빠르게, 더 강하게들 친다. 그러나 그는 너무 안정된 템포로 (테크닉이 충분해 보였음에도) 풀어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템포 이야기를 할까 말까 주저하다가 괜히 참관인들 앞에서 그쪽 선생님께 누가 될까 아무 말을 못하고 말았는데, 템포를 빠르게 해야할 것 같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그런 테크닉적인 곡은 대부분 1차 예선을 위해 준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테크닉이 좋다는 것을 짧은 시간에 보여 주기 위해선 템포의 조정이 필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축전기간 중엔 제일 예리한 비평가들이 된다. 곳곳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석하고 누가 어떻게 연주했는지, 누가 제일 훌륭한 연주자인지 그 다음날이면 학교 안에는 소문이 다 퍼진다. 우리(재미예술단)가 참관을 갔을 때는 우리에 대해 벌써 다 파악(?)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오후에는 북의 조기예술교육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만경대)소년 학생 궁전 참관을 갔었다.

음푶 설명도
음푶 설명도임미정
몇 년 전 서울에 와서 공연한 적이 있는 어린이들도 이 소년궁전에서 교육받은 학생들로 알려져 있다. 대리석으로 견고하게 지어진 궁전 같은 건물 안에 붓글씨, 무용, 체조, 피아노, 자수, 가야금, 노래, 수영등 남쪽의 어린이가 과외로 공부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특기 활동을 위한 교실들이 있고 공연장도 있다. 재능이 있는 초등학교 나이의 학생들이 인민학교 수업을 마친 후 이 곳에 와서 훈련을 받는다.

한 학생에게 어떻게 여기에 와서 훈련받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뭐 신청해서 하고 싶다고 하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과외활동을 원하는 학생들은 대부분이 와서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선 이러한 부가교육을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내가 궁금했던 수요와 공급은 어쩌면 자동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6살짜리 어린이의 농악춤과 가수 앞에서 경악하다

그날 방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린이들이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종류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었는데, 6살짜리 어린이의 농악춤, 가수 패티김과 같은 스타일의 6살 먹은 가수 등, 정말 경악스럽다고까지 표현할만한 실력들이었다.

잠깐 다른 이야기이지만, 작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UCLA대학의 사물놀이팀이 축전에 참가해 공연을 했었는데, 그리 좋은 평은 받지 못했었다. 북에서는 민속음악이나 무용공연은 함부로 할 일이 아니라는 교훈(?)들을 얻었었는데, 이렇게 어린이들 공연에서부터 이런 정도의 정제되고 정열적인 최상급 연주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공연중인 어린이들
공연중인 어린이들임미정

그들의 프로그램은 축전의 대부분의 음악회에서와 같이 다양한 쟝르를 한 무대에서 공연하는데, 클라식 음악과 민속 음악 그리고 전자음악 반주단의 대중 음악 공연 등이 하나로 어우러지고 어린이들은 고전음악이나 대중음악에 전혀 차등없이 재능을 연마한다.

다시말해 우리는(남쪽) 고전음악이나 국악쪽은 어릴때부터 훈련하지만 대중 음악 가수가 되기 위해 대여섯 살부터 훈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소년궁전에서는 그쪽의 대중가요인 ‘반갑습니다’ 라든가 휘파람 등의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 고전음악이나 국악이 대중음악에 비해 더 수준이 높다거나 하는 인식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만 학생들의 취향이나 재능의 성격에 따라 분야가 정해지는 것이다.

북에서 어린 아이들이 무용이나 노래 등에서 놀라울 정도의 실력을 보이는 것에 대해 혹자는 부자연스러운 형태의 훈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쪽의 시스템을 이해하게 되면 강제하는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효과적인 예술 조기교육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이 유아의 탤런트를 선별해내고 그들이 어떠한 경제적 부담도 없이 재능을 연마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되며, 또 발표할 수 있는 무대가 계속 공급되는 시스템은 학생, 선생, 그리고 훈련할 수 있는 무대, 이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지는 결과를 만든다. 물론 예술교육이란 공연을 할 수준이 되려면 어느 곳에서든지 어느 정도의 극기와 훈련은 필수적인 것으로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은 충분한 동기만 주어진다면 그것을 훈련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북쪽 어린이들의 공연 완성도 역시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는 것이다.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는 학생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는 학생임미정
만경대 소년 학생 궁전의 학생들
만경대 소년 학생 궁전의 학생들임미정
아코디언 수업중인 어린이
아코디언 수업중인 어린이임미정
공연후 커튼 콜을 하는 어린이들
공연후 커튼 콜을 하는 어린이들임미정
바이올린 레슨 받고 있는 학생
바이올린 레슨 받고 있는 학생임미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임미정 기자는 피아니스트로서 현재 울산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이다. 귀국전 14년간 뉴욕에 거주, 평양에서의 연주 및 뉴욕에서의 북한 음악 연주등을 통해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다. 2002년 그의 피아노 독주회시 아리랑과 내고향의 정든 집 등 북한의 피아노곡을 국내 초연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