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94

등록 2003.05.21 17:39수정 2003.05.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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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군녀의 말에 비류와 온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월군녀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누우며 등을 돌려 버렸다. 비류와 온조는 그런 월군녀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다가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온조, 넌 어머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온조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비록 형 앞이라고는 하지만 성급히 자신의 속내를 밝히지 않았다. 비류는 그와 달리 마음이 급했다. 비류는 야심이 있는 인물이었고 굳이 이를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난 반드시 천자가 되겠네. 아우가 도와주게나."

온조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어느덧 그들의 머리위로 낙조가 드리워져 있었다.


누구와 함께 돌아갈꼬

유리가 태자로 책봉 된지 채 한달도 되지 않은 무렵, 주몽은 태후인 예주와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뜻을 밝혔다.


"20년 전 짐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 대신들과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 정착해 고구려를 세웠소. 돌아보면 부여를 떠나올 당시 여기 있는 태후를 데려오지 못한 한을 잊으려 더욱 일에 매진 한 것 같소. 그러나 이제 태후도 돌아오고 태자도 책봉되었으니 짐은 이제 국정에서 물러나 태자에게 일을 맡기려 하오."

마리가 나서서 주몽에게 고했다.

"폐하께서는 아직 정정하시며 태자마마는 아직 젊은 나이옵니다. 게다가 부여에서 온지 한 달여, 아직 국정에 대해 잘 모르실 것으로 사려되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시옵소서."

주몽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이미 몇 번이고 생각했던 바요. 당장 태자에게 모든 국정을 위임하는 것은 아니고 당분간은 짐이 지켜볼 작정이오."

이번에는 재사가 나서서 주몽을 만류했다.

"신(臣) 재사가 아뢰옵니다. 자고로 천자가 국정을 돌보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과 같사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아직 정정하신 때에 국정을 돌보지 않으시고 태자께 어려운 짐을 맡기시려 함이니 이는 온당치 못한 처사이옵니다."

재사의 강경한 말에도 불구하고 주몽의 마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공들이 곁으로 보기에 짐이 건강해 보이는 지 몰라도 이미 정신은 맑지 못하오. 일찍이 묵거가 짐에게 유언으로 충고한 바가 있었소. '미움을 가지지 말아달라' 하지만 짐은 이 말을 따르지 못했소. 왜 그런지 아시오?"

대신들 중 아무도 주몽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자 제일 말석에 자리한 을소가 일어났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폐하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러시오."

을소는 조용하지만 맑은 목소리로 주몽의 질문에 대답했다.

"제가 들은 즉 폐하께서는 젊은 시절 '사람이 차별 받지 않고 모두가 재능을 다할 수 있는 국가를 열어 나가겠다.'고 호언한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후비 마마에 대한 한으로 두 왕자님의 재능을 다하지 못하게끔 만들고 있사옵니다. 반면 태후마마를 다시 만난 기쁨으로 눈이 어두워지셨으니 태자님께 국정을 맡기시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을소가 어쩌면 주몽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직언을 하자 몇몇 소심한 대신들은 재능 있는 젊은이의 장래가 불확실해 졌다며 속으로 혀를 차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부터 주몽을 따라왔던 대신들은 을소의 당당함에 혀를 내두를 따름이었다.

"허허, 젊은 신하가 내 뜻을 알아주니 기쁘기 한량없소. 이보시오, 짐이 여태껏 공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함부로 일을 판단한 적이 있었소? 이번만은 짐의 뜻대로 할 테이니 내일부터는 태자를 잘 보좌해 일에 그릇됨이 없게 해주시오."

주몽은 그 말만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떴으나 대신들은 앞으로의 일이 혼란스러운 듯 서로 의견을 나누며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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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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