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온 '버마' 망명자들

버마 정치적 양심수 석방 촉구, “버마는 5.18과 너무나 흡사"

등록 2003.05.21 17:05수정 2003.05.2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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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행사가 진행되는 광주는 행사 기간 각지에서 찾은 방문객들에게 자국의 인권상황을 알리는 장소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18일 금남로 거리에서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 자유지역 한국지부회원 10여명이 미얀마(구 버마)의 정치적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며, 서명운동을 펼쳐 관심을 모았다. 검게 그을린 이들은 아직 서툰 한국어로 미얀마의 인권상황을 전하며 지지와 연대를 호소했다.

a 18일 광주 금남로에서 버마의 양심수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18일 광주 금남로에서 버마의 양심수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이국언

지난 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한 미얀마는 62년부터 연이은 군부 쿠데타로 현재까지 군부의 통제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다. 버마라고 불렸으나 89년 군사정부에 의해 미얀마로 그 국명이 바뀐 상태다.

버마민족민주동맹은 민주정부수립을 목표로 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를 의장으로 지난 88년 발족한 반정부단체.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버마민족민주동맹은 90년 총선에서 국회의 82%를 점유했지만 군부는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아직까지 정권이양을 거부하고 있다.

국제 엠네스티가 제출한 2002년 국가별 인권보고서에 의하면 미얀마에만 1,200명 이상의 정치범들이 투옥된 상태인데 그중 18명은 90년 총선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다.

특히 투옥자들의 인권상황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27세의 학생 대표의 한사람인 떽 윈 나잉(Thet Win Naing)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52년의 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된 상태이다.

버마 36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이들 정치범들 중 88년이래 복역 중 사망한 사람만 68명으로 알려졌다.

미얀마민족민주동맹은 한국 이외에 일본, 호주, 미국에도 지부를 두고 있는데 한국지부는 정치적 이유로 한국으로 나온 사람들에 의해 99년 조직됐다. 이들 회원들은 지난 2000년부터 매월 셋째주 일요일마다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갖고 미얀마의 정치적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한편 한국에 체류중인 3천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소식지를 통해 미얀마의 상황을 알려내고 있다.


“광주 5·18은 우리 버마 상황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광주는 민주화운동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군부통치 아래 있습니다.”

a 군사정부에 의해 1300여명이 넘는 정치적 양심수는 심각한 인권유린을 겪고 있다.

군사정부에 의해 1300여명이 넘는 정치적 양심수는 심각한 인권유린을 겪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미얀마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아웅 민 스위(40) 회장은 “ 5·18때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결국은 승리했다”며 “같은 형제로 생각해 버마 민주화 투쟁에 대해 관심을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버마에서 오래 전부터 민주화 활동을 해온 그는 자신의 활동과 관련해 군사정부로부터 체포 위기에 처하자 도피처로 한국을 선택한 경우이다. 부천의 한 제조회사에 일하고 있는 그는 군사정부의 통제 때문에 해외 도피가 어려워지자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어렵게 관광비자를 얻어 98년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망명자인 셈이다.

이들은 미얀마라는 국명대신 굳이 ‘버마’라고 부르고 있다. 나라 명을 바꾼 군사정부에 대한 거부의 뜻이라고 말한다. 다행히 지난 1월 법무부로부터 정치적 난민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료들은 언제 한국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버마 전국학생회 연합 간부 출신이면서 한국지부 부회장인 르윈(37)은 현재 만성신부전증으로 1주에 3차례 혈액투석치료를 받아야 하는 등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0년 5·18기념재단이 주최하는‘아시아 희생자 가족’에 초청을 받으면서부터 광주와 교류를 맺고 있다.

이 단체 홍보 일을 맡고 있는 모앙(32)씨는 94년 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9년째를 맞고 있다. 부천의 한 신발도매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해 들어왔는데 한국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고 버마 민주화 운동에 나서게 됐다”며 “활동 때문에 어머니께 돈을 보내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직 불법체류자인 그는 “한국에서 반정부 활동을 했기 때문에 돌아가면 군사정부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들의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지길 희망했다. 그는 ”한국은 버마의 역사와 비슷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며 “민주화를 이룩할 때까지 한국에서나마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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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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