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IS'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전교조를 박대하는 까닭

등록 2003.05.21 21:43수정 2003.05.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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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세의 현직 교사입니다. '농부가 땅의 탓하랴'는 말씀을 듣고 난 후부터 '인간 노무현'의 팬이 되었습니다.

'노무현이 변했다'고 실망하는 주변사람들에게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명분이나 인기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밀고 나갔던 외로운 대통령 링컨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님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목에 '노무현'이 들어간 책을 열 권 넘게 읽었습니다. 한 번은 그냥 읽고 한 번은 어록을 만들기 위해 밑줄을 치면서 읽었습니다. 아내에게 '학생 때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었느냐'는 핀잔도 들었습니다.

어록을 어디 쓰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짧고 명료한 말들에서 대통령님의 정치철학을 읽어내는 것이 재미있었을 뿐입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신 후에도 어록을 정리해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아마도 교육부총리로 오명씨나 김우식씨가 거론되는 것에 실망하고 난 다음부터일 겁니다.

현직교사로서 당연히 교육정책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나 제가 읽은 책 어디에서도 대통령님의 교육정책에 대한 소신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 학교 다니며 가난해서 당했던 차별과 이승만을 찬양하는 글짓기를 거부해서 당했던 고통에다 사랑하는 큰 형님을 구박했던 형수님이 교사였다는 것까지, 학교 혹은 교사에 대한 좋은 기억은 별로 못 가지신 것 같습니다.

자녀들을 다른 부모들처럼 점수 경쟁에 몰아넣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는 듯한 내용 외에 대통령님의 교육관을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제가 정리한 어록에도 교육에 대한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법무·행정자치·문화관광부 장관은 보수세력의 거센 반발에도 흔들림 없이 임명하여 대통령님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저는 세 부처가 다 대통령님이 잘 아는 분야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변호사시절 일부 못된 검사들을 직접 겪었고, 지방자치는 오랫동안 연구한 전문분야이고, 보수신문들과는 정면으로 대결해오셨습니다.


그래서 그에 알맞은 젊은 장관들을 임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교육부 장관 임명이 늦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거나 관심이 적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국가사회의 모든 분야에 정통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장관에게 맡기면 되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장관이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대통령께서 직접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전교조의 NEIS시행 반대는 검사들의 인사 반발보다 명분이 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전교조가 왜 반대하는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확인해보셨습니까? 대통령께서는 해양수산부 장관시절 결재 받으러 온 과장들과 토론을 통해 문제를 빠르게 파악했다고 하셨습니다.


NEIS문제는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관심만 가지신다면 NEIS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사실도, 법학자들의 주장처럼 위헌소지가 있으며 관련법률을 먼저 제정했어야 한다는 사실도 금방 알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부가 책임질 일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실 겁니다. 교육부총리에게 보고만 받아서는 될 일이 아닙니다.

교육부가 이렇게 개혁적이지 못한 이유는 장관이 교장출신 교육부 관리들에게 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교장출신 관리들은 임기 끝나면 다시 교장으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장관에게 전교조에 대한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하리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개혁적이던 사람들도 교육부 장관이 되면 개혁성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노무현씨를 대통령이라고 해본 적이 없다. 입이 안 떨어지는 것을 어떻게 하냐"며 기세를 올리고, "전교조가 반미친북교육을 하는 것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것 아니냐"고 큰소리 친 김동길씨에게 교장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런 교장선생님들이 교육부 관리가 되어 교육정책을 좌우하고 기회가 되면 전교조 때리기에 앞장선다는 사실에는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대통령께서는 이런 교육부의 보고를 받고 20일 국무회의서 NEIS에 대한 전교조에 대해 "벌을 사전에 예고하고,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전교조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절대로 징계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보도된 국무회의 내용만으로도 전교조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방미 전에 거론하신 '반미교육'도 그렇습니다. 보수 신문들은 4월 22일 대통령님의 '전교조 반미교육 대책수립' 지시를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다뤘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이 24일 전교조의 '반미교육'에 대해 "반전 교육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다만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서 반미로 가는 것은 곤란하니 한번 조사해 보라고 한 것인데 마치 반미교육으로 단정한 것으로 보여졌다"면서 "실태를 정확히 조사하라고 한 것"이라고 말한 사실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전교조는 큰 이미지 손상을 입었습니다. 교육부가 확인도 안 된 자료를 내놓고 보수언론이 이를 확대 보도하여 '간접살인마'의 누명까지 쓴 전교조에겐 회복하기 힘든 연속 타격이었습니다.

NEIS에 대한 전교조 집행부의 대응방식에 개인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은 교육부에 있습니다. 전국교장단 협의회장도 지적했듯이 사전에 교육관련 단체들과 협의가 없었습니다. 대통령님의 말씀대로 '대화와 설득과 타협'의 노력이 더 필요했습니다. 인권침해 소지에 대하여도 국가인권위의 의견을 물었어야 합니다.

현장 교사로서 교육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육부가 인권위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입맛에 맞으면 존중하고 아니면 지금처럼 '존중' 시늉만 내겠다는 속내를 감추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이미 많이 진행시켰기 때문에 돌아가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보안업체 광고 중에 '따던 거 마저 따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도둑들이 문을 따다 보안시설을 발견하고 '그만 가자'는 데도 미련한 도둑 하나가 계속 따면서 하는 말입니다. 물론 요란한 경보음이 들리지요. 전교조와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의 문제제기를 묵살하고 여기까지 몰고 온 교육부의 담당관리는 놔두고 왜 전교조에만 화살을 돌리십니까?

제 수첩에 '좋은 정부의 요체는 강하다고 떠드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나가는 정부'라는 대통령님의 말이 있고, 그 밑에 제가 '국민을 억압하는 00정부, 국민을 속이는 00정부, 국민을 홀리는 나치정부, 무능한 00정부'라고 적어 놓은 것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정부가 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NEIS에 대하여 겸손하게 동의를 구하는 노력이 부족했고, 인권위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님은 교육부에 대하여 어떤 질책도 없었습니다. 전교조에 대하여만 단호한 대처를 지시했습니다.

신문들은 "노 대통령은 특히 '이 정권은 권력을 찬탈한 부도덕한 정권이 아니다. 많은 비판이 있으나 여론조사에서 60-70%의 지지를 아직도 받고 있다'면서 '그 단체가 민주화운동에 기여했지만, 정부에도 민주화운동에 그만큼 노력한 분이 있다'고 말하고 전교조의 주장을 '독선적이고 극단적 주장'이라고 규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민에게만 빚졌다'는 당선 직후의 말씀도 제 수첩에 있습니다. 저는 그 밑에 '노무현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써놓았습니다. 현정권을 '권력을 찬탈한 부도덕한 정권'이라고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고, 진실로 '국민에게만 빚진'정권이라고 믿는 저는 대통령님의 말씀에 매우 서운합니다.

전교조와 교육부 중 어느 쪽이 국민입니까? 전교조와 교육부 중 어느 쪽에 빚을 지셨습니까?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보기 어려운 교육부의 설명만 듣고 전교조의 주장을 '독선적이고 극단적'이라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전교조 교사들은 아이들 놔두고 거리로 나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전교조 조합원들은 전교조와 교육부가 합의점을 찾기 바랍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육부 관리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할 것 같지 않습니다.

대통령님은 인권변호사 출신입니다. 전교조는 사랑하는 제자들의 인권침해를 우려해서 NEIS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전교조에 대하여는 그렇게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시기 전에 전교조가 왜 연가투쟁까지 생각하는지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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