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41

찌를 때와 후려칠 때 (6)

등록 2003.05.24 02:07수정 2003.05.2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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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소한 몸집을 한 청년 하나가 당돌하게도 맹호파의 구역을 침범하였다. 그리고는 겁도 없이 누가 두목이냐고 소리쳤다.

하는 짓이 하도 가소로워 팔짱을 낀 채 왜 찾느냐고 물어보니 맹호파에 몸담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싸워서 이기면 두목이 되니까 가입과 동시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과 비무하여 패하면 맹호파 두목 자리를 순순히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흥미 있는 일이 없어 무료해하던 좌비직은 수하들로 하여금 제압케 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가소롭지만 직접 상대하려 마음먹은 것이다.

별로 하는 일이 없기에 간혹 찌뿌드한 몸을 풀고 싶다는 생각을 품지만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졸개들은 감히 덤벼들지 못하므로 몸을 풀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하여 잘 모른다면 죽기 살기로 덤벼들 것이니 굳어 있는 몸을 풀 겸 힘 좀 써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청년과 마주한 좌비직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남장여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낙척서생(落拓書生)이었지만 가냘픈 몸집과 사내치고는 큰 눈망울, 그리고 목젖 부위가 밋밋하였다.


게다가 자세히 살피니 가슴 부위도 불룩하였다. 그렇다면 분명 여인의 몸일 것이다.

이곳은 다른 것은 다 만족스러운데 단 하나 불만족스러운 것이 있는 곳이다. 그것은 바로 웬만해서는 색욕(色慾)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무지막지한 산적에게 정(情) 붙이고 살려는 여인은 드문 법!

제 정신을 가진 여인이라면 웬만해서는 산적들이 머무는 산채(山寨)에는 있으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늘 욕정에 굶주려 있던 터였는데 오랜만에 그것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하였기에 음흉한 미소를 지은 것이다.

원래 두 자루 도끼를 주무기로 사용하던 그였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시체를 상대로 그 짓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여 상대가 검을 들었지만 맨 손으로 나섰던 그는 대경실색하며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가 무공을 제대로 익힌 무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의 손에는 제법 묵직한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아무리 무림인이라고는 하지만 상대가 여인이기에 경시(輕視)하였기 때문이었다.

대략 반각 가량이 지난 후 좌비직은 뭉둥이 대신 쇠로 만든 선장(禪杖)을 들고 있었다. 상대의 검에 몽둥이가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또 다시 반각이 지난 후 그의 양손에는 애병인 도끼가 들려 있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 그의 의복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그리고 찢겨진 의복 사이로 적지 않은 선혈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상처 입은 것이다. 이후 그는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입에 담지 못할 폭언(暴言)을 퍼부으면서 두 도끼를 풍차 돌리듯 맹렬한 기세로 휘두르며 남장여인을 핍박해갔다.

하지만 남장여인은 시종 여유가 있었다. 좌비직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슬쩍 슬쩍 아주 쉽게 피하면서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 그렇게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간간이 맹호파 소속 산적들이 두목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그들은 단 일수만에 혈도를 제압 당하여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 시진 후 맹호파 소속 오십여 산적들 모두는 남장여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좌비직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하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다들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그만은 완전히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지쳐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일찍 끝낼 수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굴복하게 하려 일부러 시간을 끌었기에 체력이 완전히 소진된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흉폭한 산적들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무공을 익힌 무림인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맹호파를 시작으로 대흥안령산맥 주변에 터를 닦고 있던 이십여 산적무리 모두가 남장여인 하나에게 굴복하는 치욕을 겪었다.

이것은 불과 두 달만에 벌이진 일이었다. 그리고 전무후무한 일이기도 하였다. 그들 가운데 맹호파가 가장 강했고, 육손파와 혈우파, 그리고 광견파가 다음으로 강한 조직이었다.

아무튼 이들을 굴복시킨 남장여인은 모든 조직을 통폐합하였다. 그리고는 정의문(正義門)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이후 각파에 무공비급을 하사하고는 즉각 그것을 익히도록 명을 내렸다.

산적들은 무공을 익히고 싶어도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 못 배운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였다.

게다가 한낱 산적이 아닌 정식 무림 문파 소속이 된다고 하자 그들의 기쁨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여 즉각 무공 연마를 하기 위하여 각자의 산채로 흩어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남장여인은 인근을 돌아다니면서 총단을 세울 곳을 물색하였다. 이러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앞으로 한 달 후 개파대전이 있게 될 것이다.

조금 전 좌비직에게 보냈느냐고 물은 것이 바로 개파대전이 열리는 날짜를 알리는 전서였다.

앞으로 좌비직은 맹호당 당주에 취임하게 될 것이다.

혈우당의 당주는 혈우파 두목이, 육손당의 당주는 육손파 두목, 그리고 광견당 당주 역시 전임 두목이 맡기로 되어 있었다.

장차 이들을 총괄할 총관은 아직 정의문에 당도하지는 않았다. 신임 문주가 된 남장여인은 그의 성명이 왕구명이라 하였다.

힘으로는 자신을 능가할 자 없으리라 자부하던 맹호파 두목 좌비직도 역발산(力拔山)이라는 그의 외호를 듣고는 의기소침해졌다. 얼마나 힘이 장사면 산을 뽑을 정도겠느냐는 것이다.

마땅한 외호 하나 없는 무명소졸이었던 왕구명에게 졸지에 역발산이라는 그럴 듯한 외호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남장여인은 바로 추수옥녀 여옥혜였다.

그녀는 산해무천장을 조사하려면 세력이 있어야 함을 절감하고 고심한 바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서고 세력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하였다.

무천장의 영향력이 워낙 크고, 그들의 이목이 워낙 영민하기에 그들 몰래 일을 꾸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누군가 배반을 한다면 만사가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여 고심, 고심하던 그녀는 문득 산적들을 떠올렸다.

부친인 사면호협이 아직 산해관 무천장주일 때 대흥안령산맥에 있는 이십여 산적 무리들은 늘 골칫거리였다.

산해관을 통과하여 중원과 거래하는 상인들이 종종 털리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없앨 수 없었던 것은 산채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였다.

도박판에 흔히 회자되는 말로 똥개도 제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여러 번 소탕작전을 펼쳤지만 노련한 정의수호대원들조차 산채를 찾을 수 없었다. 설사 산채를 찾았다 하더라도 거기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든 그들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흥안령산맥이 워낙 넓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그들의 습격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 경우에도 산적을 잡을 수 없었다.

적어도 산에서만큼은 그들의 행동이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산적들이 무림천자성과 전혀 연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 즉시 길을 나선 것이다. 이때가 바로 왕구명이 삼십육계를 다시 외우려고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물론 패배하면 그들에게 무참하게 능욕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보타신니의 무공과 청룡검법의 위력을 믿었기에 겁도 없이 나선 것이다.

어찌 되었건 산적들을 굴복시킨 후 여옥혜는 무공 비급을 나누어주었다. 이곳에 당도하기 전까지 만든 것이다.

세력을 얻었다 한들 힘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천장을 상대하려면 무엇보다도 무공이 우선이 되어야 하기 할 것이다. 청룡검법이야 왕구명의 가전 검법이니 공개할 수 없지만 보타신니에게서 배운 검법에 자신의 심득을 더한 검법 하나를 만든 것이다.

세상의 정의를 위해 사용되라는 의미에서 정의검법이라 이름 붙인 그것은 무공을 모르는 범인이라 할지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난해한 구결 대신 그림으로 모든 것을 표시한 것이다. 따라서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산적들도 쉽게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대흥안령산맥 여기 저기에 분포한 산채에서는 산적들의 구슬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한 달 후 개파대전 때에는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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