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의 야산, 사랑의 현장에서 발견된 연리지.이성인
"그대 비록 후배라 함께 공부 안했으나, 연리지 나무처럼 한집안 형제같네" "초목 중엔 연리지가 의좋기로 소문나니, 꽃 마음은 한가지나 꽃 답기는 다르도다, 부부없다면 짝이 어찌될 것이며, 형제 또한 없다면 기러기가 어이 줄 서가리"
이 시는 고려 중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고율시(古律詩)이다. 이규보는 연리지를 우정과 혈육의 정으로 묘사했다.
우리나라는 연리지의 출현을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로 여겨 역사책에 기록해 왔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내물왕 7년(362) 4월 시조 묘의 나무가 연리된 사실과 고구려 양원왕 때 "서울에 가지가 맞 붙은 배나무 연리목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 광종 24년(973) "2월 임인일에 서울 덕서리에서 연리목이 났다"는 기록과 성종 6년(987)에도 "충주에서 연리목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에도 연리지의 출현이 있었다.
이번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에서 사랑의 모습을 보인 연리지에 앞서 지난 1995년경 충북 괴산군 청천면 용추폭포 위에서 지상 2m의 줄기가 붙어 한나무로 되어 있는 수령 100년 미만의 연리목이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