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윗세오름을 다녀오다

"너 오늘 소중한 것을 좀 찾아갔느냐?"

등록 2003.05.24 11:07수정 2003.05.2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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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너무 가까이 있으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 연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의 단면이 아닌가 싶다.


후회 없는 삶은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땅을 치는 통곡이 없는 삶을 원한다면 자신의 주변에서 소중한 것을 발견해 내고 키워갈 일이다.

김민수

서울생활을 접고 작은 농어촌 마을에 삶의 터전을 잡은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늘 마음에 그리던 바다와 산을 지척에 두고 있으면서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 이틀 미루다 '언제 산에 갔더라, 바다는 언제 갔더라?'하는 생각이 들 때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쁘게 사는지 반문할 때가 있다.

생각해 보니 서울에서 태어나 불혹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살면서도 남산에 올라간 기억이 서너 번, 매일 아침저녁으로 남산순환도로를 지나 출퇴근을 하면서도 남산은 늘 그렇게 멀리 있었다.

돌이켜보면 주위에 있는 것들 중에 소중한 것이 참으로 많았는데 그 소중함을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김민수

서울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라산에 가고 싶은데 시간을 내면 비용이 없고, 비용을 준비하면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을 하며 참 좋겠다고 한다. 나는 그 친구에게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고도 마음만 먹으면 밤새도록 달리면 갈 수 있는 설악산도 있고 지리산도 있으니 참 좋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먼 곳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민수

마음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답답함의 찌끼를 털어 버리자 생각하고 새벽예배를 마치고 한라산 영실로 향했다.

한라산 등반 코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수월하다는 영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과 몇몇 단체에서 장애인들을 데리고 왔다. 떠밀려 올라가다시피 건강한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 재잘거리며 올라가는데 장애인들과 함께 온 이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걸음마다 땀이 베어있다. 육체적인 장애보다 더 무서운 장애는 비뚤어진 가치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러운 걸음이 숙연하다.

김민수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을 오르며 '등산로외 출입금지'라고 쓰여진 푯말 너머의 숲을 바라본다. 제대로 산을 알고 싶으면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도 저 깊은 숲으로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데 발걸음은 정상을 향해서 가고 있다.

김민수

고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나무나 꽃들은 땅과 가깝고,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모양새에는 기품이 서려있다. 1600미터 이상 올라가자 이미 여름을 향해 가고 있는 평지와는 달리 이른 봄의 꽃들과 연한 새순을 내고 있다.

여름 속에 들어 있는 봄, 봄 속에 들어있는 여름을 본다. 언젠가 이 구분이 모호하지 않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확연한 여름, 아니면 봄이라는 계절이.

김민수

불혹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진다고 했다.

이 말은 선택한 인생의 길이 분명하다는 얘기요, 자기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산의 정상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 길이 있기 마련이다. 그 여러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서로 다른 수고를 요구한다.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정상에 오르는 시간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자기와 다른 길을 간다고 비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김민수

함께 출발을 했던 학생들이 하산을 하고 있는데 나는 이런저런 사진을 찍느라 아직도 산허리에 있다.

"힘내세요.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에요."
학생들 중에 누군가 건넨 말이다. 그러자 어느 학생이 웃으면서 "아저씨, 거짓말이에요. 아직 1시간은 더 가야해요" 한다.

내 걸음걸이를 생각해보면 1시간이라는 말이 객관적이요, 사실이지만 "조금만 더 가면"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말이 더 기분이 좋다.

김민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한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던 말이기도 한데 어떤 것이든 대상화되지 않고 그 자체로 불리운다는 것처럼 소중한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다.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사람은 사람일뿐이다.'
4시간여의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산은 나에게 묻는다.
"너 오늘 소중한 것을 좀 찾아갔느냐?"

김민수

그러고 보니 그렇다.

산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늘 이 질문을 하며 살아야 할 것만 같다.

"너 오늘 소중한 것을 좀 찾았느냐?"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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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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