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고 있어 더 아름답다

<유라시아여행기> 터키 이스탄불 (3)

등록 2003.05.24 19:42수정 2003.05.24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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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은 동양과 서양, 중세와 근대가 공존하는 역사적인 도시이다. 또한 로마와 비잔틴, 그리고 오스만제국으로 이어지는 대제국의 수도로써 고색찬란한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경계로 서쪽의 유럽지역과 동쪽의 아시아지역으로 나뉜다.

또한 유럽지역은 골든홀을 중심으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어지는데 그중 구시가지는 유럽과 아시아, 동·서양의 문명이 공존하는 숨소리를 가장 크게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골든홀 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비잔틴 시대에 건축된 길이 16k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누렇게 빛이 바랜 성벽 안으로 오랜 문명의 흔적과 역사의 향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블루모스크 전경
블루모스크 전경홍경선
구시가지에는 거대한 두 개의 장벽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바로 '비잔틴'과 '이슬람'이라는 서로 다른 두 문명의 장벽이다. 하지만 장벽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들은 관용과 공존이란 사다리를 통해 쉽게 넘나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두 문명의 지배를 받으며 이스탄불의 역사를 대변해온 '성 소피아 성당'은 건너편의 이슬람사원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바로 파란 돔과 날카로운 첨탑이 인상 깊은 '술탄아흐멧 사원(블루모스크)'이다. 햇살을 머금은 6개의 첨탑이 만들어낸 파란 빛은 중앙의 거대한 돔에 반사되어 매혹적인 빛깔을 띠고 있다.

미묘한 감정에는 왠지 둔해 보이는 '성 소피아 성당'도 '블루모스크'의 화려한 외관에는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는가 보다. 1616년 사원이 완성된 후로 지금까지 약 400년동안 줄곧 바라보고 있다.


1609년 술탄 아흐멧 1세는 성소피아 성당을 능가하는 사원을 짓고 싶어했다. 그의 바람은 당시 최고의 건축가 미마르 시난의 제자인 '메흐멧 아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8년의 시간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사원이 완성된 것이다.

화려한 사원의 모습은 오스만 투르크의 영광을 재현해 놓은 듯 하다. 직경 23.5m, 높이 43m의 거대한 중앙 돔을 4개의 반돔이 에워싸고 있고, 모두 6개의 첨탑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있다. 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것으로 첨탑의 수가 '6'이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설이 전해진다.


술탄 아흐멧 1세는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에 건축가 '메흐멧 아가'에게 황금으로 된 첨탑을 세울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당시 재정 형편상 황금으로 첨탑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궁리 끝에 유레카를 외쳤다. 황금(ALTIN) 첨탑을 세우는 대신 여섯(ALTI)개의 첨탑을 세우는 것이다.

터키어로 황금은 'ALTIN' 이고 '6'은 'ALTI'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설은 원래 일곱 개의 기둥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나 성지에 있는 사원과 같을 수 없다는 주장 때문에 하나 둘 줄여 전부 6개의 첨탑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 후 이곳은 제국의 술탄들이 종교적인 선언을 하는 곳이자 메카로 향하는 성지순례의 출발지가 되었다고 한다.

블루모스크의 세련된 모습은 빛바랜 성 소피아 성당과는 대조적이다. 훨씬 앞서 지어졌던 건축물을 모방하여 그것을 능가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인가. 날카로운 첨탑과 둥근 돔들의 조화는 마치 과거의 한복판에 거대한 우주정거장이 세워진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블루모스크의 진정한 매력은 내부에서 뿜어져 나온다.

사원 내부의 모습
사원 내부의 모습
모스크에는 모두 5개의 문이 있다. 이중 안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3개인데 남쪽 문을 통해 들어서면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아낼 수 있다. 약 2만2000여장의 푸른빛을 띠는 이즈닉 타일들이 사원 내부를 온통 치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장과 내벽을 가득 메워 청록빛을 띠는 것이 마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듯하다. 이는 사원 안 260개의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의해 더욱 더 환상적인 빛의 향연을 벌인다.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어두운 사원 안을 화려하게 수놓는 것이 또 있으니 바로 천장에 매달린 수백개의 오일램프다. 일정한 간격으로 원을 그리며 켜져 있는 램프 속 불빛들은 실제로 움직이는 듯하다.

길이와 폭이 각각 50m가 넘는 바닥을 꽉 채운 카펫은 어떠한가. 이는 에디오피아에서 가져온 최고급 실크로 만들어진 것으로 맨발에 닿는 촉감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붉은 카펫이 깔린 바닥과 연꽃 모양의 둥근 돔, 벽을 장식한 독특한 모양의 이즈닉 타일과 은은한 오일램프. 이 모든 것이 넓은 사원 안에서 한데 어울려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이즈닉 타일
화려한 이즈닉 타일
사원 안은 비록 화려했지만 그 이면에는 경건함이 베어있다. 햇살의 따사로움이 사원 내부를 감싸안을 무렵 기도를 드리던 신도들이 코란을 암송하기 시작한다. 일정한 높낮이로 나지막이 읊어대는 코란의 내용은 난해했지만 왠지 모를 엄숙함이 전해진다.

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하는 신도들의 모습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내벽을 가득 메운 코란의 글귀 역시 신도들의 기도소리와 맞물려 여기저기서 살아 움직이는 듯 하다. 램프 하나하나에 공중을 떠도는 경건한 코란 글귀들이 스쳐갈 때마다 누군가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만 같다. 화려함 속에 숨은 경건함은 그렇게 사원 구석구석에서 묻어 나온다.

엄숙한 본당 안의 분위기와 달리 바깥은 활기에 넘쳤다. 사원 여기저기서 신도들과 관광객들이 저마다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입구 옆에는 작은 수돗가가 있다. 본당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 머리를 깨끗이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바지와 반소매 차림 역시 금물이다. 몸이 깨끗해야 마음도 깨끗해진다는 진리는 동서양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모스크. 기독교와 이슬람, 서양과 동양이라는 거대한 양대 장벽은 이렇게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하지만 둘은 결코 서로를 노려보진 않는다. 오히려 서로에게 애정을 품은 체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의 코스로 성 소피아 성당을 찾고 있다. 회교도들 역시 마찬가지로 블루모스크를 찾는다. 하지만 곧이어 그들은 관용과 포용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공존의 길로 들어선다. 550년전 술탄 메메드 2세가 성 소피아 성당에 관용을 베푼 것처럼 말이다.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애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때만이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또한 이것이 바로 이스탄불이 자랑하는 공존의 문화라는 것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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