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인의 아름다운 결혼이야기

등록 2003.05.26 12:33수정 2003.05.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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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용

지난 5월 24일 오후 2시, 대전광역시청 20층 '시사랑'에서는 뜻깊은 결혼식이 있었다. 46세인 신랑 김시구씨와 33세인 신부 정명선씨의, 늦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은 150여명의 가족, 친치, 이웃들이 함께 한 가운데 치러졌다.

이날 결혼을 하는 신랑과 신부는 정신지체 3급의 장애인들이다. 장애인 가운데서도 소외된 이웃인 정신지체인의 결혼식은 쉽게 만나기 힘들다.

대부분 사람들이 정신지체인이 무슨 결혼을 하냐고 한다. 그러나 이날 결혼식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정신지체인의 결혼식이 일반 결혼식 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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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2년 전 대전에 위치한 '모두사랑 장애야간학교'(교장 오용균)에서 첫만남이 이루어졌다. 장애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이들은 늦은 나이에 장애인야학에서 배움의 불씨을 태웠다.

신랑 김시구씨는 야학에서 공부뿐 아니라 수업 후 운전봉사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수업 후 모든 장애인들을 집까지 바래다 주는데 그 코스의 마지막이 신부 정명선씨였다. 2년여간 함께 공부하고 집을 바래주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이 생겼고 이것을 아름답게 여긴 오용균 교장의 주선으로 이날 결혼이 이루어 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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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용

결혼식은 오용균 교장의 주례하에 양친 부모 입장, 촛불점화, 신랑·신부 입장, 서약, 성혼선포, 주례사, 축가 등으로 이어졌다. 이날 사회는 신랑의 야학 담임인 서일고 영어교사 이세구씨가 맡았다.

결혼을 주선하게 된 이유에 대해 오 교장은 "장애인의 결혼을 많은 사람들이 꺼리지만 장애인도 조금만 주위에서 도와주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인간으로 결혼은 당연한 것인데 우리 사회는 이러한 기회를 막고 있다"고 하며 "오늘 결혼하는 신랑 신부를 2년여간 살펴본 결과 함께 가정을 꾸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양가에 결혼을 제의했으나 처음에는 양가에서 많이 꺼렸지만 상대방을 보고 나서 점차 결혼으로 생각이 모아져 이렇게 뜻깊은 결혼을 맞게 되었다"고 했다.

a 주례, 모두사랑 장애인야간학교 오용균 교장

주례, 모두사랑 장애인야간학교 오용균 교장 ⓒ 이철용

신혼부부는 대전시 서구 도마동에 전셋집을 마련해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다. 이번 결혼식에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토대가 되어 이루어졌다. 염홍철 대전시장과 가기산 서구청장이 선물을 보내왔고 예식장은 시사랑에서 무료로 제공했다. 이미용, 드레스, 웨딩사진, 꽃장식, 부케, 초청장, 축가, 반주, 신혼 숙박 등 모든 것이 도움의 손길에 의해 성대한 결혼식이 이루어 질 수 있었다.


오 교장은 주례사에서 "신앙으로 하나가 되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다르고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이해하고 양가에서도 이들의 고통과 행복이 양가의 고통과 행복으로 알아 잘 협력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했다.

a 지난해 12월 결혼한 문경희씨

지난해 12월 결혼한 문경희씨 ⓒ 이철용

이날 결혼식에는 지난해 12월 모두사랑 장애인야간학교의 첫 번째 결혼자인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문경희(33세)씨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문씨는 "자신들도 결혼하기 전에 많이 걱정을 했는데 서로 이해하니까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새로 결혼하는 이 가정도 마찬가지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랑 김시구씨는 "지금은 기분이 좋지만 앞으로 탈없이 잘 살겠다는 생각인데 생각처럼 될 지 모르겠다"고 했다. 결혼식에 축하객으로 참석한 이명순(59세)씨는 "2년전 처음 신부를 만났을때 거의 외부출입을 하지 못해 걷는 것 조차 힘들었고 처음에는 상대방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건강도 회복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며 "이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했다.

이렇듯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협력을 통해 아름다운 가정이 탄생했다. 장애인은 장애인이 아니라 몸이 조금 불편한 사람들일 뿐이다. 이들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 아름다운 가정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편견이 이러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을 가로막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 열린 마음으로 장애인의 결혼이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a 양가의 축복가운데 치러진 결혼식

양가의 축복가운데 치러진 결혼식 ⓒ 이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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