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주의를 경계한다

민노당 권영길 대표의 프랑스 전당대회 참석을 보고

등록 2003.05.28 20:28수정 2003.05.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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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회당 전당대회에 모인 수 천명의 좌파 인물들과 그 대회에서 당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장면을 목격한 권 대표의 부러움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우리도 하루 빨리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 모든 정치세력들이 자유롭게 지지를 호소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한결같을 것이다.

하지만 권 대표의 프랑스 행 결과는 그다지 밝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실험은 아직도 유아기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노당의 직·간접 지지세력이라 할 수 있는 단위노조가 아직도 절반도 채 조직되어 있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 보장 또한 민노당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거대한 물결이 다시 한 번 일어나지 않는다면 진보정당의 주체가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이른바 정치권의‘개혁세력’이 될 공산이 큰 것도 문제이다.

이론적으로도 사회민주주의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의 논의밖에 되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 사회주의적인 어떤 것을 가미하여 예컨대 국유화라든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재벌 개혁이라든가 독과점의 금지 등등을 통해 살기 좋은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다는 사회민주주의 사상을 진지하게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분명 사회민주주의도 개혁세력의 일부이긴 한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권 대표가 다녀온 사회민주주의의 토대가 매우 강한 나라들에서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전망은 오히려 암울할 뿐이다.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프랑스 사회당과 사민주의는 단적으로 죠스팽 총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죠스팽 총리는 95년 우파정부에서 추진된 민영화 정책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더 많은 프랑스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프랑스의 실업문제는 계속해서 죠스팽을 괴롭혔으며, 결국 자유민주당의 라파랭에게 자리를 넘기는 것으로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


권영길 대표는 프랑스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의 뒤를 따를지 아니면 다른 어떤 길을 가게될 지는 두고 보야 할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발판을 닦는 것이 노동자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권 대표처럼 “신당논의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패권쟁탈전일 뿐이다”라고 옳게 지적하면서도 그 쟁탈전에서 자신이 소외된 것을 서운해하는 것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적 문제는“이러한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당면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북미회담과 다자회담을 병행하는 방안, 6-7월에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노사문제 해결 방안, 국회정치개혁특위와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즉각 가동하여 본격적인 정치개혁에 착수하는 문제, 분양권 전매 전면 금지제를 포함한 부동산 투기 대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 환수 방안 등 산적한 현안 문제에 대한” 대안 보따리를 즉각 풀어 해결해 줄 것처럼 손짓을 하고 있는데 있다.

권 대표는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서 무엇인가 흥정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는 ‘제정당 국가현안 대책회의’를 통해서 노동자들의 행동을 국정참여와 맞바꾸려는 것 같다.

권 대표는“노동자·농민·서민 등의 의견을 수렴해서 정리할 수 있는 곳은 민주노동당뿐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동을 통해서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합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한 손에 그리고 또 다른 한 손에는 대화와 타협을 쥐고서 흥정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선거전에의 적극적 참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노당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못지 않게 정책 개발에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만 보아도 민노당의 사회민주주의가 바로 ‘노동자’대표의 국정 참여를 의미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권 대표의 말처럼 앞으로 10년 안에 민노당이 집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87년 못지 않은 더 많은 노동자들의 훨씬 더 강력한 행동이 필요하다. 만약 중간에 민노당이 그 맥을 끊어버린다면 노동자들은 투쟁은 노동조합에서 하더라도 투표장에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선택할 것이고 맥을 끊지 못하게 되면 민노당을 넘어 다른 대안으로 갈 것이다.

이리가나 저리가나 민노당으로서도 어려운 선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민노당의 국정 파트너가 되기 위한 노력을 진보진영이나 신당 추진 세력들의 일부가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끌어들일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들이 너무도 산적해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뿌리를 더욱 강화할 필요성이 민노당 입장에서는 제 1의 과제이겠지만, 그것은 선거활동과 일회적 투표 행위가 아닌 오직 노동자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어려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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