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45

조두혹계두(鳥頭或鷄頭) (4)

등록 2003.05.29 13:05수정 2003.05.2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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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선과 호각지세를 이루는 금동아의 밑에도 변견자나 광견자, 그리고 취견자, 무뇌견 못지 않은 자가 있다.

그는 어찌나 무식한지 글자를 쓸 줄 모른다고 한다. 하여 모든 서류를 그림으로 그려놓는다는데 그나마 얼마나 못 그리는지 눈뜨고 못 봐줄 정도라고 한다.


그의 외호는 맹도(盲圖)이다. 눈을 감고 그린 것처럼 그림을 못 그린다는 뜻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장님이 그려도 그것보다는 났게 그릴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외호이다.

어쩌면 개나 소, 혹은 말이나 쥐가 발로 그려도 그보다는 훨씬 보기 좋게 그려낼 것이다.

그 역시 중원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희성(希姓)의 소유자일뿐만 아니라 이름이 몹시 의미심장하였다.

그의 성명은 나대로이다. 게으를 나(懶), 어리석을 대, 심란할 로 자로 이루어진 이름이다. 참으로 특이한 이름이다.

이것을 누가 지었는지 그는 몹시도 게으를 뿐만 아니라 어리석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란한 소리만 일삼는 자이다.


그가 하는 소리치고 제대로 된 소리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늘 헛소리와 궤변, 그리고 독설만 늘어놓는다고 한다.

그는 따로 간편복담편복이라고도 불린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모습이 마치 새도 되고 짐승도 된다 우기는 박쥐같아서 붙은 별칭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그의 부친은 사정이 다르다. 오히려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으로 존경받았다.

속담에 될성부른 잎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그의 부친이 어린 시절 그를 보았을 때 영 사람되기 틀렸다 생각하여 그런 이름을 붙여준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제 자식에게 그런 의미를 지닌 이름을 지어주겠는가!

최근 들어 그 동안 감춰져 있던 많은 진실들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광견자나 변견자, 그리고 취견자 등을 손봐줘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자 가장 먼저 도망간 사람이 있다.

아부의 달인이라고도 불리는 광견자 금대준이 바로 그였다.

그는 무림천자성 사람이라면 하다 못해 해우소를 치우거나 허드레 일이나 하는 하인에게까지 아부한다는 사람이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림천자성이 있는 무한을 향하여 구배지례(九拜之禮)를 갖춘다고 하였다.

다시 태어나면 선무곡이 아닌 무림천자성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의미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성주인 구부시의 명이라면 개똥이라도 주워먹겠다는 충성의 맹세라고 하였다.

정말 돌로 쳐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다.

선무곡에는 삼의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대로 제법 명성을 떨치는 의원들이 있다.

허언구(虛言狗) 길송섬과 그의 부인인 추마녀(醜痲女) 백잔숙(百殘夙)이 주인공이다.

길송섬의 오늘은 순전히 젊은 시절에 쌓은 명성의 결과이다.

그가 젊은 나이에 유명한 의원인 여의숙(汝矣塾)의 의생으로 처음 나타났을 때에는 비교적 뛰어난 의술이 있었기에 문지방이 닳도록 환자들이 드나들었다.

그때 사람들은 허언구가 겸손이 무엇인지, 겸양의 미덕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내가 무엇인지를 아는 줄 알았다. 가끔가다 바른 소리도 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오늘날과 같이 허언구 즉, 『입만 열만 헛소리를 하는 개새끼』라는 불명예스런 외호로 불리는 것은 추마녀 백잔숙과 혼례를 올린 직후부터였다.

현재 길송섬과 더불어 여의숙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백잔숙은 어린 시절에 마마[천연두(天然痘)]를 앓아 곰보이다.

원래부터 인물이 없었는데 거기에 마마까지 앓아 곰보가 되자 그야말로 눈뜨고 못 볼 정도로 못 생긴 추녀가 되었다. 하여 『추한 곰보 여인』이라는 뜻으로 그 같은 외호를 얻은 것이다.

그런 그녀가 그런 대로 허우대가 멀쩡한 길송섬과 혼례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슴에 숨겨져 있던 야심 때문이었다.

길송섬은 나이가 약관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의술을 익혀 장차 의원이 되기 위하여 당대 최고의 의원 중 하나라 할 수 있던 만구소의(萬口笑醫) 한방공(韓放公)의 식객이 되었다.

그가 그 어렵다는 의술을 애써 익히려던 의도는 절대 인술을 베풀기 위함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의원이 되면 은자를 많이 번다고 하자 무작정 그것을 택한 것이다.

한방공은 추마녀 백잔숙의 외조부이다. 그는 뛰어난 의술을 지닌 의원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그의 외호에 만구(萬口)라는 심상치 않은 글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그의 심각한 떠벌림 때문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주워듣던 일단 그의 귀에 들어가면 그것은 즉각 만천하로 알려졌다. 보는 사람마다 그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해 하였다.

그래서 본연의 업인 의업보다는 떠벌리는 것에 치중한다 하여 입이 만 개나 되는 웃기는 의원이라는 외호를 얻은 것이다.

아무튼 만구소의의 식객이 된 길송섬은 자신의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그의 문하가 되기를 갈망하였다.

이때 한방공의 문하에는 이미 많은 제자들이 포진해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새로 제자를 거두는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때였다.

한시바삐 한방공의 정식 문하가 되어 뛰어난 의술을 전수 받기를 갈망한 길송섬은 기회를 만들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그러는 동안엔 늘 예의 바르며 겸손한 체하는 한편 한방공의 제자라면 누구에게든 술을 샀다.

여의숙에서는 매년 한 차례씩 모든 제자들과 식객들을 상대로 일종의 시험을 치게 하였다. 그래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자만 문하에 들도록 허락하는 전통이 있었다.

길송섬은 매년 시험에 응시하였지만 번번이 낙방하였다. 그 가운데에는 미리 시험문제를 알고 시험장에 든 때도 있었다.

한방공의 제자들에게 질펀하게 술을 산 끝에 얻어낸 귀중한 정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송섬은 낙방하고 말았다.

결코 어디가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그는 비교적 명석한 두뇌를 타고 태어났다. 그렇기에 웬만한 것은 서너 번만 읽어보면 금방 오의를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가 번번이 낙방한 것은 순전히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스스로 똑똑하다는 것을 알기에 머리만 믿었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이고, 아무리 좋은 연장을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스는 법이다.

거의 매일 술추렴이나 하며 지냈기에 의술이 나아지기는커녕 알고 있던 것조차 까먹을 판이었다.

문제를 알고도 낙방한 다음날부터 길송섬은 주루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술에 취해 눈이 벌개진 길송섬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날 밤, 추마녀 백잔숙의 거처에서 길고 긴 단말마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청백이 깨지는 소리였다.

술에 취한 길송섬에 의하여 겁탈 당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겁탈은 아니었다.

깊은 잠에 취해있던 추마녀는 육중한 무엇인가가 짓누르는 것을 느끼고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그 즉시 술에 취한 누군가가 자신을 겁탈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비명을 지르려 하였다.

하지만 그 비명은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소리가 새어나가려는 찰라 제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한방공의 제자들 가운데에는 영준한 청년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 그들 가운데 하나와 맺어지고 싶은 마음에 먼저 꼬리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매번 참담함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걸면 대화를 나누려 하기는커녕 갖가지 핑계를 대고 모두 꽁무니를 빼기 바빴기 때문이다. 사내들로서는 차마 사부의 외손녀인 그녀에게 어딜 감히 넘보느냐고 한마디 따끔하게 면박을 주고 싶었겠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그냥 물러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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