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천막요원이었던 황형원씨. 진지하게 환경활동가를 꿈꾸고 있다류종수
이 감격과 아쉬움은 그의 꿈도 바꿔놨다. 그는 "환경운동단체 간사들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또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진지하게 환경운동가의 길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삼보일배 순례단 맨 앞에서 행렬을 인솔하던 박인영 간사(녹색연합)도 참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고행을 말리고 싶었다. 네 분이 대단한 일들을 하고 계시는구나. 이번 삼보일배는 또다시 새만금 간척사업의 문제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고 고행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뭇 생명들의 떼죽음을 막아보자는 기도수행이었는데 전북에서 올라와 우리의 반대편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욕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다. 온 몸을 감싸는 더위나 매연보다 더 힘들게 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덧붙였다.
박인영 간사, 그는 65일 동안 걸어오면서 많은 마음이 모아진 것을 느꼈단다. 갑자기 트럭 한대가 서면서 아저씨가 딸기 상자를 내려주신 적도 있고, 서천을 넘어왔을 때 TV에서 봤다며 덧댄 바지를 준 사람도 있었다고. 그는 “모두 따뜻한 마음이었다"며 "삼보일배 순례단과 함께 하면서 이 마음들이 모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말릴 수 도 없어서 차라리 내가 했으면 하는 생각도…"
송정희(26)씨는 네 분 성직자의 '최측근'으로 이들의 수발을 들었다. 매 끼니마다 음식을 차려 주면서 잠시 쉴 때는 물수건으로 흥건히 젖은 얼굴을 닦아주고 다리 마사지로 피로도 풀어주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죽음을 극복하는 네 분 성직자들을 보아야했던 그녀의 지금 감회는 또 남달랐다.
"무더운 날씨에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볼 땐 시원한 바람 한 줄기와 그늘이 정말 그리웠다. 많은 의사 분들이 다녀가면서 20여가지가 넘는 치료법을 제시해줬지만 나중에는 온전히 혼자서 기도와 정신력으로 삼보일배를 이어갔다.
장대비에 천둥치는 날에도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말릴 수도 없어서 차라리 내가 했으면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수경스님이 쓰러져서 옆에서 병간호를 했는데 수경스님이 의료진의 만류에도 다음날 새벽 병원을 몰래 빠져 나왔을 때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일전에 '지리산 살리기 도보순례'에 참석하면서 수경스님을 알게됐다는 송정희씨는 "이라크전이 터지고 새만금을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내 개인 일은 언젠가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은 정말 절박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 일에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정희씨와 함께 네 분 성직자 '뒷바라지'를 담당했던 홍숙경씨.류종수
길 위에 절을 하면 담배꽁초가 이마에 닿기도 하는데도 개의치 않고 한없이 자기를 낮추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내가 어떻게, 무슨 욕심으로 살아왔는가',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가'를 하루에도 수십번 생각한단다.
함께 함으로써 모두가 성장했던 이들 진행요원들. 처절하게 아름다운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쌓여간, 이들의 각기 남다른 기억들을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삼보일배, 그 대장정의 화면들이 우리 가슴에 영사되는 것만 같다.
31일, 4명의 성직자의 삼보일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러나 새만금갯벌이 고기들의 산란장으로, 천혜의 정화조로 되살아날 때까지 이 고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이들은 힘주어 말한다.
"이제 그 몫은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모든 시민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 | 해창갯벌에서 서울시청까지 800여리 길을 '온몸으로' 걸어왔다 | | | 전무후무한 대장정이 남긴 이야기들 | | | |
| | ▲ 문규현 신부 일행이 삼보일배를 하는 가운데 대형차량이 굉음을 내며 이들 옆을 지나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생명과 조화의 땅 새만금갯벌을 파괴하는 방조제공사를 즉각 중단하라"는 고요한 외침을 토해내며 이어온 삼보일배 행렬이 31일 드디어 최종 목적지 서울 시청에 당도한다.
문규현 신부(58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와 수경 스님(55세,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연대 상임대표)가 '의기투합'하고 이희운 목사(42세, 기독교생명연대 공동대표)와 김경일 교무(새만금 생명살리기 원불교사람들 대표)가 뒤를 이어 합세한 이 행렬은 지나오는 곳곳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해창갯벌에서 서울 시청까지 3백Km, 800리 길은 3월 28일에 시작됐다. 정확히 65일 동안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극복하는 세 걸음으로, 한 번 사죄의 엎드림으로 걸어온 '전무후무한' 이 대장정이 남긴 기록들도 엄청나다.
5월 22일에는 삼보일배 행렬이 기어이 과천종합청사에 도착하자 환경부 한명수 장관과 농림부 김영진 장관도 이들을 마중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인 23일에는 가수 정태춘씨가 현장으로 달려와 직접 작사작곡한 <갯벌의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고, 동자승이 찾아와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했다. 박원순 변호사,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이영희 교수, 김지하 시인들이 삼보일배 행렬에 직접 동참하면서 '국민의 염원'으로 만들어 나갔다.
자동차로 반나절이면 달려올 길을 '온몸으로' 걸어온 삼보일배. 하루 평균 6시간 진행된 강행군은 수경 스님의 눈까지 아프게 했다. 아스팔트 위에 반사되는 눈부신 햇살 때문에 어울리지 않게 선글라스를 착용하기까지도 했다.
손에 낀 장갑은 거친 아스팔트의 표면에 하루에도 서너 켤레를 소모하게 했다. 무릎이 맞닿은 바지에는 솜으로, 보호대로 덧대어도 구멍이 나기 일쑤였다. 수경 스님은 때론 무릎에 찬 물을 빼내면서 고행길을 이어갔다.
4대 종단이 어울러진 삼보일배는 특정 종교의 날을 두기도 했다. 5월 19일에는 기독교 참가일 등을 두면서 생명을 사랑하는데 교파의 벽이 있을 수 없음을 증명했다. 긴 행렬에는 각지에서 올라온 불교신자들과 흰 한복을 입을 원불교 교무들, 십자가를 목에 찬 기독교, 카톨릭 신자들이 항상 같이 했다.
이제는 지역을 넘어 생명 사랑의 대동마당을 만드는 것만이 남았다.
/ 류종수 기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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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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