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 한미연합사를 방문, 사열받고 있는 노무현 당선자.주간사진공동취재단
월포위츠, "경제적 압박이 최선책"
부시 행정부가 대대적인 전력증강 계획과 함께 밝힌 것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의 필요성이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포럼에 참석한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단기적인 해법은 없다며, 경제적으로 붕괴 일보 직전에 있는 북한을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함께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월포위츠는 또한 단기적으로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도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북한 전략은 북한과의 비타협주의를 고수하되 경제제재와 해상봉쇄, 그리고 한반도 안팎의 무력증강을 통한 북한 압박에 맞춰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94년 위기 당시와 흡사한 것으로써, 당시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한 경제제재 통과를 추진하면서 한반도에 대규모 전력증강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이에 맞서 북한측은 "제재는 곧 전쟁"이라며, 미 증원군이 한반도에 도착하기 전에 주한미군을 공격하겠다는 의사를 판문점 미군 대표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94년 당시 이러한 일촉즉발의 위기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해소되었으나, 9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와 대단히 흡사한, 그러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위기 상황이 다시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주한미군이 공개적으로 PAC-3를 한반도에 배치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94년의 상황과 비교해서 볼 필요가 있다. 93년 말 타결 일보직전까지 갔던 북미 협상이 김영삼 정부의 '딴지걸기'로 수포로 돌아가면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공격 계획을 세우고 우선적으로 북한의 스커드미사일에 대응한 패트리어트 미사일 반입을 강행했다. 이를 자신에 대한 공격 임박 신호로 해석한 북한 지도부는 전군에 비상대기를 하달하고 사실상의 전시체제로 돌입한 바 있다.
당시 남한에 배치되었던 패트리어트가 보잘 것 없는 요격 성공율을 보인 무기였다면, 이번에 배치되는 PAC-3는 이전의 근접 폭발 방식에서 직접 충돌 방식으로 요격하는 'hit-to-kill'을 채택한 최신예 요격체제이다.
막강한 선제공격 능력과 함께 PAC-3까지 갖추게 되면, 미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상당 부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반대로 북한은 강력한 전쟁 억제력 가운데 하나가 무력화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반도 군사 위기 고조될 듯
이처럼 미국 주도의 경제적, 군사적 압박이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면서 관심의 초점은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고 나올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한편으로는 핵무장 가능성까지 흘리면서 미국을 압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담한 제안"과 다자 회담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을 설득하고자 하고 있다.
강온책 모두 기본적으로는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만, 미국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면서 북한의 목을 서서히 죄어오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할 가능성도, 미국이 북한과의 진지한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극히 낮은 상태에서, 노무현 정부는 사실상 북한을 굴복시키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정상회담은 이러한 전략적인 전환의 신호탄이었고, 깐깐해 보였던 노무현 정부의 동의를 받아낸 부시 행정부는 치밀한 대북한 압박·고립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주한미군 전력증강 계획이 한미 군당국의 합의로 발표되었다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대개 미국 측에서 한국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배치 계획을 통보하고 강행했었으나, 이번에는 사전에 한국의 국방장관의 합의하에 발표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동의를 쉽게 받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북한의 반발이 예전보다 강력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부시 행정부의 의도에 촉각을 곤두세워온 북한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추가적 조치'에 합의한 것을 자신에 대한 무력 사용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강력히 항의한 바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이번에 한미 군당국의 합의로 주한미군 전력을 대대적으로 증강시키기로 한 것은 북한의 의구심을 더욱 키울 것이고, 남북관계에도 적지 않은 부작용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도 밝혔듯이 '당분간'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동의를 받아낸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해상봉쇄를 추진하면서, 한반도 안팎의 군사력도 증강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북한의 굴복을, 다른 한편으로는 최후의 수단으로 무력 사용 준비를 갖추어나갈 것이다.
특히 한미, 미일 정상회담에 이어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북한 핵개발 저지 성명을 채택할 예정이어서, 6월 중순부터는 사실상 한-미-일 대북 압박구조가 완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가 예상외로 쉽게 부시 행정부에게 코드를 맞춰줌으로써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 전략은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미국 주도의 압박에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고 나올지는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선제공격할 권리는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왔지만, 파멸을 가져올 선제 무력사용을 북한이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 주도의 압박에 굴복할 가능성도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반도는 점차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주도의 본격적인 경제제재와 해상봉쇄 추진, 한반도 주변 군사력 증강 등 여러 가지 긴장 요인들이 가장 민감한 시기인 꽃게잡이철 6월달과 조우하고 있다는 것도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이 94년과 마찬가지로 극적인 반전(反轉)으로 귀결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는 것이 한반도가 처한 엄연한 현실이다.
아직 기대를 거두기는 이르지만, "전쟁을 막겠다"고 공언하면서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확고한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에 편승함으로써 코드를 한반도 위기 고조의 한 요인을 제공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이래서는 안 된다. 북-미간의 긴장이 고조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큰 불안을 느끼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노무현 정부가 쉽게 대북 경제제재나 무력 사용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약속이기도 했다.
이제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노무현 정부에게도 큰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어려운 시대, 복잡한 정세에서 정부가 원칙을 잃고 쉽게 흔들릴 때,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갈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가 더 늦기 전에 비판 여론에 귀기울여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간절히 호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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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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