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때의 성폭력은 평생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살아가야 하는 정신적 쇼크를 남긴다.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처요령을 아이들에게 자주 교육시키는 등 적극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우먼타임스
지난 98년 유치원에 다니던 K양은 유치원에서 일하는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 K양은 경찰과 검찰을 오가며 5∼6차례의 진술을 하는 과정에서 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학교에 입학하고도 오줌을 가리지 못했는가 하면, 지금까지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아동들은 성폭력 당시 입은 신체적, 정신적 상처뿐만 아니라 심각한 심리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법원의 증인 출석요구 등 심각한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죄책감 수치심 등 2차적 피해 동반
2001년부터 2002년 사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성폭력 상담을 의뢰한 사례를 분석한 결과, 20세 이상에서 일어난 성폭력이 56.7%, 청소년 19.3%, 아동 14.8%였고, 유아도 7%나 됐다. 성폭력의 절반 이상에 가까운 피해를 미성년자들이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동이 당하는 성폭력의 피해는 신체뿐만 아니라 2차적으로는 정신적인 면에서도 나타난다고 말한다. 특히 아동 성폭력의 경우 면식범인 경우가 많아 아동들은 죄책감과 수치심 등의 정신적 충격이 더욱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문지현 동화신경정신과 부원장은 “아동 시기는 긍정적인 성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로 이 시기에 성폭력이나 성학대를 당하게 되면 건전한 성 정체성이 형성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성 정체성 형성시기 타격... 부모관심 절실
아동들이 당하는 2차적인 피해는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강간 외상증후군, 기타 불안장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불안장애는 성학대와 유사한 일이 발생했을 때 불안이 만성화되거나 악화되는 경우로 부정과 반복적인 외상 경험이 교대로 나타나는‘만성외상성 신경증’이 나타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외상적인 사건(강한 성추행 등)에 노출됐을 때 나타나는 경우로 외상과 관련된 자극을 지속적으로 회피하거나, 자극에 오히려 무감각하게 반응하게 된다. 또 언어퇴행과 대소변 가리기 등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강간 외상증후군은 일상생활을 와해시킬 정도로 신체증상이 나빠지고 극도의 두려움에 시달리게 된다. 두통·위장증상·질 분비물이 증가되고, 평소보다 부단히 움직이며 두려움과 공포·분노 등으로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가려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또 특정한 상황이나 물건에 대한 공포증, 사회 공포증, 공황장애 등이 나타난다.
이런 2차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아동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성폭력이 어떤 것인지를 인식시키고, 부당한 취급을 받았을 때는 부모에게 즉시 알리게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박금자 한국성폭력위기센터 대표는 “아이들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는 부모가 인지할 수 있는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면서 “부당한 접촉을 거부하게 하거나,‘싫어요’라고 말하게 하고, 부모들의 주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피해자 조사 1회로 제한키로
▲아동 성폭력 수사방식이 수차례에 걸쳐 진술을 강요함으로써 아이들이 제2의 정신적 상처를 남기게 된다는 지적이 강하게 일고있다. 이에 법무부·경찰청은 최근 1차진술만으로 수사를 하는 등 개선안을 마련했다.우먼타임스 장철영
이런 가운데 성폭력 피해아동의 부모들이 수사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책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하기로 했다.
‘아동 성폭행 피해자 부모모임’은 “아동 성폭행 사건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인 아동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며 수사 관행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인권위가 정책을 권고하거나 의견을 표명해줄 것도 요청하기로 했다.
이들은 ▲아동 성폭행이 신고된 즉시 피해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정신감정 의뢰 제도화 ▲감정에 대한 녹화 의무와 증거능력 인정 법제화 ▲피해아동의 1회 진술에 대한 검사의 의무적인 증거 보전 청구 제도화 ▲성폭행 사실이 인정된 경우 치료비의 가해자 비용 부담제도 도입 등을 인권위가 권고해주도록 요청할 방침이다.
현재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피해아동들의 최초 진술 현장에 경찰과 아동심리전문가·정신과 의사 등이 참석한다. 또 아동의 진술은 한번으로 제한되며, 모든 과정이 비디오로 녹화돼 증거 능력을 인정받는다.
미국의 경우 아동의 입장에서 치료와 교육과정을 수행하며, 아동학대치료센터와 법적 보호기구인 아동상담협회(NACC) 등이 아동들의 치료와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난해 영국에서는 아동 성 범죄자들에게 ‘전자꼬리표’를 이식하는 방안까지 검토된 바 있다. 이는 아동 성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피부에 전자꼬리표를 이식해 심장박동과 혈압 등을 감시해 아동 성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다.
| | “조서만으로 재판가능, 性범죄는 엄중처벌해야” | | | 아동성폭력재판 관행 비판한 강지원 변호사 | | | |
| | | | ⓒ우먼타임스 장철영 | 아동 성폭력 사건 재판 시 가해자가 혐의 사실을 부인할 경우 재판부는 의례적으로 피해아동을 증인으로 채택해왔다. 이런 관행 때문에 아동의 인권침해 논란과 2차적인 아동의 피해가 우려되어 왔다.
최근 이런 피해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발생했다. 고모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13세 A양에 대해 서울지방법원 형사7단독 재판부가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A양을 증인으로 신청하자, 무료 변호를 맡은 강지원 변호사(전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사진)가 지난 5월 27일 이를 철회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한 것. 강 변호사는 아동 성폭력 사건의 재판 관행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판사가 ‘가족 내에서 성추행이 일어났으므로 가족이 분열되고,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며 영국으로 가서 합의를 보도록 권장했다.”
지난 5월 3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강지원 변호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재판부가 법정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재생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피해자는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을 정도로 정신적인 충격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또 “형사소송법 제314조(증거능력에 대한 예외) 규정에 의하면 수사기관이 작성한 참고인 진술조서에 대해 ‘공판기일에 진술을 요한 자가 사망, 질병, 외국 거주, 기타 사유로 진술을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조서 및 기타 서류를 증거로 할 수 있다”면서 “다만 그 진술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진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13세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므로 충분히 조서만으로도 재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기계적으로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피해자 A양의 출석을 요구했고, “법원에서 정식으로 소환장을 보냈다는 근거를 남겨야 한다. 국제사법공조에 6개월 가량이 소요된다”며 재판을 6개월 후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강 변호사는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6개월이란 기간을 정해 구속기간이 4개월이나 남은 고모부를 재판할 수 없으니 석방했다”면서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재판을 할 수 없으면 다른 부분부터 먼저 심리를 거치면 될 것을 굳이 석방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근친간에 이루어지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더욱 엄중하게 처벌해야 하는데도 재판부가 합의를 종용하고 있다”면서 “이런 결정을 한 판사는 전형적인 남성주의적 사고와 반아동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재판부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강 변호사는 ‘전관예우’를 바라는 변호사이기보다는 후배들의 잘못된 관행과 사고를 바로잡는 법조인의 길을 걷겠다고 말한다.
그는 “판사들에게 골프 스폰서를 해주고 예우를 바라는 것보다는 후배 법조인들에게 쓴소리를 통해 잘못된 것을 고쳐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면서 “재판부도 여성 성폭력이나 아동 성폭력 사건의 경우 이 분야를 공부한 전문가나 여성 판사를 배치하는 등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일을 계기로 그는 법조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어린이·여성 성폭력 사건에는 초동수사의 자료로 피해자가 재판에 나오지 않고도 최종재판까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 개정이나 관행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 변호사는 아동·여성 성폭력 사건의 경우 증거보존절차를 간소화해 경찰조사나 검찰조사시 판사에게 청구해 판사 앞에서 바로 진술하게 하는 것을 의무적으로 활용하게 해 한번의 진술로 피해자를 두 번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또 피해자가 진술할 때 편안한 장소에서 진술할 수 있게 함은 물론, 아동심리전문가를 참석시키고 비디오로 진술을 녹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수사에 앞서 ‘정신과 치료’를 우선하는 시스템을 강구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자인 아동을 재판부가 증인으로 채택한 것은 헌법과 법률에 위반하는 행동이며 재판권의 남용으로 규정하고, 법관의 징계와 탄핵소추를 국회에 청원하는 등 모든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며 “피해자가 제2의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뿌리깊은 관행을 뜯어고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 백현석기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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