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고인돌 공원 가는 길에 만난 만석선원

독특한 건축양식 등 문화적 가치 높아

등록 2003.06.07 13:24수정 2003.06.0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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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학포 선생의 후손인 양춘승씨가 삼지재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학포 선생의 후손인 양춘승씨가 삼지재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최연종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고인돌공원 가는 길에 만석선원이라는 아담한 암자가 있다.

규모는 작지만 건축양식이 특이한 데다 암자에 얽힌 색다른 내력이 있는 곳이다. 암자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건축연대는 알 수 없지만 오랜 전통을 가진 암자임을 짐작케 하는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암자 입구에 이르니 수령이 꽤 오래된 아름드리 은행나무, 백일홍, 단풍나무, 상수리나무가 암자의 역사를 말해주 듯 주변을 감싸고 있다. 건물 중앙에 만석암(万石庵)이라는 현판이 눈에 띈다. 그 뒤로 삼지재(三芝齋)와 시문을 적은 작은 현판 20여개가 걸려 있다. 처음부터 이 집은 암자였다고 한다. 건너편 산에 큰 사찰이 있었고 이 집은 그 사찰의 부속암자였다는 것이다.

a 만석암 대청마루. 문이 7개나 달려 있어 독특하다.

만석암 대청마루. 문이 7개나 달려 있어 독특하다. ⓒ 최연종


세월이 흘러 방치 되다시피 한 이 암자가 학포 양팽손 후손들에 의해 발견돼 세상에 알려졌다. 양씨 후손들은 칡넝쿨 속에 숨어있는 이 암자를 발견하고 문중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수백년 전이었다고 하니 예사롭지 않은 암자임을 알 수 있다.

건축양식은‘ㄷ’자형 5칸으로 고택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 크기가 두세 평에 불과한 대청마루는 문이 7개나 달려 있어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사방이 문으로 연결돼 좀처럼 보기 드문 양식이다. 대청마루에서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앞산의 경치를 바라보면 시 한 수가 금방 튀어나올 것만 같다. 콸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선원의 정적을 깨운다.

삼지재는 아쉽게도 규모가 작은데다 지붕이 양와(洋瓦)로 이어져 고풍스런 멋이 덜하다. 원래는 토기와 지붕이었으나 지붕이 낡아 50여년 전에 양와로 교체했다.

옛 토기와 파편들은 마당 앞 담으로 이용되고 있다. 암자 주인이 양씨 문중으로 바뀌면서 이 곳은 글공부를 하는 서재로 바뀐다. 만석암에서 삼지재로 이름이 바뀐 시점도 이때다.


a 대청마루에서 바라본 건지산.

대청마루에서 바라본 건지산. ⓒ 최연종


양팽손 후손인 양춘승(81. 도곡면 효산리 2구)씨.

“암자 주위에는 야트막한 산이 3개가 있습니다. 건물 뒤쪽에 곤지산(坤芝山)이 있고, 건너편에 건지산(乾芝山)이, 월곡리 인근에 만지산(万芝山)이 있어 삼지재라 불렀습니다. 많은 선비들이 이 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들의 반찬거리를 생산하는‘김장논’이라는 토지가 따로 있었지요.”


만석암(万石庵)이라는 이름에서 보듯 곳곳에는 큰 바위가 많다. 만석암도 바위 위에 지어졌다. 전에는 주변에 암자도 더 있었고 규모도 지금보다 더 컸을 것이다. 많은 선비들이 이 곳에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선비들은 그때 당시의 삶을 노래하고 있으니 20여개의 현판이 이를 말해 준다. 정자나 서원에서 이런 글귀들을 흔히 볼 수 있듯 삼지재가 암자가 아니라 문학의 산실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a 만석암 주변에 있는 바위. 암자 곳곳에 크고 널찍한 바위가 많다.

만석암 주변에 있는 바위. 암자 곳곳에 크고 널찍한 바위가 많다. ⓒ 최연종


삼지재가 날로 번창하면서 양씨 문중은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장학기금을 조성해 많은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학교를 설립한다. 이 장학재단은 곧 도곡중앙초등학교를 설립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이 된다. 장학재단이 주도하고 주민들도 십시일반 보태 오늘의 도곡중앙초등학교가 탄생한 것이다.

삼지재는 다시 7년여를 빈집으로 묵혀 있다가 만석선원(万石禪院)으로 바뀌었다. 양씨 문중의 배려로 현재 비구니 스님 두 분이 4년 전부터 수도하고 있다. 3칸은 법당으로 꾸며졌고 나머지 2칸은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채다.

a 암자에 걸린 현판들. 뒤로 시문을 적은 현판들도 보인다.

암자에 걸린 현판들. 뒤로 시문을 적은 현판들도 보인다. ⓒ 최연종


삼지재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지재는 건축양식이 특이한데 특히 대청마루는 좀처럼 보기 드문 양식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큽니다. 화순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 인근의 양동호 양승수 가옥과 고인돌 공원을 연계해 관광벨트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지재를 찾은 화순군의회 김실 의원은 삼지재는 훌륭한 인재를 배출한 역사의 현장인 만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칠넝쿨과 함께 사라질뻔했지만 수백년 동안 암자와 서재, 그리고 다시 선원으로 면면히 이어져 온 만석암. 조용한 곳이 그리워질 때 만석암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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