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 내 단체 사진(기사와 무관함)김승구
사회에서는 군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많이 나오지만, 실상 2년 이상을 생활해야 하는 군대 내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현재 구조상 군대 내부자의 고발이란 가능하지 않고,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조차 제대하고 나면 의식에서 말끔히 지워버린다. 더러운 기억을 떠올리기 싫다는 이유로.
하지만 군대 내부의 사정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고, 내가 겪었던 불편과 고통을 후배 전우들 역시 겪을 것을 생각하니, 좀 귀찮은 생각이 들어도 군 시절 경험 몇 가지를 적어보고 싶다. 이 이야기들은 굳이 내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후배 전우들의 행복한 군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군대에서 생활하다 보면 보급품 문제로 골치 아플 때가 많다. 사회에서처럼 돈만 있으면 무한정 사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 군문에 들어서면 군에서 보급되는 물품으로 생활을 꾸려가야 한다. 설령 집안이 넉넉한 병사라 할지라도 군대 생활하면서 사비 들여 물건 사는 건 바보짓에 속하는 일이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보급품은 넉넉해야 한다. 속옷, 치약, 비누 같은 것들이야 쓰고 남을 정도로 풍족하다. 겨울이 되면 내의를 입어야 하는데 내가 생활하던 몇 년 전에는 앞 전우들이 입던 것으로 두 벌 지급받았다. 아무리 덧입는 옷이라 해도 남의 옷을 입는다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생리에는 맞지 않는다.
수십 년 전 생활이 풍족하지 못할 때도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고 멀쩡한 옷을 버리기도 아까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 벌쯤은 새 옷으로 지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앞 전우가 입었던 내의를 아무리 깨끗하게 빨아 입어도 입고 보면 내가 거지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든다.(내의 한 벌은 새 것으로 지급하자는 말)
두 번째 이야기는 내가 겪은 일화를 들려드릴까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겨울인데 야상을 깨끗하게 빨아서 야외 건조대에 널어놓았다. 일과를 마치고 야상을 걷으러 갔을 때 는 빳빳하게 말라서 주인을 기다려야 할 야상이 사라졌다.
널어놓았던 건조대 밑에는 소속, 계급, 이름을 표시하는 비표만 면도칼로 깨끗이 오린 듯 나뒹굴고 있었다. 정황을 보고, 주변 동료들에게 이야기한 결과 인근 중대원의 소행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야상은 군 생활 동안 단 한 벌 지급될 뿐더러, 그 야상은 흔히 말하는 A급 야상으로서 작업할 때 입는 B급이나 CS급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행정보급관에게 보고했지만 그는 사건 이후 별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인근 중대원의 소행일 것으로 짐작하는 눈치였지만, 괜한 말썽이 일어날 것이라 우려되었던 것같다.
억울했다. 그럼 내 돈 주고 야상을 새로 사야한다는 것인지... 야상 한 벌은 병장 두달치 월급을 투자해야 살 수 있는 물건으로, 군대 물건 중 제1호 물품이다. 군대에서는 도둑맞은 놈만 바보 되고, 피해자가 된다. 이런 전도된 가치관이 군대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군대 내 절도 사건도 사회에서처럼 조사를 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
군 생활을 하다 보면 수시로 보안 검열이라는 것이 있다. 군에서 인가받지 않은 서적이나 음악 테이프, 시디, 워크맨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군대의 특성상 보안은 필요하다. 보안을 생명처럼 여기자는 말에 동의하지 못할 병사들은 없다. 하지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보안 검열에서 지적받으면 영창 간다는 말은 병사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멀쩡한 전공 교재나 어학 교재마저도 보안 검사를 필하지 않으면 보안 검열 때 지적받고, 워크맨같은 비싼 물품은 압수되기도 한다. 그리고 해당 병사는 적절한(?) 징계를 받는다.
그러나 대학생 병사들이 많은 관계로 휴가나 외박을 나가서 책이나 음악 테이프를 사들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답답한 군 생활 속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들여올 때마다 중대장이나 행정보급관의 인가를 받을 수는 없다.
그래서 비인가 책이나 테이프를 소지하고 있기 마련인데, 보안 검열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초등학교 교실의 수우미양가 도장같은 도장으로 책에 꾹꾹 눌러주기 바쁘다. 다분히 형식적이다.
워크맨의 경우에는 어학 학습용이나 음악 감상용으로 병사들이라면 하나씩 갖고 있게 마련이다. 그것으로 북한방송을 청취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근무하던 곳에서는 주파수를 잘 잡으면 북한방송이 흘러나온다고 하지만 요즘 세상에 누가 재미없는 북한 방송 들으며 군 생활을 위로하겠는가?
군대 내에서 병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안 검열은 형식적이고 요식적인 행사일 뿐이다. 기무부대 사람들도 그런 사정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괜히 병사들 괴롭히지 말고, 군대 내 사무실 관리라도 잘 하는 게 군으로 봐서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보안 검열 때나 기무부대 사람들을 보면 먼발치에서부터 피하고 쌍욕부터 하게 된다.(군대 내 병사들 대상의 보안 검열을 대폭 완화하든가 아예 폐지하자는 말)
후배 전우들의 행복한 군 생활을 위해 생각나는 대로 몇 마디 적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군대 내 인사 청탁이 비단 장교 진급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병이 전입해 오면 연대에는 전화가 빗발친다. 전화 건 사람은 “니네 연대장이 누군냐”라는 위압적인 말로 전화 받은 사람의 ‘야코를 먹인다’. 그러면 “이번에는 별 몇 개짜리일까”라고 사무실이 수군 수군 거린다. 신병에 대한 인사 청탁 전화이다.
연대 내의 최종 인사권자는 연대장이다. 때로는 그런 청탁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는 것같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연대 본부에 집어넣는다. 그래서 어느 소대는 그 후원자들의 별을 합치면 수십 개는 된다는 식의 얘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고, 의심의 대상자 자신이 스스로 밝히는 경우도 있다.
비빌 언덕 하나 없는 비천한 자식들은 GOP로 끌려가 갖은 고생을 하면서 군대의 생리에 씁쓸해 한다. 군대는 정정당당해야 한다. 일단 청탁하는 사람들이나 병사의 자식들도 문제이지만 그런 요구를 암암리에 수용하는 군대에도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듯하다.
사회 곳곳에 어둠의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군대에서만큼은 선량하고 정직한 부모의 선량하고 정직한 자식들이 분노와 회의를 가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병사에 대한 인사 청탁 없는 깨끗하게 정정당당한 군을 만들어 달라는 말)
올 10월 입대자부터 군 생활이 2년으로 단축된다고 한다. 긍정적인 소식이지만, 조금 더 줄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무리 군 생활이 2개월 준다 하더라도 생활 하는 동안 병사들이 모순과 불편을 느낀다면 2년이라는 시간도 결코 짧다고 할 수는 없다. 군대의 악습과 폐단은 하루빨리 개선해서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는 병영으로 일신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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