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1주기 맞아 다시 촛불 드는 사람들

추모위원 모집위해 1만가구 '발품'... 종이학 1800마리 전달도

등록 2003.06.12 13:11수정 2003.06.1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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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필승 코리아' 열풍에 휩싸일 때였다. '대한민국'을 밤새껏 외치며 민족적 자부심을 확인할 때, 그 '대한민국'에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은 없었다.

6·13 1주기를 맞고있다. 효순이와 미선이 꽃다운 어린 두 여중생이 무게 50톤이 넘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지 어느새 1년. 6·13 1주년을 맞아 다시 촛불을 움켜쥐는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a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이들. 저금통과 추모위원 안내서를 꼭 쥐고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이들. 저금통과 추모위원 안내서를 꼭 쥐고있다. ⓒ 이국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위령탑밖에 없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가슴아팠습니다. 사람들은 미선이 효순이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장연주(36)씨는 지난 10일간 '6·13 1주기 추모대회 추모위원' 모집을 위해 만나 본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장씨를 비롯한 '6·15실천단' 소속 회원 10여명이 1주기 추모대회를 위해 준비위원 모집사업에 나선 것은 지난 2일부터. 이들은 그동안 광산구 월곡, 우산, 운남동 등 아파트 단지 주민들을 찾아 잊혀진 효순이 미선이 얘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들은 매일 오전과 오후 2차례 평균 4시간 정도를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1주기 추모 준비위원' 모집에 발품을 들였다. 일일이 가정집을 방문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단순히 서명이 아니라 준비위원 성금으로 1000원을 모금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

평일에는 다섯 집에 한집 정도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얘기를 꺼낼 기회도 없이 문이 닫혀지기가 일쑤였다. 이래저래 방문객이 많은 아파트 문화 때문이다.


그동안 이들이 이렇게 방문한 집은 월곡, 우산, 운남동 약 9800세대. 1000원의 성금을 내는 '준비위원' 모집 숫자는 중학생부터 80세 할머니까지 480여명이다.

"'이렇게 해서 달라지겠느냐'는 말도 많이 있었습니다. 촛불시위로 타올랐던 전 국민들의 열망에도 해결된 것이 없다보니 크게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꼬깃꼬깃 구겨진 천원짜리..."좀 더 당당해 졌으면"

박희경씨는 주민들의 눈빛을 통해 지난 겨울 한차례 시민들의 가슴을 훑고 간 촛불시위의 빈자리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촛불시위가 전국을 뒤덮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는 것.

그러나 그는 "촛불의 열기는 식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힘이 없어 그런 것 아니냐'고 낙담하면서도 정작 주민들의 마음속엔 정부가 좀더 당당해 질 것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

"몸을 움직이지 못해 침대에서 생활하는 한 주민을 만났습니다. 창문 틈으로 얘기를 나누었는데 끝까지 들으시면서 '같이 하지 못해 미안할 뿐이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어떤 분은 꼬깃꼬깃 구겨진 1000원짜리를 꺼내 놓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480명이 아니라 주민들 가슴 가슴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촛불의 힘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오진희 양과 1800마리 종이학

5·18 23주기 전야제 행사가 펼쳐진 지난달 17일. 전야제 마지막 행사로 효순이 미선이 두 어머니가 무대에 오르자 이내 분위기는 숙연해 졌다.

광주 여중생대책위는 이 자리에 효순이 미선이를 대신해 두 어머니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염원을 담은 종이학 1800마리를 건넸다. 두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a 여중생광주대책위 사무실에서 만난 전남여고 오진희 양

여중생광주대책위 사무실에서 만난 전남여고 오진희 양 ⓒ 이국언

미선양의 어머니 이옥자씨는 "광주에서 이렇게 따뜻하게 맞아줘서 고맙다"며 "이 모습을 보고 애들이 저승에서라도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효순이 어머니에게 마이크가 전해졌지만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두 어머니한테 건네진 종이학은 오진희(18·전남여고 3년)양을 비롯한 전남여고 전교생이 함께 참여해 접은 것이었다.

"학생이다 보니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두 어머니가 전야제에 오신다고 해 학생회에 종이학 접기를 제안했는데 전교생이 다 참여하게 됐습니다. 두 어머니한테 드리는 말과 함께 우리 자신한테 하는 말들을 담았습니다."

지난해 12월 '광주여중생사이버대책위'에 결합해 그때부터 촛불시위를 함께 해온 지난 겨울이 그에게는 많은 것을 느끼고 가슴에 새긴 시간들이었다. 그는 "6월엔 월드컵 한다고 아무 것도 모르고 돌아다녔었다"며 "뒤늦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같은 학생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사이버범대위 활동, 사진전시회 개최

그는 지난 겨울부터 시간이 되는 대로 인터넷을 통해 추모 플래시를 올리거나 토론을 벌이고, 주위 친구들과 함께 백악관 사이버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입시 준비에 그 자신 초조함도 있었지만 촛불시위에는 꼭 시간을 냈다.

그는 "지금 와서 하는 실토"라며 자율학습이 있던 날 간혹 '병원을 간다'고 둘러대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라크 전쟁이 임박할 무렵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반전 사진전시회를 1주일 정도 열어 좋은 반응을 얻긷도 했다.

"시간 낭비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몰랐던 것을 새로 알게 되고 사회를 보는 눈도 넓어진 것 같습니다. 미국이 우방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으니까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촛불의 마음을 끝까지 간직한다면 언젠가는 두 여중생의 한을 풀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시종 담담한 표정인 그의 말이었다.

"6월 13일에 다시 만나요"
전남지역 다양한 여중생 1주기 행사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이 미선이 두 여중생 1주기를 맞아 시민사회단체들의 추모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와함께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합의한 6·15공동선언 3주기에 맞춰 이를 기념하는 통일행사도 활발하게 펼쳐질 전망이다.

광주지역 시민 사회단체들은 9일부터 두 여중생 1주기를 맞는 오는 13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매일 저녁 7시 광주우체국 앞에서 서명운동과 촛불시위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오는 13일에는 오후 7시부터 전남도청 앞 1주기 추모행사를 비롯해 목포·여수·나주·곡성에서 14일 순천·화순·영광 등에서도 1주기 추모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또 13일 광주 서구 상무시민공원에서는 오후 6시부터 '평화와 통일을 위한 평화콘서트'가 열리며, 오후 8시에는 금남로 카톨릭센터 앞에서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최로 300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미사와 촛불대행진이 열린다.

이와 함께 6·15 공동선언 3주기에 맞춰 통일축전과 기념 등반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13일 7시에는 광산구 통일 축전이 월곡동 한성아파트 옆 잔디공원에서, 14일 오후 3시부터는 상무시민공원에서 자전거·인라인스케이트 행진과 길거리 농구대회 등이 열리며 7시부터는 서구민 통일축전이 펼쳐진다.

또 14일 오전 서구 상록회관에서는 통일운동 단체회원과 시도 기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6·15공동선언 3주년 기념식을 갖고 오전 10시에는 문빈정사를 출발해 원효사로 돌아오는 통일 등반대회를 갖는다. / 이국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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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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