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법제는 일본 우경화 '중간 기착지'

[최재천 칼럼] 일본 유사법제, 왜 무엇이 문제인가

등록 2003.06.15 19:41수정 2003.06.1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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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 가운데 정신장애를 일으킨 비율은 보고서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000명 중 100여명 수준이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조사된 전후 스트레스 장애도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인종 대학살에 가담했던 독일 병사들의 경우 학살에 관여하지 않기 위해 도망친 병사가 10∼20%에 이르고, 학살 후에는 치욕과 혐오의 감정을 씻어낼 수 없어 수많은 병사가 정신장애에 시달렸다.

참전 용사의 전후 정신장애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 일본

일본군은 달랐다.

일본군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한 1937년부터 1945년 패전 때까지 육의(陸醫)의 정신장애를 진단, 연구하는 센터였던 고쿠후다이(國府臺) 병원의 경우, 당시 환자기록 8000여건 가운데 학살을 한 죄의식에 떨고 있다고 기록된 것은 단 2건이었다(노사 마사아키, <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참조)

"폴란드의 점령정책은 나치스의 인종주의에 따라 가장 가혹했다. 히틀러는 이미 1939년 8월에 '폴란드의 말살'을 점령 목표로 천명한 바 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모든 역량'의 제거였다."

"1942년 1월에 '물리적인 최종해결책'이 베를린 근교에서 개최된 이른바 '반제회의'에서 결의되었고 그 사항은 극비에 부쳐졌다. 피점령국의 게토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은 동부 유럽의 절멸수용소로 이송되어 선별과 수탈절차를 거쳐 마침내 가스실로 내몰렸다. 나치스 친위대 이송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보고에 따르면 1944년까지 400만 명의 유태인이 살해되었고 200만 명이 다른 방식으로 제거됐다."



전자는 독일의 고교용 역사 교과서의 한 대목이고, 후자는 영국의 역사교과서의 한 대목이다. 같은 주제에 대해 두 교과서는 거의 시각차가 없다. 독일은 교과서를 만들 때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자문을 거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역사 교과서에 대한 검인정 시즌만 되면 늘 주변국인 한국, 북한, 중국, 대만과 마찰을 빚곤 한다. 일본은 2002년부터 사용된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97년 판에서는 '종군위안부'에 대해 모두 기술했던 기존의 7개 출판사 가운데 6개 사가 관련 내용을 삭제하거나 표현을 바꾸었다.


패전 직후 일본인의 반응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무벌화(無罰化)'이다. 전쟁 가담자도 피해자도 뭉뚱그려 벌하지 않는다는 의식이다. "이겨도 져도 어차피 전쟁은 비참한 것"이라는 식의 마음이다.

이 반응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구별 자체가 무의미해 진다. 결과적으로 일본도 전쟁의 피해자로 둔갑한다. 여기에다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의 피폭을 받은 역사상 최고의 전쟁 피해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둘째는 '바꿔치기'에 의한 물질주의이다.

전쟁에 의한 마음의 상처를 유물론적 가치관으로 덮어씌우고, 물량에서 진 것이니까 경제부흥, 공업의 재건, 미국의 경제력을 따라잡는 것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쟁에 대한 반성보다는 물질주의와 경제 우선주의로 극복하고자 하는 편협한 역사 인식이 일본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런 일본인의 집단적 정서와 왜곡된 역사 인식은 유사법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유사법제와 자위대로 중무장하고도 여전히 일본은 자신들이 '보통국가'라고 강변한다.

패전 후 일본인의 반응, '무벌화'(無罰化)와 바꿔치기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기간 중 일본 의회는 유사법안 3개를 통과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 여당은 6월 10일 자위대 병력과 수송기 등을 이라크에 파견해 미군과 영국군 활동을 지원하도록 하는 특별법 제정에까지 나섰다.

일본 의회의 이런 법 제정은 왜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일본헌법 제9조에는 일본의 무력행사를 금지한다. 그래서 흔히 일본 헌법을 '평화 헌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일본이 현재 사실상 군대인 자위대를 보유하고 있고, 군대가 아니라서 군사력 통계에서는 공식화시킬 수 없지만 한국이나 북한보다 앞선 세계 5위 내지 6위에 들 정도의 군사강국이 됐다.

그리고 군사비 지출 면에서는 이미 세계 2위를 기록한다. 이렇게 본다면 유사법제의 통과는 JP(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말마따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일본의 현행 헌법은 1947년 만든 것이다. 일본은 그 이전까지 '주권은 천황에 있고 국민은 통치받는 신민(臣民)'으로 규정된 '대일본제국헌법', 이른바 메이지(明治) 헌법 체제였다. 이 헌법으로 일본은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현재의 일본 헌법을 '맥아더 헌법'이라고 한다. 전후 일본에 대한 점령군 총사령부의 대표이던, 한국에 있어서는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인 맥아더가 사실상 헌법 제정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당시 맥아더가 제시한 3원칙은 (1)천황은 국가의 우두머리이다. (2)국가의 주권적 권리로서의 전쟁을 폐기한다. 일본은 자체방위와 보호를 현재 세계를 이끌어 가는 숭고한 이념에 위탁한다. (3)일본의 봉건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 헌법의 전문(前文)에는 "일본 국민은 정부의 행위에 의해 다시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결의하고‥"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특히 제9조는 '전쟁의 포기, 전력 및 교전권 부인'을 규정한다.

제9조 제1항은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한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원히 포기한다"고 했고, 제2항은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은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 교전권도 시인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런 일본이 사실상 교전권을 시인하는 유사법제를 제정했고, 이로써 일본의 '평화헌법'은 전쟁도 불사하는 '전쟁헌법'으로 가는 길을 열어 두게 된 것이다.

역시 JP의 말대로 일본의 무장 강화에는 한국과 북한이 일정한 빌미를 제공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일본의 야심과 냉전 체제, 그리고 현재의 신보수주의 체제가 근본적이다.

미국은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같은 해 7월 8일 경찰예비대의 설치와 해상보안청원의 증원을 지시했다. 이에 일본은 1950년 8월 15일 경찰예비대 설치령 공포, 인원모집, 보유함정 증강 등의 절차를 거쳐 1954년 7월 1일 자위대법과 방위청설치법에 따라 자위대를 탄생시켰다.

이처럼 일본의 재군비는 6·25 전쟁과 함께 시작되고 6·25 전쟁의 추이를 좇아 확대되다가 미일안전보장조약에 의해서 그 방향이 명확해졌다.

유사법제 :
무력공격사태 대처법, 자위대법 개정안, 안전보장회의 설치법 개정안


무력공격사태 대처법은 외국의 공격을 받았을 경우 정부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 개념과 절차를 담고 있다. 예컨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포착할 경우 먼저 이를 '공격예측사태'로 판단하고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대책본부를 설치하게 된다.

이어 공영방송 NHK와 민간방송국에 무력공격의 위험성을 알리는 대국민 경고방송을 요구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돼 주민 피난조치를 마련한다는 식이다.

개정 자위대법은 유사시 원활한 자위대 활동을 위해 민간인의 협력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자위대는 총리의 출동 명령 없이도 방위청 장관 명령만으로 민간 소유 토지에 진지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개정 안전보장회의 설치법은 자위대, 방위청, 경찰청, 외무성 등이 참여하는 전문위원회를 안전보장회의에 설치해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모든 내용으로 비추어 볼 때 전쟁에 대한 예비 또는 준비인 것이다. 물론 일본은 방어의 경우만을 상정한다.

사실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주권 국가라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도 일본이 말하는 보통국가가 아닌 우리가 말하는 보통 국가라면 이런 법 제정에 대해서 염려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일본은 앞서 우려했던 바와 같이 반성할 줄 모르기 때문이고, 평화를 지향하는 헌법 체제가 존속 중임에도 스스로 헌법 규정을 무시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있기 때문이며, 유사법제 자체가 평화를 파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한 요소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비상시에 대비한 법률들은 있다. '적의 침투, 도발, 그 위협에 있어서 국가방위요소를 통합운용하기 위한 통합방위법'이 있고,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계엄법'이 있으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하에서 군 작전수행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토지, 물자와 시설 또는 권리의 징발과 그 보상에 관하여 규정한 징발법'이 있다.

단적으로 한국의 유사법제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비교적 상세히 위기상황을 규정하고 있는 반면, 일본의 유사법제는 '무력공격 예측사태'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그 범위를 흐리고 있다. 법은 명확성을 결여했을 때 훨씬 위험하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무력공격사태대처법을 가장 우려한다. 이 법은 위기상황에 대한 정의와 유사법제의 발동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위기상황의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법에 따르면 '공격을 받을 명백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총리가 민간 물자 징발과 기본권 제한 등 전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공격을 받을 명백한 위험'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장치가 없는 한, 이 조항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를 배제할 수 없다. 공격을 받기 전이라도 공격의 위험이 있으면 전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선제공격이라도 가능하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의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군국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일본 사회 우경화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유사법제

유사법제가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유사법제는 일본사회의 급격한 우경화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1954년 7월 방위청을 설립하고, 1976년 11월 방위비 GNP 1%내 결정, 1991년 4월 자위대 창설 이래 최초의 해외파견, 1992년 4월 유엔평화유지활동협력법 제정, 1997년 9월 미일 신방위협력, 1999년 5월 주변사태법 제정, 1999년 일본의 대표적 우익정치가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에 당선, 1999년 7월 일장기인 히노마루와 천황의 찬가인 기미가요의 법제화 및 의회에 헌법조사회 설치, 2001년 10월 테러특별대책조치법 제정, 2003년 6월 유사법제 3법안 의회 통과, 2003년 6월 이라크부흥특별조치법(안) 제정 계획 등의 길을 걷고 있다.

a 최재천 논설위원

최재천 논설위원

여기서 일본사회는 특히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사법제가 법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일본 사회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이 법들은 우경화로 가는 연장선상에서 일종의 중간 기착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 사회의 극단적인 우경화 움직임은 일부 일본 사회 내부와 한국 등 주변국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시일 내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는 헌법 개정으로 이어질 터인데, 어찌 '실용주의'와 '미래를 향한 동반자'라는 명분만으로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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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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