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을 맡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아이들이 자습을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내게로 다가오더니 멈칫멈칫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이런 아이를 보면서.
"왜 무얼 이야기하고 싶은가 본데? 얘기 해봐."
했더니 용기를 내어서 책상 앞에 서면서.
"선생님 자는 지금 다 자란 것이에요? 아니면 아직 어린 아이인가요?"
하는 모습을 보니 제법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럴 때 교사가 같이 심각해지면 아이에게 역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서 농담 비슷하게 아이의 생각을 물어 보았다.
"글쎄? 내가 보기엔 다 자란 것 같은데? 아직 덜 자랐나? 하긴 아직 5학년이니깐 어린이이지? 그러면 덜 자란 것이 맞나 본데? 넌 어쩌니?"
이 말에 심각했던 아이도 빙그레 웃으면서.
"그래요. 전 지금 초등학생이니까 아직 어린이지만, 이제 집안 일도 돕고 함께 의논하는데 끼이고 싶어서 다 자랐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집에서는 이게 잘 안돼요. 네가 뭘 잘 못했을 때는 '네가 얘기냐? 다 큰 녀석이 그게 뭐 하는 짓이냐?'하고 어른인 것처럼 얘기하다가도 집안 일에 의견을 내고 끼어 들면 여지없이 '쪼그만 것이 어딜 끼려고 그래. 넌 가서 공부나 해. 어른들 하는 일에 꼽사리 끼려고 하지 말고, 어서!'하고 내쫓아 버리거든요. 그럼 저는 다 자란 것이에요. 아직 얘기예요?"
이 말을 들은 나는 웃으면서.
"그래 그럼 우리 이 시간에 한 번 조사해보기로 하자. 마침 사회 시간이잖아?"
하고 사회 시간을 빌어서 이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였다.
"우선 자신이 경수 이야기처럼 아직 다 자란 것인지 어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 나는 다 자랐다고 생각한 사람, 나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 사람으로 나누어서 손을 들어보자."
하고 조사를 해봤더니, 역시 자신이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 사람보다는 다 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2/3 이상이 자신의 위치가 어딘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어떨 때에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얘기 해보자."
하고 의견을 들어보니 대부분이 앞의 경수와 같이 부모가 어느 쪽인지 분명하게 해주지 않고 왔다갔다한 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부모들이 자기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다 자란 녀석'이 되었다가 '어린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가 자신들의 잘 못을 꾸짖거나, 공부를 안 한다고 나무랄 때처럼 자신들이 꾸지람을 듣는 경우에는 '다 자란 녀석'이 되고, 반대로 집안 일을 의논하거나 어른들이 하는 놀이 같은 일에 자기들도 끼어 들고 싶은데 끼어주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쪼그만 게 어딜 끼려고' 하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 전체적인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할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경우를 당하면서 자기 자신의 위치에 대한 정체성을 갖지 못하게 된다. 자기가 다 자란 것인지, 아직 조그만 것인지를 판단이 되지 않고, 거기에 따라 어찌해야 되는 것인지 기준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한 아이들은 자기가 해야할 바를 정확히 정하지 못한다. 자기를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아직 어리니까 함부로 잘 못을 저질러도 용서가 되는 어린이가 되는 것인지를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도 어떤 때는 어린애 같은 짓을 하다가 어떤 때는 어른들이 못할 말을 하기도 하는 등 헷갈리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럴 때에 바람직한 것은 조금이라도 빨리 확실하게 다 '자란 녀석'으로 인정을 하고 공부나 행동이나 자기 자신이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도록 분명하게 밝혀 주고 끼어 드는 일에도 어른처럼 함께 의논도 하고 의견도 내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럼으로 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고, 자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각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내 자녀가 아직도 다 큰 것인지, 아니면 아직 어린 것인지 몰라 헤매게 만들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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