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동원에 학부모 동의가 왜 필요해?

등록 2003.06.18 16:42수정 2003.06.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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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10시쯤, 전라북도 교육청 시청각실에는 '전주시내 고등학교 1학년 학부모 참여 연대' 소속 학부모 100여명이 교육감 면담을 요구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전라북도교육청 시청각실에서 대책을 논의하는 학부모들
전라북도교육청 시청각실에서 대책을 논의하는 학부모들최인
오는 10월 12일, 전북에서 개최되는 제84회 전국체전 개막행사 때 학생들이 동원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 학부모들이었다.

이들 학부모들은 전라북도 교육청이 전국체전 개막행사에 학생을 동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이를 강력히 거부한다는 결의문도 채택했다. 또 이같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등교 거부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전주 호남제일고 1학년에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학부모들이 이처럼 도교육청에 찾아와 교육감 면담을 요구하는 것은 행사마다 학생동원을 답습하는 교육청의 구태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다"며 "체전이 지역발전에 미치는 긍정적인 측면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교육현실을 외면한 일방적인 학생동원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전북사대부고 한 학부모는 "지금 고등학교 1학년만 돼도 밤 10시에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새벽 1시쯤 집에 돌아온 자녀가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또다시 새벽 6시반이면 등교를 위해 일어 나야하는 게 지금의 교육현실"이라며 교육당국이 교육환경을 이토록 힘들게 만들어 놓고서, 그같은 힘든 교육환경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학생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또다시 체전행사에 동원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교육당국을 강력히 성토했다.

학부모 설득에 나선 전라북도 교육청 체육보건교육과 양모 과장은 "아이들이 기계가 아닌 이상 교육을 통해서 성장한다"고 말하면서 "공부 10시간 한다고 해서 효과가 나타나는게 아니라, 이런 행사를 통해 감성과 지성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며, 마스 게임 등 체전 행사는 아이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 주는 교육적 효과도 크다고 강조했다.

또, 수업결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습시간을 최대한 줄였다며, 체육시간의 연장선상으로 봐달라면서‘교육적으로 문제를 풀자’고 당부했다.


학부모 동의는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도교육청의 행위는 모두 교육적인 것이고, 학부모들이 도교육청의 일방적 결정에 항의하는 것은 비교육적인 것인가?


한 학부모는 "교육적 효과도 좋고,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측면도 인정한다"면서 그러나 정작 학부모들의 동의 과정은 왜 생략했냐고 따지면서 "도교육청이 교육적 효과에 대해 그렇게 강조한다면, 이제라도 학부모들에게 찬반을 물어 봐서 그 결과에 따라 최종 입장을 정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교육청 관계자의 답변은 "이제는 학부모들의 동의를 구할 시간이 없다"였다. 또한 도교육청 양모 과장은 "이제 어떻게 대안을 모색하겠냐"며, "학부모들이 그냥 따라 달라"고 말했다.

그 많은 시간동안 전라북 도교육청은 뭐했나?

제84회 전국체전이 전주, 전북일원에서 열린다는 것은, 이미 재작년 천안 체전 때 결정됐던 사안이다.

전국체전이 개최지의 발전에 일정 정도 기여한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또 지역축제로 치러질 수 있도록 전북도민의 노력도 요구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 교육당국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아니, 그 동안에는‘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무시돼 왔던 일이 있다. 언제나 학생과 학부모는 실패한 교육정책의 희생자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또는 실험 대상이기도 했다.

교육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 교육의 주체라는 학생과 학부모는 거의 끼지 못했던 전례가 이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교육감실로 가는 문은 굳게 잠겨 있다
교육감실로 가는 문은 굳게 잠겨 있다최인
전주와 전북일원에서 오는 10월에 열리는 제84회 전국체전은 오늘로 114일이 남아, 도교육청은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고 치자, 그런데 오늘(18일)로써 114일이 남은 것이지, 체전에 학생을 동원하기 위해 학부모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시간이 전혀 없었다는 말은 맞지 않다.

천안체전이 끝난 직후부터 오늘까지 날을 한번 세어 보아라, 114일보다 훨씬 더 많은 날수가 그냥 지나갔다. 그렇다면 이제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그동안 전라북도 교육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부터 밝혀야 하는 게 일의 순서가 아닐까?

도교육청은 학생들의 수업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까지 치러졌던 전국체전 때, 다른 시도교육청은 6개월 전부터 연습을 시작했지만 전북은 시간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이제부터 연습을 시작하려 했다면서 학부모들의 양해를 구했다. 언뜻 듣기에는 무척 학생들을 배려한 것처럼 들린다.

사실 학부모 동의과정이 귀찮았던 게 아닌가?

도교육청은 사실이 그렇다고 솔직히 시인하고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교육당국은 학부모들이 학생동원을 거부하면서, 집단적으로 교육청에 찾아와 항의하는 것에 대해, 교육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도 있다.

또 초등학교 5, 6학년을 동원해서 행사를 치르라고 요구하는 이들 학부모들의 주장도 이기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아예 처음부터 학부모나 학생 동의과정을 생략한 전라북도 교육청의 교육행정 편의주의와 권위주의에 있다.

이제까지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다른 얘기하지 말고, 지역발전과 교육적 효과를 위해 학생동원 계획에 순순히 응하라는 식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도교육청이 학부모들을 설득해서 무사히 행사를 치르든, 아니면 학부모들을 끝내 설득하지 못해 차질을 빚든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첫째, 도교육청은 행사에 차질을 빚더라도 학부모 탓을 하면 안 된다. 먼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학부모들을 설득하지 못한 책임을 먼저 탓해야 한다. 둘째, 학부모를 설득해서 무사히 연습이 시작된다 해도 이번 일을 거울삼아 다시는 이같은 비교육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관료들이 먼저 의식을 전환해야 한다.

문제가 터졌을 때서야 교육적인 효과가 어떻고, 시간이 부족하고 하는 변명으로 일관하는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인권, 기본권이 침해되는데도, 교사들의 편의와 교육행정의 효율만 따져 덜컥 시행해놓고, 또는 교사들 자기들끼리만 투표로 결정해 놓고, 교육행정의 효율을 위해서 NEIS를 시행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지금의 현상과 너무나 똑같다.

교육주체는 교육청·관료·학생 중 누굴까

노무현 참여정부는 교사회와 학부모회, 학생회까지 법제화한다는 교육개혁안을 내놨다.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개혁안만 제시됐을 뿐, 언제 시행될 수 있을지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게 좋을 듯싶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렇게 교육적 효과가 좋다면, 진작에 학부모를 설득하는 성의를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솔직한 반성은 없고‘이제는 시간이 없다’는 게 도교육청의 입장이다.

전교조전북지부는 지난 6월 5일 도교육청에 교육외적 활동에 학생들이 동원되는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하며, 전국체전 개·폐회식 행사에 참가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보호자 동의를 받을 것을 촉구하기도 했었다.

학부모들이 집단적(?)으로 교육청에 찾아온 것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기에 앞서 교육당국은 교육주체를 위한 진정한 교육행정 서비스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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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1988~2014)와 프레시안(2018~2021) 두군데 언론사에서 30여년 기자생활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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