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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햇살이 나른하게 따스하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이면 줄에 걸려 있는 오징어가 한들한들 흔들리며 말라갑니다. 잘 마르면 맛있는 안주도 되고, 반찬거리도 되고, 군것질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군침이 꿀꺽 넘어갑니다.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오징어를 쉽게 먹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오징어 다리 하나를 구경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오징어를 먹을 때 껍질 부분은 따로 챙겨두었다가 오징어껌이라며 두고두고 씹기도 했었죠.
오징어에 대한 가장 어릴 적 추억은 초등학교 2학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모내기를 하시던 아버지가 컬컬하신지 선이네 가게에 가서 막걸리 한 되를 받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아줌마, 아빠가 막걸리 한 되만 달래요."
"그려, 그런데 안주는 뭘로 드신다냐?"
"몰라요."
선이네 엄마는 막걸리만 받아 가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막걸리 한 되 값도 더 되는 것 같은 오징어 한 마리를 구워 주셨습니다. 오징어 냄새가 얼마나 좋았던지 그만 심부름하는 길에 오징어다리 하나를 슬쩍 잘라서 우물우물 씹으면서 부지런히 논으로 갔습니다.
"아빠, 선이네 엄마가 오징어도 한 마리 구워주셨어요."
"음, 그러냐? 그런데 다리가 하나 없다."
"예?"
시치미를 떼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뱃속에 있던 오징어 다리 하나가 올라오는 줄 알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아신 것일까?
아버지는 오징어 다리 하나로 막걸리를 다 드시고는 "옛다!"하시며 심부름 값으로 오징어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막걸리를 조금 따라주시며 "안주만 먹으면 심심하니 한잔 해라"하셨습니다. 그 씁쓰름하고 떨떠름한 막걸리의 맛은 그런 대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내고 청소년기가 되었을 때 쥐포라는 것이 등장해서 오징어의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오징어보다 값도 싸니 당연 중학생이었던 우리들에게는 큰 인기였습니다. 쥐포시장이 확대되면서 쥐포를 굽는 기술도 날로 달라져 갔습니다.
하교길에 쉽게 마주칠 수 있었던 리어카에서는 오징어, 쥐포, 땅콩 등을 팔았고, 그것은 좋은 군것질거리였습니다.
대학원 다닐 때 강릉으로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그런데 친구 중에는 그 맛있는 오징어를 입에도 대지 않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야, 너 오징어알레르기 있냐?"
"아니."
"그런데 왜 오징어를 입에도 안대냐? 사온 사람 무안하게."
"나 틀니다."
그렇게 늘 군것질거리로 각광을 받던 우리 시절의 오징어가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딱딱한 것을 많이 씹어야 두뇌에 좋다는데 요즘 우리 아이들은 너무 부드러운 것들만 먹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마른 오징어 하나 구워 안면근육운동이나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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