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 보관 창고오창석
17세 때 목공장(木工匠)의 도제가 되어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뼈빠지게 일을 해도 먹고살기 힘들던 때라 그래도 농사일보다 벌이가 괜찮다는 목공일을 배우기 위해 돼지 한 마리 판돈을 바치고 견습공으로 시작했는데, 평생의 직업이 돼버렸다. 그동안 시속이 변하여 호마이카며 티크장이 온통 가구의 자리를 점령해버리자 그는 직업을 잃고 다시 어린 시절처럼 굶주리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한 때는 여덟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바둑판을 만들어 들고 서울로 올라가 길거리에서 팔아보기도 했지만 차비만 축 내고 돌아왔다고 한다.
“호마이카나 티크장을 맨들라먼 내가 더 잘 맨들지, 벌이도 더 낫고, 하지만 어찌 그런 짓을 해. 흉내 내기도 싫어. 뻔들뻔들 날림으로 하는 일에는 도저히 마음이 내키질 않아.”
끈질긴 고집으로 살아온 한 평생. 96년 상공부는 그에게 조선가구 제작분야에서 국내 단 한 명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명장’칭호를 수여했고, 2001년에는 국가지정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가 되었다.
조선가구는 소탈하고 꾸밈새가 없다. 호사스러움을 경계했던 조선 선비들의 철학을 반영하듯 지나친 광택이나 색채를 피해 동백기름, 잣기름 등만을 먹여 나무 결을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 수직, 수평으로 달리는 선들은 모서리를 시원스럽게 휘감아 돌고, 그 선들이 경계를 이룬 황금비의 면 분할은 몬드리안의 그림에 비길 바 아니다.
이음매엔 일체의 쇠못을 쓰지 않는다. 오직 짜 맞춤으로 판재와 기둥이 만나며, 못을 써야 할 자리엔 풀칠을 한 대못(대나무)이 들어가고 결국엔 흔적마저 자취를 감춘다. 금속 장식 역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음매의 꼭 필요한 자리에 견고함을 더하면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빛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