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텃밭에 씨앗을 뿌리며

<강바람 포토에세이>

등록 2003.06.26 07:15수정 2003.06.2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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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을 수확한 후에 갈아놓은 밭에 무엇을 심을까 고민한 끝에 오일장에 나가 상추, 쑥갓. 치커리, 열무를 사왔습니다. 그리고 전부터 심으려고 두었던 검은콩이 저의 작은 텃밭에 심겨질 주인공들입니다.


주로 식전에 밭일을 하는 것이 좋은데 씨앗을 구하지 못해서 장에 나갔다 오느라 조금 늦어졌습니다. 장마철이라 비가 오고 나면 땅이 질어져 이삼일은 밭에 들어가질 못하니 비가 오기 전에 씨앗을 뿌려야 할 것 같아 오늘은 뙤약볕에서 일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니 당연히 모자를 쓰고 일을 하게 됩니다.

어때요? 꽃무늬가 들어간 제 모자가 제법 예쁘죠?

지난해에는 모자도 쓰지 않고 여기저기 다녔더니 보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너무 까맣다고 합니다. 너무 자주 그 소리를 들으니 별로 좋지 않아 올해는 대책을 세우느라고 모자를 하나 마련했는데 기왕 마련할 것 제대로 마련하자 하여 거금 5천원을 들여 장날에 산 것입니다.

지난 봄 고사리를 꺾으러 다닐 때에도 요긴하게 사용했고, 간혹 시간을 놓쳐 낮에 밭에 나가야 할 때 사용을 합니다. 물론 외출용 모자는 따로 있지만 밭에서 일할 때는 그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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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고른 후에 상추와 열무, 치커리, 쑥갓을 솔솔 뿌려주고는 손으로 살짝 흙을 덮어줍니다. 이제 한 차례 장맛비가 지나가면 파릇파릇 새순을 낼 것이고, 가을까지는 솎아먹기 바쁠 것입니다.


상추와 열무, 치커리, 쑥갓같이 씨앗이 작은 것들은 훌훌 뿌려주면 되니 밭만 골라놓으면 씨앗뿌리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일을 쉽게 하려면 콩도 훌훌 뿌려주고 밟아주면 되겠지만 검은콩은 가지런히 심기로 했습니다. 흙은 밟으면서, 흙을 만지면서 느끼는 감흥들이 있으니 조금 천천히 즐기면서 일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밭에 들어갈 때 맨발과 맨손이 좋습니다. 발로 느껴지는 흙의 포근함, 손으로 흙을 만지고 검질을 하다보면 살아있는 흙의 느낌이 온 몸에 전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딱딱한 땅도 비가 오고 나면 어찌 그리 고슬고슬해 지는지 신기하고, 자신 안에 품음으로 새 생명을 잉태시키는 모습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끝까지 세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 둘, 셋‥"하며 콩을 세면서 가지런히 심습니다. 그러다가 100단위가 넘어가면 세기를 포기합니다.

작은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우고 자라 많게는 씨앗 하나에서 500개까지도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참으로 신비한 자연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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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텃밭이지만 구부리고 앉아서 하는 일이니 힘이 들고, 뜨거운 햇살에 땀이 줄줄 흐릅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콩을 심다가 이제는 무릎을 꿇고 콩을 심습니다. 흙과 내가 더욱 더 가까워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씨앗을 심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정도의 텃밭이야 무릎을 굽히는 선에서 끝나지만 종일 일할 때에는 아예 땅에 누워버리기도 하고, 채소들과 눈높이를 맞출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몸이 흙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밀착이 되면 될수록 자연과 하나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의 고리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흙의 기운을 온 몸에 모시게 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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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고 심을 때마다 느끼는 생각이 있습니다.

씨앗은 아주 작습니다. 그러나 그 씨앗이 생명을 품고 있는 한 흙에 뿌려지기만 하면 반드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은 일들은 모두가 생명을 간직한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뿌려놓기만 하면 반드시 열매가 맺혀진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물론 뿌린 당사자가 거두지 않아도 누군가 거두게 될 것이니 희망이라든지 아름다운 씨앗을 심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밭에 뿌려진 씨앗들이 새순을 내고 상에 올려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우리의 밥상에만 올라오지 않을 것입니다. 교인들과 공동식사를 할 때에도 올라갈 것이며, 지인들의 식탁에도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나 혼자 다 먹겠다고 농사짓는 농부는 없습니다. 농심(農心)의 깊은 뜻이 온 사회에 고루고루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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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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