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니구요"

시사자키 안동일의 환향, 개혁정당 대변인으로

등록 2003.06.27 11:01수정 2003.06.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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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자키 안동일씨가 한국으로 떠났다. 케네디 공항으로 가는 차안으로 거는 전화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다가 보충설명이 필요해서 전화를 걸었다가 울컥 - 안막이 흐려오고 - 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빨간 눈으로 기사를 정리한다.

930 AM Korea 시절부터 안씨하고 같이 일했던 기자는 2000년 IT비지니스를 한답시고 방송국을 떠난 이래 그와는 한 3년 떨어져 있었지만,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었나 보다.

틀린 걸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기자의 성격에도 어색한 웃음이 고작이었던 안씨는 그동안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확보했었다. 그런 안씨가 다시 험한 길을 떠났다. 보는 눈에 따라서는 욱일승천의 미래가 보장된 길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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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시사자키로 통했던 안동일은 라디오서울과 KTV에서 시사해설자와 뉴스앵커로 일해왔다.

개혁정당의 대변인으로 환향하게 된 시사자키 안동일씨를 상대로 인터뷰란 것을 했다.

6월 24일 한국으로 떠나는 날을 하루 앞에 두고, 플러싱 한아름 수퍼 건너편 새로 생긴 한옥 설렁탕집 널찍한 테이블에 자유롭게 앉아서 설렁탕 국물 후루룩 마시면서 인터뷰란 걸 했다.

기자가 항상 시사자키를 안 위원이라고 부르는 데 비해서, 정작 안 위원은 기자를 항상 "형님"으로 불렀다. 항상 웃는 얼굴. 심각한 일도 없고 곤란한 일도 없는 천하태평한 성격의 안 위원이었다. 그런 안 위원이 수없이 많은 사람을 인터뷰해서 인터뷰 전문 방송위원이란 별명이라도 붙을 정도인 사람이, 정작 인터뷰를 당하는(?) 입장이 됐다.

기자가 안씨를 주목한 것이 십 수년전이다. 김대중, 재야인사였던 DJ가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안동일 기자. 당시 세계일보 기자로, 서울취재를 끝내고 뉴욕행 비행 안에서 소감을 읽고서 빛나는 무엇인가를 보았었다.

그때 세계일보가 맨해튼에 있던 때였다. 기자 자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마침 세계일보의 독자관리 프로그램과 광고회계관리 프로그램을 맡아 개발 중일 때라, 담당간부를 통해서 안동일 기자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바로 안 기자한테 전화를 했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플러싱에 있었던 조선옥 - 현 체육회 이병현 부회장이 경영하던, 그때만 해도 뉴욕 한인사회 고급식당이었던 조선옥에서 저녁 7시에 만나기로 약속이 됐었다. 그런데 정작 7시가 지나고 8시가 됐는데도 안 기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불발이 되었던 그 만남은 십여년이 지난 1997년 930 AM Korea 개국 때에야 사정을 알게 됐다. 930 AM Korea, 현 라디오서울의 전신인 라디오 방송국 개국을 앞두고 방송요원들이 모였는데, 스포츠 머리 비슷한 헤어스타일에 제법 훤한 얼굴의 청장년(?)이 한 명 있는데, 이름으로 계산해보니 - 사람들하고 이름들이 모두 매치된 상황에서, 남은 이름하고 얼굴이 그 얼굴에 그 이름이었으니 안동일 일시 분명했다. 반갑게 만났다. 그리고 조선옥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것이다.

얼어붙은 정국상황에서 비록 미국뉴욕이라고 해도 하도 프락치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을 때라, 회사사람한테서 소개받았다고는 해도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이라 어째 선뜻 맘이 내키지 않았었노라는 얘기를 했다. 그러나 만날 약속 자체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0여년 만에 같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동료로 만난 것이다. 그런 안씨이었다.

"금배지 그런 것 땜에 가는 것은 천만 아닙니다. 그런 거 쓰지 마세요"

아마 공천 비슷한 것 그런 것 내락을 받은 나머지겠지하는 생각에, 또 들은 바도 있어서, 지난 대선 막바지에 이상한 행보를 보인 김모 의원 지역구 쪽에 출마할 거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더니, 손을 홰홰 내젓는다.

'그저 한국정치에 좋은 밀알이 되기 위해서' 귀국한단다. 국회의원을 목표로 귀국하는 게 아니라지만 그러나 결국 한국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 가는 길이니, 한국가면 미국대사관 찾아가서 시민권도 포기할 거라고 한다.

그는 미국시민이기 때문이다. 부인인 나오미 변호사도 귀국하지만 이번에 같이 가는 건 아니다. 뒷정리를 하고 가서 합류할 거고, 더구나 수임사건을 말끔히 마무리짓고 가는 문제도 있고, 또 서울에 간다고 해도 부인 입장에서는 문화의 뿌리가 미국이니 미국을 아주 떠날 수는 없다.

더욱은 한국이란 나라가 법률시장을 개방한 나라가 아니어서 서울에서 정규변호사 자격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그래서 부인 나오미 안 여사는 서울에 있는 "일신"이라는 법무법인에서 법률고문 비슷한 직책을 맡아 일하게 돼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 상무차관보로 있었던 정동수씨가 있는 일신에서 일하게 된 것은 조지타운대학 선·후배 관계라 비교적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어쨌든 부인이 뒤따라가는 건 시간이 걸릴 일인데도 벌써부터 서울 간다는 소문 때문에 사건수임건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울상이다.

"강조 좀 해주세요" 안씨의 부탁인즉슨, "일단 사건을 수임받게 되면, 정치야 남편이 하지 나오미 부인이 하는 게 아닌 까닭에 법률서비스에 소홀함이 없을 거"라는 얘기다. 대변인이래야 급료가 충분히 지급되는 자리도 아닐거고, 가면 당장에 경제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요즘 흔한 얘기로 이 동네도 소위 "연착륙"이 필요한 것이다.

6월 23일, '안동일 후원의 밤'이 있었다. 아스토리아 월드 매너에서 열렸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후원회는 200명 정도가 와서 안동일 예비정치인의 장도를 격려했고, 후원금만도 2만4천불 정도가 걷혔다.

몇몇 굵직한 독지가들의 큰 손 덕분이었다고는 하지만 하룻밤 모금으로 작은 액수는 아니고, 다만 안씨의 친구들이 어려운 중에도 20불짜리 다섯장을 봉투에 넣어 건네준 돈이 있어서 안동일씨로서는 안타까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 돈은 정말 돌려주고 싶었지만, 그도 못할 일인 것이, 차라리 큰돈이라면 몰라도 적은 액수의 돈을 돌려줬다가는 오히려 섭섭해 할 것 같아서, 그냥 고마운 마음으로 간직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나 후원회래야, 평소 안동일씨를 지켜봐 왔던 한인동포들 빼놓고는 참석자들이 대부분 라디오서울 동료들이어서 언뜻 보기에는 라디오서울 직원들 송별회로 착각하기 쉬웠다고….

"권영대 사장님이 그래도 여러가지로 도와줬다"는 얘기도 했다.

"안 위원은 이제 한국 가면 '위원'이 '의원'으로만 바뀌면 되겠구만" 하는 기자 말에 "그 말이 그게 꼭 권사장님 말"이란 얘기를 했다.

25일 오후 1시에 케네디를 이륙하는 대한항공을 타고 떠난 안동일씨는 서울 시간으로 26일 오후 5시, 한국에 도착한다. 미국에, 뉴욕에 남아 있어보니 백날 같은 신세지, 별 수 있어? 그러니 잘 갔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안동일씨를 떠나 보낸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그렇지만 그러나 꼭 그럴까? 후원회 때 낭독한 개혁국민정당의 김원웅 대표의 메시지도 있고, 유시민, 윤선희, 김영대 등 아는 이름도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 생경한 이름의 인물들이 드나드는 "하꼬방" 정당 사무실에서 "대변인"을 하는 일이 그리 쉬울까, 주제넘은 걱정을 하게 된다.

개혁도 좋고 신선도 좋지만, 그놈의 개혁,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기합 '팍'주고 올라섰어야지, 지금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는 걱정이 앞을 흐린다.

새벽 5시 골프 재롱(?)으로 시작해서 가끔씩 까십 메뉴판에 올라오는 의미없는 실수들이 개혁을 개혁으로 끌고가는 힘을 잃게 하는 오늘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이는 것이다. 그런 판국에 여의도 작은 사무실에 책상 몇 개 놔두고 하는 개혁당 장사(?)가 과연 잘 될까? 어째 불안 불안하기만 하다.

어쨌든 6월 16일 오후 3시에 열렸던 개혁당 제28차 전국집행위원회는 제26차 회의에서 대변인으로 추천된 안동일씨를 정식으로 대변인에 임명했음을 공식 확인하고 있다. 기왕 가는 거 가서 금배지나 하나 달고 그래라, 하는 속물희망이 있다.

"다방엘 가면 코피값, 끼니때가 되면 자장면 값을 걱정했던 김영삼 야당시절 룸펜정치꾼들 모습하고야 같겠어?"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치판이란 데가 원래 그런데고 그 동네서 잘나가는 사람들 속성이란 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한 짐작이 가고 하는 마당에는 왠지 썰렁한 느낌이 온다. 그래도 "개혁"인데 그럴리야 없겠지, 자위를 하면서도.

그러나 안동일의 미래는 결국 안동일에게 달려있다.

<해빙>의 작가로서의 안동일, 긴급조치 위반 운동권 학생 경력의 안동일, 그리고 속빈 강정일 망정의 이름이지만 미주언론인 출신이라는 그럴 듯한 접두어를 달고 다니는 안동일, (물론 안동일, 속빈 강정이란 얘기는 천만 아니다) - 거기에 페얼리 딕킨슨 대학 객원교수 안동일, 한국사람들 사이에 인정받을 만큼은 가짓수가 있는 셈이니, 이제 안동일 개인의 괴력만 더한다면 안동일의 입지는 확보될 것이다.

이런 속성(attributes)이 힘을 발휘하는 동안, 위력을 잃기 전에 갑판으로 진출해서 떡 버티고 서야 할 것이다. 이같은 속성들이 빛을 바래기 전에, 마치 시동모터를 돌리는 것처럼 정규엔진에 불을 붙여야 할 것이다.

"반대보다는..., 걱정은 합니다. 주로 경제적인 문제지만...," 한국진출을 보는 나오미 여사 - 남편이 뜻을 펴고 싶다는데, 도와야되지 않겠느냐는 편이지만,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외에는 답이 있을 수 없는 미국식 사고의 법률전문가인지라, 당장 경제적인 문제가 짐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더란다.

글쎄 과거처럼, 계보 보수들이 있어서 거둬먹이는 재주를 부리는 세상도 아니겠고, 모아둔 돈 따로 없는 바에야 당연한 걱정이겠다.

부인은 고사하고 안동일 자신, 공항에 가는 차안에서 기자하고 나눈 보충인터뷰에서도 걱정은 바로 그거였다. 그러니 뭘까? 말하자면 개혁, 그거 쉬운 거 아니로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기왕 떠난 안동일 - 그래도 그게 어디냐? 김원웅이하고 유시민이, 그렇게 두 사람만 모이면 의원총회가 되는 마이크로 정당이지만 그래도 전국정당인데, 전국정당의 대변인이 어디냐? 가서 박이 터지건 코피가 나건, 싸워서 이겨라.

개혁에도 이기고, 국회의원도 되고, 바틈라인, 여의도 바닥에서 들러리로 전락하는 신세는 되지 말라. 40만인지 45만인지 알 수 없으되, 적어도 뉴욕뉴저지 동포들이 지켜보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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