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로 부모님께 효도한다?

삼가 학부모님께 올립니다

등록 2003.06.27 19:18수정 2003.06.28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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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오늘 몇 모둠 발표지? 발표 시작하자! "
" 저어‥ 다 못 했습니다. 수용이랑 선재가 맡은 걸 안 해왔어요. 죄송해요. 다음 시간에‥."

결국 이 모둠은 발표 수업을 하지 못 했습니다. 수용이(가명)와 선재(가명)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이유로 모둠활동을 빠졌는데, 다른 모둠원까지도 버거웠던지 그냥 안 했다고 합니다. (차라리 몸으로 때우자식)

일터에서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하니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는 물론 수업시간에 졸거나 딴짓을 하는 것은 당연지사겠습니다. 이렇게 한 달을 일하고 받는 돈은 20만원 조금 넘는다고 합니다. 녀석들은 아예 몇 시간 일하는 지 조차도 모르고, 그저 그렇게 하고나면 받는 그 돈이 아주 좋은 듯 했습니다.

작년 졸업생들 중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동대문에서 새벽까지 음식 나르는 일을 하느라 졸린 눈으로 수업시간에 헤매던 녀석이 떠올라 혹시 집안 형편상 공부보다 경제적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가 싶어 쉬는 시간에 녀석들에게 물었습니다.

질문에 답한 수용이의 말은 이렇습니다.

" 학기 시작때부터 모둠활동을 겨우겨우 해내는 걸 보고 잘하려니 했는데, 아예 참여를 하지 않은 이유가 뭐니? "
" 아르바이트 갔습니다. 학원 간 다음에 바로 아르바이트 하러 갔어요. "

하는 것입니다. 그 중 한 녀석은 학원도 다니지 않는다고 하니, 그 동안 뭘 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녀석들은 학교에서 모둠 친구들과 해놓고 가야할 일을 하지 않고 갔으므로 제게 야단을 맞는 것에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녀석들의 모둠은 5모둠 중 가장 협동심이 부족하고 탐구력도 부족한 지라, 과제물도 고려해서 내왔습니다. 이번엔 발표 순서가 맨 처음이라서 시간 전부터 단단히 다짐을 해놓았는데 그만 이 두 녀석들은 오후에 남아 거들지 않고 그냥 가버린 것입니다.


부모님도 아시냐고 했더니 아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이렇게 학교 공부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가는 것을 아시냐고. 그랬더니 입을 다물고 답이 없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묵비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선택적 귀에 선택적 입을 가졌지요. 속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부여잡고 계속 물어도 녀석은 종치기만 기다리는지 바깥만 쳐다보았지요. 다음 수업 종이 쳐 다음 쉬는 시간에 오라고 했습니다. 녀석은 그 다음 쉬는 시간에도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입을 떼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모님께 전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섣불리 앞서 말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더니, 수용이 엄마가 받았습니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말하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저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길래, 자립심을 기르는데 좋은 것 같아 선뜻 허락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하나 뿐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학교 수업을 제대로 안 듣는 것을 몰랐습니다. 전 잘 듣고 있는 줄 알았지요. 선생님이 담임선생님께 말씀 좀 잘해주세요. 그리고 이젠 못 하게 하겠습니다. "

빗 소리에 어머니의 난처한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담임도 아닌 교과담임이 전화를 했으니 얼마나 놀라고 속상하셨겠습니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부모님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그저 잘하려니 믿고만 있는 실정이니 실망감이 더 크시지 않았을까요.

녀석들 돌려보내고 녀석이 오늘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말을 들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의 작은 생각은 이렇습니다.

자녀가 아르바이트를 통해 자립심을 기르고 노동의 참 맛은 물론 돈을 잘 벌어 잘 쓰는 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생활이 충실한 가운데 이뤄지면 더 좋으리라구요. 녀석의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다른 질문에 입을 꼭 다물었으면서도 이 대답에는 당당했습니다.

" 아르바이는 왜 하는건데? 꼭 해야할 이유라도 있니? "
" 부모님께 효도하려구요. "
" 부모님이 학교 공부는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갖다 드리면 좋아하실까? 내 생각엔 학교 공부를 해서 효도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
" ...... "

물론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병행해야한다면 따로 시간을 마련해서 공부를 함께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녀석의 집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댁에 계신 부모님께 삼가 말씀 올립니다.
학교에 자녀를 보내놓고 잘 하고 있으려니 하지 마시고, 시간을 내셔서 자녀와 학교에서의 일을 이야기해 보십시오. 아이가 오늘 어떤 일을 가장 재미나게, 가장 힘들게, 가장 슬프게 겪었는지, 행여 종아리라도 맞아 핏줄이 서있진 않은 지, 어떤 이유로 종아리를 맞았는지 말입니다. 하루의 일과의 절반 이상을 학교에서 보내는 아이들이지만 일상의 변화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참 성장기에 아이들은 할 말을 내뱉고 살지 못 합니다. 대부분 귀찮아하고 말문을 닫아버립니다. 이러다 아이들은 실어증에 걸릴 지도 모릅니다. 물론 친구들끼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많이 합니다. 하지만 진정 해야할 말들은 조심스럽기때문에 말하지 않지요. 그건 연습이 안 되어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허물없는 부모님과의 사이에서 말문이 트인다면 염려하는 발표력도 좋을리라고 봅니다. 어떤 이야기든 해보라고 해도 아무 이야기도 못 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친구들과 떠드는 이야기라도 해보라해도 말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경제적 개념을 습득하고 사회를 체험하는 것도 좋지만, 이젠 부모님들도 자녀를 잘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좀 더 관심을 기울여주십시오. 된다면 자녀의 일터도 잘 알아두시고, 전화를 해서 확인도 해주시면 더 당당하게 일하지 않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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