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비들의 세계를 우째 알것노"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90>제비집

등록 2003.06.30 17:16수정 2003.06.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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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하동마을에서 찍은 제비집
경주 하동마을에서 찍은 제비집이종찬
"올개(올해)는 제비가 우리집에 집을 몇 개나 지을란가 잘 모르것다."
"와? 니도 흥부처럼 되고 싶나?"
"그기 아이고 작년에는 제비가 우리집에 집을 세 개나 지었다 아이가. 그래가꼬 쌀이 몇 가마이 더 났다 카더라."
"누가 그라더노?"
"마을 어르신들이 그라더라. 제비는 재수로 몰고 온다꼬."


내가 태어나 이십대 중반까지 살았던 내 고향집은 우리 마을 한가운데 우뚝 서서 늘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근데 왜 하필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냐고? 내 고향집은 정남쪽으로 싸리대문이 나 있었고, 우리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떡 버티고 서 있었으니까.

게다가 고향집 앞에는 비음산에서 흘러내리는 차고 맑은 도랑물이 흐르고 있어서 집 앞이 확 틔어 있었다. 도랑 건너편은 모가 시퍼렇게 자라는 산수골이 사지를 펴고 드러누워 있었고, 앞산 너머 아득한 남쪽 하늘엔 천자봉 시루바위가 우뚝 서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내 고향집에는 유난히 많은 제비들이 날아들었다. 또 초가지붕 처마 아래에는 군데군데 제비집이 참 많았다. 어떤 해에는 제비 부부 다섯 쌍이 날아들어 다섯 개의 제비집을 지은 때도 있었다. 그 중 어떤 제비 부부는 제비집을 반쯤 짓다가 포기하기도 했다. 장소가 마땅찮았는지는 잘 몰라도.

"어? 저기 뭐꼬? 칼제비 아이가."
"퍼뜩 쫓아뿌라! 칼제비가 마을에 날아들모 재수 옴 오른다 카더라."
"근데 오늘따라 짱돌이 와 이래 하나도 안 비노(안 보이냐)?"
"누가 칼제비로 쫓아낸다꼬 몽땅 다 던지뿟는갑다."

당시 우리 마을에는 두 종류의 제비가 날아들었다. 흔히 우리들이 제비라고 부르는 목울대 주변이 빠알간 그 제비와 우리들이 칼제비라고 부르기도 했던 도둑 제비였다. 제비는 주로 우리 마을 초가집 처마 아래 집을 지었고, 도둑 제비는 앞산가새 곳곳에 돌부처처럼 서있는 바위 틈새에 집을 지었다.

도둑 제비는 진짜 제비보다 몸집이 조금 컸고 생김새도 조금 달랐다. 제비집의 형태도 삼태기 모양으로 짓는 제비집과는 달리 마치 털실로 짠 칼집처럼 그렇게 둥글고 길다랗게 지었다. 마치 도둑놈 소굴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 마을사람들이 그 제비를 칼제비 혹은 도둑 제비라고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비집을 짓는 재료와 만드는 과정은 꼭 같았다. 도둑 제비도 집을 지을 때는 논흙과 지푸라기를 한입 한입 물어다가 바위 틈새에 차곡차곡 붙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도둑 제비가 산수골 근처로 날아오면 재수가 나쁘다며 짱돌을 마구 집어던졌다. 그러다가 짱돌이 떨어진 논 주인한테 들켜 진종일 돌멩이를 주워내느라 혼땜을 하기도 했고.

"아부지!"
"와?"
"올개는 와 제비집 밑에 받침대로 안 만들어 줍니꺼?"
"와? 니도 제비똥이 떨어지는 기 파이드나(나쁘냐)?"
무슨 일이냐는 듯이 제비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무슨 일이냐는 듯이 제비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랬다. 아버지께서는 제비 부부가 막 제비집을 지으려고 초가지붕 처마 아래 흙을 물어다 붙히기 시작할 때면 그 아래 다 지어질 제비집보다 조금 더 큰 널판지를 받쳐 주었다. 이 널판지는 제비 새끼가 실수로 땅에 떨어지는 것도 막고, 제비 똥이 떨어지는 것도 막기 위해서였다.

"니 마루에 앉아가 뭘 그리 눈깔 빠지게 쳐다보고 있노?"
"쉿! 조용히 좀 해라. 지금 제비가 알을 품고 있다카이."
"오데?"
"저기~ 제비가 암탉맨치로 납작하게 엎드리가 있는기 안 보이나."

제비집을 다 짓고 나면 제비 어미는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제비집 속에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마침내 제비가 집을 잠시 비웠을 때 제비집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알록달록한 제비알이 대여섯 개 들어 있었다. 또 그때부터 제비 부부는 번갈아가며 알을 품었다.

제비는 정말 영리한 새였다. 제비 새끼들이 알에서 갓 태어나면 알 껍질을 갖다 버리는가 하면 부부가 쉴틈없이 모이를 물어 나르다가도 새끼들이 눈 똥을 부리로 콕 찍어 멀리 갖다 버리기도 했다. 또한 제비 새끼들은 집이 좁을 만큼 제법 몸집이 커지면 시도 때도 없이 꽁무니를 제비집 밖으로 내밀고 똥을 떨구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제비집 아래 받침대까지 만들어 주었는데도 부리가 노란 제비 새끼 한 마리가 마당에 떨어져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 제비 새끼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달아나려고 했다. 너무나 불쌍하고 가엾었다. 그래서 나는 마치 흥부처럼 그 제비 새끼의 다리에 헝겊을 감아 제비집 속에 다시 넣어주었다.

"내년에 니 억수로 큰 부자 되것다."
"와?"
"니가 제비 새끼로 구해줬으니까, 제비가 금돈 은돈 나오는 박씨 몇 개 물고 안 오것나."
"그런 거는 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아이가?"

근데 그 다음 날, 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 제비 새끼 한 마리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침에 볼 때 분명 여섯 마리였던 제비 새끼가 이상하게 다섯 마리 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비집 속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다리에 헝겊을 감은 그 제비 새끼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니 또 와 눈 빠지구로 제비집 속을 들여다 보고 있노. 부정 타구로."
"누가 제비 새끼 한 마리로 훔쳐 갔어예."
"훔쳐 간 기 아이라 아까 에미가 갖다 버렸다 아이가."
"와예?"
"내가 제비들의 세계로 우째 알것노."

그래. 결국 그 제비 새끼는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정성껏 치료를 해 준 보람도 없이. 그때부터 나는 제비 새끼들에게 가끔 파리를 잡아 먹이는 일도, 잠자리를 잡아주는 일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제비 새끼를 돕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이맘 때면 나는 제비 새끼들이 노오란 부리를 한껏 벌리고 경쟁이라도 하듯이 요란스럽게 지지배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근데 요즈음은 모가 시퍼렇게 자라는 들판 사이로 잠자리떼가 수없이 날아다니는데도 제비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대체 그 많던 제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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