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면, 그래도 나의 인생은 변함없을 것이다.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로 죽어갈 것이다." - 트로츠키
남북의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는 가슴 찡한 장면을 보며 얼마 전에 읽었던 손석춘(한겨레 신문 논설위원)의 <아름다운 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몇 장을 읽자 곧 빠져들어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단 이틀만에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을 접하면서 후회한 것은 왜 내가 진작 이 책을 읽지 않았는가 하는 자책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느낀 점은 내 삶의 이정표가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족, 민중 그리고 혁명이란 화두로….
주인공 이진선을 통해 저자 손석춘은 민족애와 해방을 뜨거운 가슴으로 목놓아 외친다. 소설 내내 뚝뚝 묻어나는 그의 민족사랑 속에서 나 또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본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소설 <아름다운 집> 역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일기 형식을 빌어 쓴 그러기에 더욱 흥미로운 소설이다.
일기의 주인공은 이진선이라는 사람으로 그는 격동의 시대인 20C초 우리나라 현대사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당시로는 보기 드문 지식인으로서 연희전문대학과 일본에서 유학을 했고, 사회주의라는 이상을 추구한 기자이다.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나라에서 그의 꿈을 실현하고자 자신을 내던졌던 전형적인 지식인이자 혁명가이다.
사회주의를 이상적인 이데올로기라고 믿었던 만큼, 그의 일기 속에는 그가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 그리고 그 속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며 또 자신을 다잡아 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라가 두 개로 갈라지고, 믿었던 사회주의가 변질되어 그를 배신해도 그는 흔들림 없이 사회주의를 믿는다.
올곧은 선비 같은 기대로 오로지 사회주의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다치지나 않을까 너무나 걱정스럽다. 전쟁 등을 통해 몸이 다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회주의가 그를 배신하고, 그에게 상처를 주어 그의 정신이 다치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대개의 올곧은 선비가 그렇듯 이진선도 대쪽같기는 하지만 그의 평생을 추구하고 믿던 것이 조금만 흔들리면, 그의 삶 자체도 흔들릴 수 있을 만큼 사회주의라는 것에 모든 것을 건 인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켜가면서 느끼는 감정, 고통, 방황이 가득 담긴 이 소설에는 그의 사랑도 담겨있다. 자신이 평생동안 사랑한 아내 신여린과, 아내가 죽은 후 그 자리를 채워준 최진이 이 두 여자를 향한 그의 감정과, 그것이 사치라고 여기면서 부정하려는 그를 읽고 있노라면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라는 것을 느낀다.
모두가 자신의 감정과 삶만을 소중히 여기는 시대에 자신보다 자신의 이념을, 자신이 사랑하는 나라를 더 소중히 여기는 그의 마음은 신선하다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소설 아름다운 집을 읽으면서 이진선이라는 인물로부터 인생을 배우는 것 외에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해방에서부터 남북전쟁, 그리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이념을 택해 나라를 세워가는 시대에 관련된 우리 나라의 모든 역사들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 배경으로 나온다는 점은 이 소설을 더욱 더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황장엽이 나오고, 박헌영이 나오고, 또 실제 역사에 등장하는 남북회담, 이산가족찾기 등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우리 나라의 현대사를 섭렵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을 읽다보면 아름다운 집의 지은이인 손석춘씨가 얼마나 역사에 해박한 인물이며, 또 이러한 자신의 생각대로 정리를 잘 하고 있는지를 톡톡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의 역사관을 토대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동안은 제대로 알지도 못 하면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막연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자신의 고정관념을 재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삶을 살았던 이진선, 그의 일기를 읽는 사람들은 현재 나 자신이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되는 마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외부의 힘에 의해 대북정책이 자꾸만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이때, 노무현 정부가 한번 읽어봄직한 책이다.
아름다운 집
손석춘 지음,
들녘,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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