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73

광개토대제와의 만남 (2)

등록 2003.07.01 10:34수정 2003.07.0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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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것은 침향(沈香)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향기를 발산하는 이것은 워낙 귀한 물건인지라 부르는 것이 값인 귀물(貴物)이다. 간혹 귀한 약재로도 사용되는데 체내의 나쁜 기운을 제거하여 기의 운행을 순조롭게 해주며, 오장육부에 이롭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의 가격이 비싼 이유는 적게 잡아도 육, 칩십 년은 족히 걸릴 정도로 오랜 세월에 걸쳐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며, 나는 양 또한 극소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금을 희롱한다는 갑부들이나 황궁에서만 사용하는 귀중품이었다.

이회옥이 달콤한 향내를 맡다가 골아 떨어진 것은 침향에 무언가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대 고구려의 피를 이어받은 후인이여, 어서 눈을 떠라! 짐은 후인을 오래도록 기다렸노라."
"허억! 누, 누구십니까?"

깊은 잠에 취해있던 이회옥은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사람이라곤 그림자조차 볼 수 없던 곳이기에 실로 오랜만에 듣는 사람의 음성이었다.

"짐은 선무곡의 곡주였던 광개토대제라 한다."
"헉! 광, 광개토대제요? 그, 그럼 귀신…?"


"짐이 천기를 짚어본 즉 천육백 년 후 선무곡의 존립 기반 자체가 극히 위험해질 상황이 벌어질 것을 알았노라."
"대체 무슨 말씀을…?"

이회옥은 자신의 말에는 전혀 대꾸도 않고 자신이 할말만 하는 장년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고대 전포(戰袍)인 듯한 복색을 한 기골이 장대하고 위풍당당한 사내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보였으나 한가지만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모름지기 대화를 할 때에는 상대의 반응을 살피기 위하여 시선을 맞추는 법이다. 그런데 광대토대제라고 밝힌 장년의 사내는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어리둥절한 이회옥이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광개토대제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감히 천한 무리들이 선무곡을 두고 분탕질을 칠 것이다. 그러나 선조들의 무공 가운데 태반을 잃은 후인들은 이를 제대로 대응치 못할 것이며, 그나마 둘로 나뉘어 힘조차 쓰지 못하게 되어 있을 것이도다."
"예에? 대체 무슨 소리이신지…?"

여전히 어리둥절한 이회옥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광개토대제라는 인물이 하는 말의 의미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짐이 곡주일 때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거늘… 부족한 후손들의 무능함이 참으로 애석토다."
"……?"

"짐이 곰곰이 생각해본 즉 선무곡이 그 지경이 되는 것은 천하에 쓸모 없는 자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음이 문제로다. 후인은 짐의 명령을 받아 썩은 무리들과, 선무곡을 넘보는 자들과 내통하는 간세 및 세작들을 먼저 소탕하여야 할 것이다."
"저어, 소탕이라니요?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선무곡이 바로 서려면 처음부터 사람으로 만들어진 자의 후손이 윗자리에 있어야 하거늘, 원래 짐승으로 만들어졌던 자의 후손이 윗자리에 있음으로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처음부터 사람으로 만들어진 자는 뭐고? 원래 짐승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대체 뭐야?'

이회옥은 광개토대제의 말을 언뜻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사람으로 만들어졌던 자의 후손을 본 맹자(孟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창하였고, 본시 짐승으로 만들어졌었으나 이를 뭉개 다시 사람으로 만든 자의 후손을 본 순자(荀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것이노라."

"어휴! 어르신,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좀 말씀해주시면 안 됩니까?"

이회옥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자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광개토대제는 이에 대해 전혀 반응 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상대의 반응이 어떠하든 상관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보고 읽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본시 짐승이었던 자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으며 개과천선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제거함이 마땅하다. 이런 자들은 겉으로는 정인군자인 척해도 속마음은 살심(殺心)을 품은 늑대와 같으니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베풀 가치조차 없기 때문이노라."
"……!"

"늑대는 송아지 가죽을 씌워도 절대 초식(草食)하지 않는 법! 송아지 사이에 섞어 놓으면 다른 송아지만 위태하니 일찌감치 제거함이 마땅할 것이노라."

'대체 무슨 소리이신지…?'

선후도 없고 연관도 없는 듯한 말에 이회옥은 고개만 갸웃거릴 수 있을 뿐이다.

"선무곡을 위태롭게 해놓고 제 배만 채우려는 자들로 인하여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니 후인은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함을 마땅하다 여겨야 할 것이니라. 따라서…"

이회옥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광개토대제의 말에 이제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듣기만 하고 있었다. 물어도 대답이 없으니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광개토대제의 말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회옥은 자신이 보고 있는 인물이 천육백년 전 천하를 질타했던 대영웅 광개토대제의 혼령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말을 통하여 이회옥은 모르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우선 선무곡(仙舞谷)이란 명칭의 유래이다.

선무곡 사람들은 스스로를 천손족(天孫族)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하늘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반면 선무곡과 더불어 천하에서 가장 두뇌가 뛰어나다 일컬어지는 유대문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천지신명으로부터 선택받은 유일한 혈족이라고 우긴다.

그렇다면 하늘의 자손과 믿을만한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못하면서도 무조건 하늘로부터 선택받았다는 것을 믿으라고 우기는 자들 가운데 누가 더 뛰어나겠는가?

어쨌거나 천손족은 유난히도 노래와 춤을 즐기는데 신명이 나면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는 춤사위가 가히 신선의 춤과 같다하여 선무곡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선무곡을 두고 오래 전 화롱철신 구린탄과 그의 죽마고우인 비돈 천화협 같의 대화가 있었다.

비돈은 무림천자성 제이좌(第二座)인 태상장로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거절하고 금릉 무천장주로 가겠다던 바로 그였다.

그의 아들이 현 장주인 약영혈돈 천일평이고, 그의 여식이 바로 왕구명을 어쩌지 못해 안달하던 백만근 천애화이다.

아무튼 당시 화롱철신과 천화협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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