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74

광개토대제와의 만남 (3)

등록 2003.07.02 13:40수정 2003.07.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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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핫! 나는 천하에서 두뇌가 가장 뛰어난 두 집단을 꼽으라면 당연 선무곡와 유대문을 꼽겠네."
"그런가? 왜 그렇지?"

"유대문 놈들은 이해타산에 있어서 만큼은 천하제일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영악하고 밝지. 속에 시커먼 구렁이를 한 마리씩 키우기는 하지만 놈들은 힘으로 다스리면 꼼짝도 못하지."
"그런가? 유대문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어 그런대로 이해를 하겠네. 하지만 선무곡은…? 선무곡이라면 화존궁과 왜문 사이에 있는 조그만 문파가 아닌가?"


"그렇네. 선무곡에 대해 들어본 바가 있는가?"
"글쎄…? 선무곡이라면 늘 화존궁의 핍박을 받던 문파라고 들었네. 하도 칠칠맞아서 늘 화존궁에 공물이나 갖다 비치고 그랬다고 들었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왜문이 강점했던 문파고…"

"맞네! 그 선무곡을 말하는 것이네."
"으음! 내가 알기론 우매하기 이를 데 없는 작자들만 모인 곳이 거기라고 들었는데…? 놈들은 늘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려고 붕당(朋黨)이나 만들어 서로 싸우느라 밖을 돌볼 줄 모르는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는 놈들이라고 들었네만…"

"하하! 그랬지. 또 아는 바가 있는가?"
"뭐라더라…? 맞아! 노론 소론, 남인 서인 뭐 이런 것들… 그것 때문에 발전하고 싶어도 발전할 수 없는 곳이라고 들었네."

"핫핫! 바로 보았네. 선무곡의 고질적인 병폐가 바로 그런 것이지. 왜문에게 당한 것이 어디 이번 한번 뿐인줄 아는가?"
"그래? 뭔 일이 또 있었는가?"

"핫핫! 오래 전, 임진년(壬辰年)에도 된통 당했었지.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다가 또 당한 것이네."
"그래? 그런 선무곡이 뭐가 뛰어나다고 하는 건가?"


"지금은 그렇지. 하지만 오래 전의 선무곡은 그렇지 않았네."
"흐음! 그랬는가? 어떠했는데?"

"핫핫! 한때는 화존궁도 함부로 못하던 곳이 바로 선무곡이라네. 광개토대제(廣開土大帝)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을 때에는 화존궁은 물론 인근 문파 모두가 벌벌 떨었었지."
"흐음! 그으래? 그런 일도 있었는가?"


"그렇네! 그런데도 그 모양 그 꼴이 된 것은 더 이상 뛰어난 지도자를 가져보지 못한 것 때문이네. 그래서 늘 외세에 당하고만 살았지. 하지만 두고 보게. 지금은 그렇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하! 언젠가는 선무곡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날이 분명히 있을 것이네. 핫핫! 아무리 먹장구름이 껴있어도 바람이 불면 태양은 찬란한 빛을 드러내는 법이지. 안 그런가?"


태초에 하늘을 다스리던 천황이 어느 날 온갖 사물들을 만들어냈다. 그것의 재료는 물가의 진흙이었다.

진흙을 뭉쳐 사슴이나 토끼도 만들었고, 호랑이나 늑대도 만들었으며, 온갖 기괴한 형상의 짐승이나 괴물들도 만들어냈다.

이렇게 모든 짐승들을 만든 후 사람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되었다. 워낙 많은 수효와 다양한 형상의 짐승들을 만들다보니 재료가 부족해진 것이다.

천왕은 이왕 만들기 시작한 것이니 중간에 그만두기도 그랬지만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진흙을 가져오기도 귀찮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이미 짐승으로 만들었던 것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골라 뭉갠 후 그것으로 나머지를 만들어 붙이고는 숨결을 불어넣어 사람이 되게 하였다.

광개토대제가 언급한 본시 사람이었던 자와 본시 짐승이었던 자라는 말은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천황은 모두 셋을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둘은 본래부터 사람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짐승이었던 것을 뭉개서 만든 사람이다.

그는 머리와 하반신이 본시 짐승으로 만들어졌던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잠재적으로 짐승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할 소지가 다분히 있었으나 천황은 미처 이런 문제가 발생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후손들이 태어났고, 그들은 세상 여기저기로 흩어져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하였다.

광개토대제는 맹자가 원래부터 사람으로 만들어졌던 자의 후손을 보았기에 성선설을 주창하였다고 하였다.

사람에게는 덕(德)으로 향하려는 네 가지 마음이 있는데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가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는 덕의 근본이라 하고,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쁜 환경 속에 들어가면 물욕(物欲)의 마음이 생겨, 그와 같은 덕으로 향하려는 바른 마음의 판단이 결여되어 착함을 잃게 된다고 설(設)한 것이다.

반면 순자가 본 사람은 본시 짐승으로 빚어졌던 진흙으로 만든 자의 후손 가운데 하나였다. 그를 보았기에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함을 지니고 있다고 설파한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길 성장과정에서 적절한 훈육을 해야 양심이나 도덕을 갖춘 제대로 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제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을 하였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마음쓰는 것이 짐승 같은 자들이 있다. 냉혹(冷酷), 잔인(殘忍), 극악(極惡), 파렴치(破廉恥), 몰염치(沒廉恥) 등등이 그런 자들에게 적용되는 단어이다.

그런 자들은 짐승으로 빚어졌던 자의 나쁜 피가 처음부터 사람으로 빚어졌던 자의 선한 피보다 많기 때문이라 하였다.

광개토대제는 이런 자들은 세상에 존재할 가치조차 없으니 눈에 뜨이는 대로 가차없이 제거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다.

그래야 처음부터 사람이었던 심성 착한 이들이 핍박받지 않고 평화롭게 한 세상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선한 피와 나쁜 피가 섞인 후손들이 뒤죽박죽 뒤섞여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혼례를 통하여 피가 섞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본시 짐승으로 빚어졌던 진흙으로 만든 자의 직계 후손들을 식별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 하였다.

나쁜 피를 지닌 자들을 몇 가지 정형화 된 유형을 띄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극악무도한 살상 행위를 자행하거나, 이를 획책하는 자, 혹은 지위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 대부분이 그런 자들이라는 것이다.

광대토대제는 천하를 호령하던 자신의 대(代)와 달리 선무곡의 오늘날이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은 곡도들을 이끌어야 할 윗자리에 앉은 자들 때문이라 하였다.

역사를 곰곰이 되짚어보면 알겠지만 이상하게도 수뇌부에는 나쁜 피를 지닌 자들이 많이 있으면서 곡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영달만을 위해 온갖 모략과 귀계를 꾸몄기 때문에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록 동족이기는 하나 나쁜 피를 솎아내지 않으면 선무곡의 내일은 암울(暗鬱) 그 자체일 뿐이라고 경고하였다.

마음 선한 이들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할 인물들이 윗자리에 앉지 않고 나쁜 피가 많은 자들이 윗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선무곡의 미래는 암담하며, 그대로 놔두면 봉문(封門) 당하는 수모를 겪거나 아예 다른 문파에 흡수되어 버릴 것이라 하였다.

이 말에 이회옥은 다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알 수는 없지만 광개토대제의 말이 조만간에 있을 미래를 예언하는 듯한 느낌에 전율을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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