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선물한 책이다. 화를 좀 덜 내고 살라고 선물한 모양이다.느릿느릿 박철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아이들 차례로 줄을 지어 다가와 예쁘게 리본장식을 한 들꽃을 하나씩 하나씩 내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 맨드라미, 메밀꽃, 들국화… 등 흔한 들꽃이었다. 그때서야 감이 잡히는데 오늘이 바로 내 생일이 아니었던가. 아내 말고는 아무도 내 생일 기억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니 생일을 기억한다는 것도 사치다 싶을 정도로 가난한 마을이었다.
한 달 사례비가 오 만원이었는데 그걸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 전도사가 미역줄거리 하나 살 만한 돈도 없었고, 또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고 그것 때문에 섭섭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였던 것이었다.
아내 목에는 역시 들꽃으로 만든 둥근 꽃다발을 걸어 주었다, 또 자기들끼리 백원 이백원을 모아서 산 것이라며 나에게 넥타이와 넥타이핀을 선물로 주었다. 생일 케잌 대신 제과점에서 사온 둥근 빵에 양초를 꽂고 생일축하 노래를 함께 불렀다.
큰 아이를 가져 만삭이던 아내는 손으로 얼굴을 파묻고 울었고, 나도 덩달아 아이들 앞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울었다. 그때 아이들 표정이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웠던지. 한줌의 가식도 없이, 우리 내외를 어떻게 하든지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예배당에 모였던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지금도 선하다. 내 생일을 맞으면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난다.
나는 이 해만 넘기면 지천명의 나이에 진입한다.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지났다. 생일이 무슨 대단한 날이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이값도 못하고 살았다. 18년 전 강원도 정선 산골 조무래기들부터 지금 이곳의 80넘은 노인들까지도 내가 목사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내게 고개를 수그리신다.
그들을 섬기는 것이 내 일일진대, 그리고 나이 값을 하는 것일 텐데, 나는 늘 받기만 할 뿐이다. 여전히 미숙하기 짝이 없다. 나는 갚아야 할 빚이 많은 사람이다. 그 사랑의 빚을 언제 다 갚는단 말인가? 내가 하느님께로 가는 날, 비로소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