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에도 풍성해지는 나의 텃밭

우리집 푸성귀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등록 2003.07.07 15:33수정 2003.07.0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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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마철이라 장맛비가 거의 매일 내립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인지,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지리한 장마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낌으로 알게 합니다.


a 검은콩

검은콩 ⓒ 김민수

비가 오니 밭에 들어갈 엄두도 내질 못합니다.
전에 뿌린 씨앗들이 잘 자라기는 하는 것인지 궁금한데 땅이 질어서 들어갈 수도 없고 먼발치에서나 바라보아야 합니다.

장맛비가 매일 내리기 때문인가요?
어느 날 텃밭을 바라보니 묵은 콩이라서 새싹이 날까 걱정했던 검은콩이 예쁜 새싹을 내고는 비오는 날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여보, 검은콩이 났다, 났어!"

호들갑을 떠는 내 모습이 우스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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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상추

상추 ⓒ 김민수

콩만 싹을 틔운 것이 아니라 상추도 싹을 틔웠습니다.
상추는 콩보다 먼저 싹을 틔웠는데 계속되는 장맛비에 너무 여리게 자라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씨앗이 흙을 만나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납니다.
아니, 새로운 존재라기보다는 본래 자신이 품고 있었던 그 모습을 피워내는 것이죠. 이게 흙의 힘입니다.


새싹들의 행렬을 보며 우리 사람들간의 만남이라는 것도 이런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만나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 깊은 속내에 들어 있던 아름다운 것들을 피워낼 수 있는 만남이면 좋겠습니다.

a 쑥갓과 상추

쑥갓과 상추 ⓒ 김민수

씨앗마다 자리를 정해서 뿌렸음에도 불구하고 쑥갓이 나오는 자리에 상추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셈이지만 뭐 그리 보기가 나쁜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뿌리를 내렸으니 또 같이 자라면 될 것입니다.

푸성귀들의 새싹은 참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더욱 더 애착이 가고, 조금 지나면 풍성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니 든든합니다.

성서에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은 연약한 새순 두어 장을 달고 있을 뿐이지만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파리를 따먹고 또 따먹어도 계속해서 우리의 식탁을 푸르게 해줄 것을 보는 것입니다.

a 열무

열무 ⓒ 김민수

열무는 촘촘히 씨앗을 뿌렸다가 작을 때 솎아서 쌈으로도 먹고, 살짝 데쳐서 참기름에 고추장을 넣고 버무려 먹어도 맛있습니다. 적당하게 솎아주어야 건강하게 자라는 열무, 우리들도 그런 것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나누어줄수록 풍성해지는 것, 혼자 가지려고 하면 점점 적어지는 것 그런 것 말입니다.

a 토란

토란 ⓒ 김민수

이른 봄에 심었던 토란밭으로 향했습니다.
토란잎에 맺힌 물방울들을 보기 위해서죠. 어린 시절 비오는 날이면 토란잎을 하나 따서 머리에 쓰고 뛰어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옷에 토란물이 들기도 했었죠.

토란이파리에 맺혀 있는 물방울 하나 하나는 보석처럼 아름답고, 계속되는 장맛비로 자기 스스로 몸에 있는 물을 배출해내는 작용으로(정확한 이름을 모르겠습니다) 이파리 끝에 아롱거리는 물방울을 달은 모습이 청아하고 예쁘기만 합니다.

a 배

ⓒ 김민수

작년에는 태풍 루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배가 열렸었는데 올해는 그리 큰 태풍이 없었는데도 배가 단 한 개만 남아서 아쉽습니다. 작년에 풍성하게 열매를 맺느라고 힘들어서 올해는 안식하나 봅니다.

"내년에는 좀 많이 열려서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하나씩 맛이라도 보여주자."

거의 매일 오는 장맛비에도 나의 텃밭은 더욱 더 풍성해집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연, 모든 것을 품고 새로운 생명의 장을 열어주는 흙, 모두에게 감사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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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텃밭에 씨앗을 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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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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