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시소멘과 함께 하는 일본의 '칠석'

[현지보고] 아이와 어른이 함께 지내는 일본 전통 세시풍속

등록 2003.07.07 15:44수정 2003.07.1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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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한창 진행 중이던 1872년 서양의 태양력을 채용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도 1895년 을미개혁 때 태양력을 공포하였다.


우리의 경우엔 지금도 양력 못지않게 음력이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세시풍속이나 명절은 음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반면 일본은 공식적으로 음력을 쓰지 않기 때문에 명절이 양력화된 경우가 있다.

a 마을 자치회의 어린이 클럽 주최의 칠석 축제 - 나가시소멘을 먹는 풍경

마을 자치회의 어린이 클럽 주최의 칠석 축제 - 나가시소멘을 먹는 풍경 ⓒ 장영미

칠월칠석을 일본에서는 '타나바따(七夕)'라고 부르는데 주로 양력 7월7일에 이와 관련된 절기행사가 벌어진다(지방에 따라선 음력으로 칠석 축제를 벌이는 곳도 있다).

양력 칠석을 앞둔 토, 일요일에 딸아이의 유치원과 우리가 속한 마을 자치회의 어린이 클럽에서 주최하는 칠석 축제에 참가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의 경우도 옛부터 내려오는 세시풍속이 생활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해 내려오는 세시풍속이란 것이 옛날 농경 위주의 생활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 요즘의 생활양식과 동떨어진 점이 있다보니 요즘의 우리네 생활 속에 전승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일본에서도 아이들에게 이런 전래의 세시풍속을 알리려는 노력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딸아이의 유치원에서는 저녁 한때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축제가 벌어졌다. 먼저 '쇼핑 놀이'가 시작되었다. 각자 600엔 상당의 가짜 돈으로 맘에 드는 싸구려(?) 장난감을 사는 것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졸업생들도 쇼핑에 참가할 수 있다. 거기엔 옛날에 나도 가지고 놀았음직한 옛 스타일의, 지금으로선 불량스러워 보이는 그런 장난감들이 많이 있었다.


쇼핑을 마친 후 각 연령별 합창, 합주가 이어졌는데 각 연령별 음악발달 정도가 한눈에 보여졌다. 3세 아이들 반의 발표 때엔 어떤 아이가 오줌을 싸는 바람에 잠시 중단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a 상급반 아이들 - 합창을 앞두고 다소 긴장한 듯

상급반 아이들 - 합창을 앞두고 다소 긴장한 듯 ⓒ 장영미

모든 발표가 끝나고 조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면서 작은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유치원 운동장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높이 쏘아 올리는 멋진 불꽃놀이는 아니었지만 자원봉사하는 아빠들이 열심히 불꽃을 만들어주었다. 이곳 저곳에서 아이들의 탄성이 들렸다.


a 유치원의 칠석 불꽃놀이

유치원의 칠석 불꽃놀이 ⓒ 장영미

무엇보다 일본의 타나바따 마쯔리(칠석 축제)하면 떠오르는 것이 대나무 가지 장식이다. '사사카자리(笹飾り)'라고 불리는 것인데 여러가지 색깔의 종이를 바람에 날릴 때 보기 좋도록 오린 후 대나무 가지에 건다. 그리고 '탄자꾸(短冊)'라는 작은 종이에 소원을 적어 주렁주렁 매달아 장식한다.

유치원에도 아이들이 장식한 사사카자리가 세워져있었다. 우리 아이의 소원을 읽어보니 '빨리 엄마가 되고 싶어요'라고 쓰여 있다. 집에서 살림만하는 엄마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 장식된 대나무 가지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면 나름대로 아주 흥취가 느껴진다. 밤이면 사사카자리에 불빛을 비추는데 그 아래를 여름철의 전통복인 유까따(浴衣)를 입고 등 뒤에 부채를 꽂은 젊은 이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엔 가히 일본스런 풍취가 있다. 이런 축제의 하이라이트라면 아마도 이러한 사사카자리와 그 위로 쏘아 올려지는 불꽃을 한눈에 보는 장면일 것이다.

마을 자치회의 어린이 클럽에서도 칠석 축제를 열었다. 이 동네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3년째 이 행사를 하고 있다는데 아직 유치원생인 우리 아이도 초대를 받았다.

이 행사의 주된 메뉴는 '나가시소멘'이라 불리는 '흐르는 국수 건져 먹기'와 '눈가리고 수박 쪼개기'였다.

나가시소멘은 일본의 여름의 풍물시(風物詩)라고 할 수 있다. 굵은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서 그것을 계단처럼 길게 연결한 후 물을 흘려 보낸다. 윗쪽에서 흐르는 물 위로 삶은 국수를 한 덩어리씩 흘려보내면 아랫쪽에서 그 국수를 젓가락으로 건져내어 장국에 찍어 먹는다. 칠석엔 오색의 타나바따소멘을 먹는다고 한다.

어린이 클럽의 행사에서는 대나무 대신 처마의 물받이처럼 생긴 긴 통을 연결해 나가시소멘을 연출했다. 아빠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음새마다 대나무 가지를 세워 놓아 나름대로 풍취가 있었다. 엄마들은 윗쪽에서 연신 삶은 국수를 흘려 보냈고 국수를 웬만큼 건져먹은 아이들도 그 일을 거들었다. 건져먹는 재미에 국수를 얼만큼 먹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a 유까따를 입고 있는 아가도 열심히 국수를 건져 먹고 있습니다.

유까따를 입고 있는 아가도 열심히 국수를 건져 먹고 있습니다. ⓒ 장영미

국수먹기가 마무리 될 즈음 수박 쪼개기에 도전하기 위해 아이들이 한 줄로 늘어섰다. 설거지를 돕고 있는데 우리 아이가 눈을 가리고 수박 쪼개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만 땅을 가르고 만 아이는 좀 실망한 듯했지만 다른 아이들의 도전을 응원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아이들이 수박 두 덩어리를 모두 쪼갰다. 큰 수박이 초등학교 아이들의 힘으로도 쪼개지는 것이 신기했다.

a 으랏차! 아이들의 수박 쪼개기 - 눈을 가리고 2, 3번 맴맴을 돈 후 수박을 향하여 돌진!

으랏차! 아이들의 수박 쪼개기 - 눈을 가리고 2, 3번 맴맴을 돈 후 수박을 향하여 돌진! ⓒ 장영미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정신없이 수박을 먹었다. 이렇게 일부러 쪼갠 수박을 먹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실컷 먹고 난 아이들은 운동장을 뛰며 공차기를 하거나 나무에 오르면서 소화를 시키는 모양인데 잔뜩 먹고 움직이지 않는 어른들의 배는 꺼질 줄을 몰랐다. 아이들의 반 정도만이라도 움직이면 결코 살찌는 일은 없을텐데….

여기가 지방의 작은 마을이어서 이런 일들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어느 나라나 대도시에서의 삶은 각박할 터이니 말이다. 세시풍속들 속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해학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과학과 지식이 녹아 있다. 역사책, 민속학책 속에 묻어두기엔 아까운 그것들을 어떻게 하면 요즘의 우리네 생활 속으로 끄집어낼 수 있을지 다같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칠석 이야기 속엔 오작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의 대강의 줄거리는 비슷하다. 일본에서 체험한 칠석 축제도 여러가지 면에서 재미있었지만 양력 7월 7일의 칠석 축제는 뭔가 중요한 게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칠석은 음력 7월 7일에 밤하늘의 견우성과 직녀성을 찾아보면서 그 의미를 새기는 데에 참다운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칠월칠석에 별다른 의미있는 행사없이 지나치는 한국이나, 양력 7월 7일에 칠석축제에 열을 올리는 일본이나 좀더 자신들의 세시풍속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의미를 살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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