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육아일기-1년만의 약속

놀이동산 가기로 1년전부터 약속했기에 외면할수 없었다.

등록 2003.07.18 10:16수정 2003.07.1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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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놀이동산 가는 것이 꿈이었지요.

놀이동산 가는 것이 꿈이었지요. ⓒ 이종원

1년만의 약속


딸 정수가 맨 날 "롯데월드...롯데월드" 떠드는데 아빠 된 도리로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1년 전부터 약속했기 때문이다. 야구 중계가 슬며시 유혹을 했어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답사여행을 아이들이 좋아하겠는가? 그저 화려하고 신나는 것이 좋지…. 아내는 아쉽게도 둘째 아이를 가진 죄 때문에 집을 봐야만 했다.

a 곰돌이와 함께

곰돌이와 함께 ⓒ 이종원

12시에 롯데월드 도착. 드디어 부녀간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48개월 이내 아이는 무조건 공짜다.

우선 범퍼카를 타려고 갔더니 아이 키가 작다고 입장할 수 없단다. 아쉽네. 이번에는 석촌호를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보트를 태워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나이 제한이 있었다.

"정수야, 너 저 아저씨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6살이라고 그래."
"알았어."

난 정수가 6살이라고 박박 우겼다. 그 아저씨는 6살이 너무 작다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 할 수없이 난 정수에게 물었다.


"정수야 너 몇 살인지 얘기해줘."
"5살."

이런, 결국은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


"정수야 6살이라고 말하라고 했잖아. 너 왜 그랬어?"
"아저씨가 물어보면 6살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아빠가 물어봤잖아."

아이고, 아이에게 거짓말하라고 부탁한 내가 잘못이지.

a 회전목마는 2번이나 탔어요.

회전목마는 2번이나 탔어요. ⓒ 이종원

그래도 아이들이 탈수 있는 놀이기구는 다 탔다. 무려 20개의 놀이기구에 올라탄 것 같다. 그것도 모자라서 환타지기차와 커피잔, 회전목마는 2번이나 탔다. 지금도 뱅글뱅글 도는 것은 질색이다.

a 코끼리를 타고 있어요.

코끼리를 타고 있어요. ⓒ 이종원

'신밧드의 모험'

배를 타면서 온갖 괴물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정수에게는 굉장히 무서웠나보다. 내 팔등을 꼭 꼬집으며 쥐죽은 듯 가만히 앉아 있다. 그곳을 나와보니 눈가에 눈물이 촉촉히 젖어 있다.

"아빠 나 무서워서 혼났어. 깜깜한 게 싫어."

그래도 밖을 나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이 나 있다. 팔짝팔짝 뛰어 다닌다. 마냥 즐거운가 보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섰다. 진열대엔 파인애플, 딸기. 레몬, 초코 아이스크림이 있다.

"뭐 먹을래?"
"노란색."
'왜 초코가 맛있는데."
"싫어. 난 깜깜한 색이 싫어."

조금전 '신밧드의 모험'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초코렛색을 '깜깜한 색'이라 표현하는 것이 참 정겨워 보인다.

사람이 들어간 인형과 사진도 찍고, 놀이기구 타고, 그래 오늘 본전 한 번 뽑아보자. 인형극을 보며 박수도 치고, 연극을 보며 주인공도 되어 보았다.

a 공룡과 함께 원시인이 되었어요.

공룡과 함께 원시인이 되었어요. ⓒ 이종원

5시가 되었다. 배고파서 걷기 힘들다. 식당에 가서 소고기덮밥을 주문하고 정수에게 먹이려고 했는데 잘 먹지 않는다. 저기 보이는 어린이 놀이터에 가고 싶은 거다.

'정수야 이거 다 먹으면 보내 줄께."
"이거 다 먹으면 배가 터져서 빵구 나잖아."

이런 무자비한 표현을 쓸 줄이야.

중앙 무대에는 공연이 한참이다. 마술도 보여주고 노래도 하고. 아이얼굴이 환해 아빠도 기분이 좋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춤 경연 대회'다.

"정수야 너 선물 받고 싶지."
"응."
"저기 무대에 나가면 상 준대."
"알았어. 그럼 아빠와 같이 가자."

이런-. 이 놈이 아빠를 물고 늘어지네.

정수를 데리고 무대에 오른다. 거의 천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몸을 흔들려고 했더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창피하기도 하고, 몸이 경직되어서 나의 현란한 실력을 발휘 못했다. 정수는 그동안 갈고 닦은 테크노, 디스코, 막춤까지. 깜직한 아이가 춤을 추니 많은 관객들이 환호한다. 아빠보다 나은 정수.

아빠는 예선 탈락.
정수는 본선 진출.

아빠가 무대에 내려가니 정수도 따라 내려온다. 올라가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아빠의 썰렁한 춤솜씨 덕에 정수도 본선을 포기했다. 정수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대공포 없이 춤을 추었다는 것에 아빠는 만족한다. 아빠는 무대공포를 더 느낀 시간이었다. 아까 신밧드의 모험은 전혀 안 무서웠는데.

a 동화속에 나타난 인형과 함께

동화속에 나타난 인형과 함께 ⓒ 이종원

알록달록한 풍선을 사달라고 떼를 쓴다. 그래, 도 잘 추었는데. 그런데 풍선이 무려 4천원이나 한다. 안 사줄수도 없고.

저쪽에 모 핸드폰업체가 홍보차 풍선을 나누어 준다. 그 풍선을 얻어주었더니.

"이건 예쁘지도 않잖아. 예쁜 풍선 사줘…."
"정수야 저건 너무 비싸."

제 풀에 꺽일 정수가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볼펜을 꺼내들었다. 그 풍선에 정수도 그려주고, 비행기도 그려주고. 그랬더니 너무 좋아한다. '4천원 벌었다.'

4층에 있는 민속박물관에 올라갔다. 작고 답답했지만 우리 유물의 모형이 가득 전시되어 있어 좋았다. 특히 신하들이 도열하고 있는 경복궁 모형은 내가 봐도 멋지다. 정수에게 일일이 설명한다. 알아듣든 말든 자주 들으면 나중엔 아빠의 뜻을 알겠지.

화장실에 들렀다. 정수 잃어 버릴까봐 데리고 들어갔다. 남자들 서서 쉬하는 곳이 마냥 신기한가 보다. 용변기를 만지려고 한다.

"이거 뭐야."
"정수야. 만지지마. 지지야."

이거 어떻게 설명하지….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봐."

롯데월드 나온 시간은 8시다. 8시간 동안 딸과의 데이트, 멋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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